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람 없이 가볍게 눈이 떠지면 왠지 기분이 좋아 두 팔을 머리 위로 쭈욱 뻗어 평소에 잘 켜지도 않는 기지개를 켜본다.
으-으--으읏---!
만화 속 누군가처럼 개운한 소리를 내며 발가락 끝까지 쫘악.
두발을 억지로 굴러 침대 밖으로 튕겨 나오지 않아도 된다. 오늘은 유연하게 몸을 일으켜 우아하고 안정적인 착지를 한다. 아마 이런 날은 오히려 침대가 벌떡 일어나 놀란 두 눈을 껌뻑일지도 모른다.
나는 그런 침대에게 한쪽 눈을 찡긋하며 Good morning!
유유히 방에서 나와 거실과 부엌을 한 바퀴 돌아본다. 밝아진 아침해가 나보다 먼저 집안 구석구석을 깨워놓았다.
몇 안 되는 화분 위 초록잎들이 제법 진해졌다.
냉장고에 붙어있는 여행사진들과 이국적인 풍경의 엽서들이 내 시선을 붙잡아 자꾸 그 속으로 이끈다. 반짝이는 바다와 뜨거운 태양의 노랫소리가 내 귓가에서 점점 커진다.
시원한 탄산수를 유리컵에 따를 때 거품들이 샤글샤글 거리는 소리처럼 파도 거품이 부풀어 오른다.
부풀어 오른 파도가 해변을 간지럽히면 거기에 자갈과 모래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서로 부딪히며 깔깔거린다.
깔깔거리는 돌멩이 위로 파아란 색 비치타월이 펼쳐지면 바닷물로 모퉁이가 살짝 젖어버린 책들이 다시 팔랑팔랑.
혀끝에서 달콤한 칵테일 맛이 감돌며
나른하게 그 책 속으로 빨려 들어갈 찰나,
냉장고 옆 테이블 위에서 끄적이던 펜과 그 아래 누워있는 일기장이 '이봐, 돌아오라구' 하며 나를 다시 오늘로 데려간다.
'아침부터 망고맛 칵테일이라니!'
혼자서 민망한 듯이 고개를 저으며 입맛을 살짝 다신다.
나를 불러놓고 정작 자신은 어젯밤 페이지에 머물러있는 일기장을 서둘러 덮으며 '됐지?' 하고 생색을 내본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되는 느린 아침
자, 이제 커피를 마셔볼까? 하는 느슨한 생각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커피가 내려오는 시간.
드르륵 드르륵 드르륵
커피콩이 부딪히는 리듬을 오른팔로 느끼면서 오늘 하루 최초의 노동을 시작한다. 서두르지 않는다. 오롯한 순간의 나를 위한 시간과 힘을 커피콩 사이에 잘 섞어서 갈아본다.
고소한 냄새가 서서히 올라오기 시작하면 오른쪽 팔의 돌림이 점점 가벼워지다가 곧 멈춘다. 그라인더를 열어 고소하고 신선한 노동의 가루에 코를 맞대어 인사한다.
탁!
전기주전자의 물 끓는 소리가 요란해지다가 뜨거운 김을 푹푹 내뿜으며 전원 스위치가 올라간다.
프렌치프레스에 갈아둔 커피가루를 담고 그 위로 뜨거운 물을 조심스럽게 부으면 보금보금 갈색 액체가 차오른다.
이제부터 4분.
오직 커피만을 바라보는 시간.
경박한 알람 소리로 깊어가는 커피를 방해하기 싫어 드문드문 시계만 곁눈질한다.
3분.
짙은 나무껍질 빛이 액체에 감돌기 시작하면
2분.
또 그만큼 깊어져 버린 묵직한 갈색 향이 넘쳐흐르고
1분.
빛과 향이 하나 되어 혀끝에 그 맛을 예감하면
커피!
프레스를 차분히 내려 갈색 물을 머금은 원두가루를 바닥에 내려 앉히고 오직 액체만을 남긴다.
또르르륵
미리 골라놓은 터키 블루색 머그잔에 아침이 차오른다.
커피의 온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잔을 두 손으로 감싸들고
그 위로 비치는 나와 눈을 맞추고 설레는 입술을 포개면,
몇 분 전 혀끝에 맺히던 예감은 현실로 스며든다.
한 모금은 다크 초콜릿의 달콤 쌉쌀함을
두 모금은 호두의 비옥한 고소함을
세 모금은 블루베리의 싱그러운 산미를.
마지막 한 모금이 남았을 때,
오늘은 꽤 괜찮은 하루가 될 거라는 잔향이 코끝에 감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