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디어 나의 집으로!
'이사' 준비로 분주할 때마다 복합적인 감정이 든다.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설렘과 두려움이 동반하는 마음과 비슷하다.
그런데 그동안의 임시 거주할 때와는 달리, 정착하게 될 ‘나의 집'으로 마침내 머물게 될 생각을 하니 벅찬 감정이 압도했다.
남편이 유학을 떠났을 당시에 둘이서 모은 종잣돈으로 운 좋게 마련해 둔 나의 집이었다. 결혼 후 해외살이를 포함하여 7번 이사를 다니고 마침내 정착할 우리의 보금자리로 가게 되었다.
내 집마련의 과정은 다른 블로그로 기록한 적이 있는데, 결혼하고 첫 집을 고르는 기준으로 늘 ‘직주근접’이 최우선순위였다. 그런데 선택의 기준이라는 것은 나의 조건과 상황, 생애 주기에 따라 주요 가치가 자연스럽게 변한다.
나는 어릴 적 부모님을 따라 해외에 두 번 살게 된 경험이 있는데, 그때에 부모님이 집을 매도 후 귀국했을 때 고생하던 모습이 은연중에 상기되었고, 결정적으로 다각도로 깊은 혜안을 가진 시어머니의 조언이 선택하는 데에 큰 영향을 주었다.
그런 집에 마침내 살 수 있게 되니, 평생의 코어 모먼트로 간직하게 될 것 같다.
나의 주거 환경과의 인연
그동안 스쳐 지나간 '집'의 인연들을 자연스럽게 떠올려보았다.
나는 운이 좋게도 다양한 동네와 다양한 유형의 집에서 거주 경험을 했다.
현재 살고 있던 동네를 두 번째로 실거주지로 정했던 이유는, 당시에는 일터와의 가까운 거리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서울 중앙에 위치해 있어서 어디든 이동이 편리한 것이 가장 큰 장점이어서 선택했었다. 그리고 살면서 이 동네에 매료되었다. 낮고 작은 산과 한강 사이에 비스듬히 끼어있다 보니 지형적으로 독특한데, 9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와서 아이와 함께 하는 시선을 함께 담으며 귀한 추억을 쌓았다.
두 번째 집은 남편이 먼저 유학을 떠나게 되며 친언니가 사는 곳 근처로 혼자 이사를 갔었는데, 그곳에서는 둘째 조카가 태어나서 둘째 조카의 사랑스러운 신생아 시절의 모습을 자주 봤던 기억이 가득하다.
세 번째로는 남편이 유학 간 곳을 따라나서서 한국의 아파트와는 전혀 다른 미국 시골 아파트에서 거주 경험을 했다.
그 틈 사이에, 남편이 캘리포니아주 실리콘밸리에서 연구 인턴생활을 하면서 미서부 대도시의 주택살이 경험도 해보았다. 겨우 3개월 장기 투숙을 한 것이었지만, 아이가 기어 다니기 시작하고 가족 셋이서 좋은 추억을 많이 쌓아서 이때의 기억이 가장 강렬한 이색적이었다.
현재 살고 있는 동네는 우리 부부에게 좋은 추억이 있고 친숙한 곳이라 남편이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다시 이곳으로 살게 되었다. 그래서 몇 년을 더 살 계획이었지만,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하는 시기에 맞춰 이사를 계획하게 되었다. 어릴 적 기억을 더듬어보며 내 아이는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어린 시절을 보냈으면 하는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아이를 양육하며 종종 나의 어린 시절을 곱씹어보게 되는데, 십 대 전후의 기억이 나의 정서나 마음이 아직도 나를 지배하는 듯하다.
그때에 쌓은 경험들은 자양분이 되는 것은 분명하다는 생각에 아이가 태어나고 나서는 현실적인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이사를 준비하며 가장 고민스러웠던 것은 한 달 남짓 남은 내 아이의 유치원이었는데, 이사 갈 동네의 유치원에 입소가 가능해서 자연스럽게 퇴원을 결정했다.
내 아이는 2년을 다닌 유치원에서 교우관계도 돈독해지고 아쉬워하며 자기 직전까지 친구들에게 선물 줄 간식거리를 챙긴다. 나의 어릴 적 느낀 감정을 내 아이도 느끼는구나 가슴이 먹먹하기도 했다.
생활 냄새가 풀풀 나던 집과 동네가 갑자기 아련해지기 시작한다. ‘집’이라는 공간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으며, 새로운 공기를 받아들일 채비로 짐정리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