놀이터

by young

데구루루 탁.


이어폰을 꽂고 놀이터 앞을 지나가다가 아이들이 차고 놀던 공이 내 앞으로 굴러온다. 슬며시 그냥 모른 척하고 지나가려던 것을 웬일인지 나도 모르게 오른발로 멈춰 세워준다. 저쪽에서 사내 녀석들이 멀뚱하게 나를 쳐다본다. 오른쪽 이어폰을 살짝 빼자 유명 재즈 피아니스트의 유려한 피아노 선율이 물러나고 그 빈자리에 규칙은 없고 오직 생기로만 가득한 어린 소리들이 밀려들어 온다.

저녁시간의 놀이터.


받아라!


나를 향한 시선이 있는 곳으로 몸을 돌려세운 뒤, 오른 발끝에 힘을 단단히 주어 공이 가야 할 방향과 실어야 할 힘을 어쭙잖게 계산해본다.


순간,

공이 툭- 올라타 있는 나의 구두와

발을 뻥- 차내는 나의 옷차림이

너무나 지루하고 부자연스러워 쭈삣거린다.


주춤하는 찰나, 저쪽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며 이쪽을 조금은 신기하게 쳐다보는 눈망울들이 있다. 몇몇은 자신들도 모르게 두 손을 꽈악 쥐고서 제법 듬직하게 웃음을 보낸다. 저쪽과 이쪽을 잇는 길지 않은 선 위에서 불필요한 어색함을 움켜쥐고 줄타기를 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이런 이런.

어리석은 마음을 후우- 큰 숨 한 번에 날려버리고,

재빨리 자세를 다잡는다.


뻐-어-엉-


기분 좋은 마찰음을 내며 기다렸다는 듯이 공이 가볍게 뜬다. 마스크 속의 내 입꼬리가 실쭉 올라간다.


툭!


공이 무리 없이 착지하자, 폴짝폴짝 거리는 눈망울들이 와아아- 하며 싱그러운 소리를 터뜨린다. 이번에는 고맙다고 소리치기가 쑥스러워 멈칫거리는 저쪽에게 이쪽에서 먼저 엄지를 치켜세워준다. 그제야 아이들은 안심하고 되찾은 공을 저들끼리 다시 와르르르 몰고 다닌다.


빼놓았던 이어폰을 다시 끼려다가 끼지 않는다. 집으로 들어가려던 발걸음을 잠시 붙잡아 놀이터 옆 벤치에 앉아 본다. 아직 말이라고 하기에는 미완성인 소리들이 만들어 내는 꾸밈없는 기쁨과 행복 그리고 소소한 서러움들이 공중에 찰랑인다. 저녁시간의 놀이터.


더 이상 아이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직 아이의 엄마도 아닌 내가 놀이터에 갈 이유는 없었다.

하지만 나도 이제 놀이터에 와야겠다.


아이가 아니어도,

엄마가 아니어도,

놀이터에서 놀 수 있는 내가 되어야지.


아, 이어폰은 빼두고 기왕이면 구두는 벗고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