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낳은 사람들
아직은 나를 알아본다.
엄마, 아빠.
이름을 부르고,
내 목소리에 웃는다.
그 시간이
언젠가 사라질 걸 안다.
하지만 아직은 남아 있다.
잠깐이라도,
하루라도,
그 웃음이 머무를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는 오늘도 부모님 앞에 앉아
작게 웃는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조용히 국에 고기를 하나 더 넣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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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한때 부자였다.
어린 시절엔 그게 당연한 줄 알았다.
계절마다 여행을 가고,
기념일마다 식당을 예약하고,
밥상에는 고기와 채소와
웃음이 동시에 올랐다.
하지만 그건 오래가지 않았다.
한순간에,
거짓말처럼
무너지는 것도 있더라.
모든 걸 잃었다고 느낄 때가 있었다.
그럴수록 나는 다짐했다.
“나는 다시 이 식탁을 되살릴 거야.”
그래서 돈을 벌어야 했다.
그냥 먹고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 집이
한 번이라도 더
따뜻하게 웃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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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월급에 감사했지만,
그것에 타협하지 않았다.
회사도 나왔다.
불안했지만, 이상하게도
무서운 건 아니었다.
왜냐면
이 길의 끝엔
분명히 부모님이 계실 거라 믿었으니까.
기억을 잃어가는 사람을 위해
내가 성공을 보여주겠다고 믿었으니까.
그 성공이 꼭
건물을 사거나
차를 바꾸는 게 아니어도 좋다.
그저,
내 옷차림이 당당하고
표정이 밝고
잔고가 불안하지 않다는 것만으로도,
부모님은 아마
“이제는 됐다.”
그렇게 느끼실 거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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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요즘,
아침마다 창문을 바라보신다.
아무 말도 없이,
빛을 본다.
내가 말을 걸면
웃고,
가끔은 이름을 잘못 부르신다.
가끔은 아버지의 이름을
내 이름처럼 부르시기도 한다.
나는 그런 순간에도 웃는다.
왜냐면,
그 기억의 오류 너머에
그분의 마음은
여전히 거기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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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나는 내 삶을 돌아본다.
버티고 있는 건가?
아니, 아니다.
나는
이 삶을 꿈꾸며
여행하고 있다.
누군가는
“그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
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나는 이렇게밖에
살 수 없다.
이건 나의 선택이고
나의 사명이고
나의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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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밥을 짓고,
고기를 삶고,
국을 데운다.
부모님이
“이게 얼마 만이냐”
하며 놀랄 정도의 상차림은 아니지만
그들이
한 입 먹고
“맛있다”
고 말할 때,
나는 이미
이 삶의 목적을 이룬 것처럼
조용히 마음이 차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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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언젠가 흐려질 것이다.
이름도,
얼굴도,
관계도
언젠가는 사라진다.
하지만 나는 믿는다.
그 흐린 기억 속 마지막에
남는 감정이 있다면
그건 아마 따뜻함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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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따뜻함을
지금부터 쌓아두고 싶다.
내가 잘된 모습을 보여드리고,
걱정 없이 하루를 웃으며
“우리 아들은 잘 컸다”는
그 말 한마디를 듣고 싶다.
내가 바라는 것은 오직 그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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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은 잘 컸고,
나는 이제 여한 없다.”
그 한 줄을
부모님의 마음에 남겨드리고 싶다.
이 지구여행을,
감사의 마음으로
떠날 수 있도록.
그 한 줄을 위해
나는 지금도
이 삶을 꿈꾸며
여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