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D케터의 영화 이야기 [생각하多]
“당신은 지금부터 3시간 동안 오펜하이머의 삶을 살게 됩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영화 <오펜하이머>는 원자 폭탄의 아버지로 불리는 오펜하이머의 삶과 심리를 직접 체험하는 영화에 가까웠다. 고작 세 시간 만으로도 버겁고 힘겨운 삶을 그가 평생 감당하고 살았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영화는 뛰어난 연출력을 통해 관객들을 그의 삶과 역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완전히 끌어들인다.
또한 이 영화는 역사의 한 가운데서 최선이라 믿었던 일을 해내기 위해 모든 것을 쏟아 부었고 주어진 벌을 묵묵히 견뎌낸 물리학자들에 대한 헌정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오펜하이머는 자신의 선택이 인류의 미래를 완전히 멸망 시킬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악을 막기 위해 국가의 프로젝트를 성공 시켜야만 한다는 압박 속에서 개인이 감당하기 힘든 심리적 고통을 느꼈겠지만, 정작 핵 실험이 성공한 이후 오히려 그의 삶은 더욱 더 감내하기 힘들 정도로 큰 고통 속에 던져지게 된 상황이 아이러니 했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는, 국가의 영웅이 되어 자신에게 환호하는 사람들을 보다가 커다란 폭발이 일어난 듯 강렬한 빛이 들이치고 사운드가 빠지며 피폭으로 인해 비명을 지르는 것 처럼 보이는 장면이었다.
이후 연설장을 나서고 이어지는 환호성 역시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느껴졌다. 환호하는 사람들의 이면에서 인류의 멸망이 다가올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을 잘 형상화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킬리언 머피의 뛰어난 연기력과 더불어 그의 뒷배경이 끝없이 흔들리며 클로즈업 되는 미장센의 구성은 그가 느끼는 심리적인 압박을 시청각적 요소를 활용해 잘 극대화 시킨 느낌이었다.
또다른 명장면을 꼽자면 핵 폭탄 실험 성공 장면이었다. 보통 폭발하는 장면에서 관객들이 상상하는 것은 커다란 굉음이기 마련이나, 오히려 사운드를 빼고 폭발하는 모습만 시각적으로 담아 관객의 집중력과 긴장감을 높인 뒤, 이후 사운드가 들리게 하는 연출적 방식을 택한 점이 눈에 띄었다.
단순히 폭발을 보여주어 이목을 끄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숨죽여 바라보는 인물들의 심리까지 느끼게 하고 동시에 소리 없이 그 광경을 바라보는 관객들까지 그 장면의 일부로 만들어버리는 이머시브적 요소가 두드러지는 순간이었다.
실험이 성공하고 모든 사람들이 기뻐하는 장면이 나오지만 웃을 수 없었다. 착잡한 마음으로 스크린을 바라보며 영화 속 모두가 웃는 장면에서 되려 눈물이 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그 성공이 인류에게 가져 올 비극을 알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오펜하이머 역시 그 지점에서 상당한 고뇌를 하기 때문에 그의 심리 상태를 그려내는 장면들에서 더욱 몰입이 잘 되었다. 영화 오펜하이머의 마지막 장면이 끝나고 여전히 끝나지 않은 전쟁들과 불투명한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며 한참을 앉아 있었던 것 같다.
마지막으로 아쉬운 점을 꼽자면, 영화 전반부에서 느껴지는 루즈함과 여성의 성적 대상화 이슈, 그리고 여성 과학자들을 전혀 다루지 않았다는 점이다. 특히 여성을 전반부의 지루함을 지우기 위한 장치, 추후 죄책감을 느끼는 장치로서만 활용했다는 점이 시대 착오적이었고 실제 프로젝트에서 두드러지게 활약한 여성 과학자들의 존재를 지워낸 것은 놀란의 작품을 사랑하는 한 관객으로서 많은 아쉬움을 남기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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