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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트리밍 Jan 28. 2024

우리만의 서사

날것 그대로 감정 느끼기.


마침내 정착할 나의 보금자리로 이사를 왔다.

이사 오고 이곳저곳 크고 작게 수리할 곳은 많이 보이는 것은 아쉽지만, 살아가면서 조금씩 고쳐나가기로 했다. 이사 오기 전에 짐을 많이 버렸는데도, 이사 와서도 버릴 것들이 어찌나 많이 보이던지, 끊임없이 배출물이 나온다.

아이는 새로운 유치원에 가고, 첫날 소감은 너무 낯설어서 눈물이 날뻔했다고 한다. 매번 처음이라는 것은 그런 거라고 앞으로 좋아질 거라고 위로하며 어릴 적 전학 다니던 나의 어린 시절도 겹쳐 보였다.

곧 입학할 초등학교도 함께 다녀오고 이런저런 행정 일을 해나가니 일주일이 금세 지나갔다. 그리고 나와 내 아이는 지독한 감기에 연이어 걸렸지만 틈날 때마다 '환희'와 '벅차오르는' 감정을 느끼는 중이다.

온전히 우리만의 서사가 있는 곳이라 당분간은 이 날것의 감정을 흠뻑 젖어보기로 했다.


우리만의 서사

시간을 거슬러 남편과 내가 처음 만나던 그때부터 지금을 떠오른다.

가까운 지인들끼리 운영하는 겨울 스포츠 동호회에서 만난 우리는 연상연하지만 1여 년 동안 친구처럼 지내다가 남편이 어느 날 나에게 고백을 하던 손발이 오그라들던 그때가 생각난다.

평일 어느 날 퇴근 시간때에 나의 직장 앞으로 찾아와서 비장하고 서툰 고백이었다. 다른 건 몰라고 본인의 성실성과 잠재 경쟁력을 어필하며 이어갔다. 석사를 마치고 사회초년생 연구직이었던 남편은 건전한 미니멀리즘 소비 패턴을 얘기해 주고 몇 년 후면 레버리지로 같이 모아서 서울 전셋집정도는 마련할 수도 있다고 구체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당시의 나는 세상에 이런 고백도 있다니, 이렇게 솔직하고 투명한 사람이 있다니- 크게 두 가지로 놀랐다.

거품이 전혀 끼지 않은 남편의 모습은 마냥 신기하고 귀하고 특별하게 느껴졌던 당시의 기억이 선명하다.


그때나 지금이나 남편과 나는 크게 변한 것이 없다.

그 이후는 남편이 유학을 떠나면서 우리는 상황을 맞추어나갔다. 그중에서 남편의 유학을 따라나설 계획을 세우며 나의 커리어와 동시에 한국에 돌아와서도 춥지 않을 '우리의 집'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언제가 만날 나의 아이와 우리 가족이 살고 싶은 곳을 상상하며 무더운 여름날 여러 동네를 찾아 헤매며 좌충우돌을 겪었다.

당시의 구원 같은 상황이 아득하고, 지금껏 내가 태어나서 가장 잘한 일을 묻는다면 내 아이를 낳은 일 다음으로 당시의 용감하게 내 집마련 한 선택으로 꼽을 것이다.


그 이후 많은 일들이 펼쳐졌고, 내 아이는 폭풍처럼 성장해서 초등학교 입학에 앞두면서 이사를 결정했다. 우리의 진한 서사가 필름처럼 스치며 매일이 벅찬다.


곧 일상처럼 익숙해지고 지금의 감정이 무뎌질 수 있지만, 지금 이 순간만큼은 흘러보내지 않고 나의 감정에 그저 흠뻑 젖어보기로 한다.

살면서 날것의 감정들을 느끼며 생생히 살아 숨 쉬고 있다는 실감은 너무나 소중하기 때문에-

산책하며 눌러담은 나의 감정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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