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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너 Sep 17. 2020

우물 밖 개구리의 절규

안과 밖은 다른 듯 같은 모습이었다.



우물 안에서 질식할 것 같아 뛰쳐나왔지만 막상 개구리는 끝이 보이지 않는 광활한 대지에서 자유로움을 잠깐 느꼈다가 어디로 갈지 몰라 고개를 여기저기 돌리고 있었다. 광화문 10차로 중간에 선 것처럼 어느 차선을 타야 할지 모르고 다른 차량들은 바빠 달리고 있는데 나 혼자 가만히 어디로 갈지를 생각하고 있었다. 가만히 있는 나를 두고 클락션도 울리지도 않고 그냥 나를 지나치기 바빴다. 목적지가 없는 건 나 혼자 같아 보였다. 철저하게 혼자가 된 느낌이 들었다.



우물 안에는 그 우물만의 아늑함이 있다. 사람들이 집에서도 소규모의 텐트를 쳐놓고 그곳이 아늑하다고 하는 것과 같다. 공간이 작아지면 작아질수록 답답하긴 해도 묘한 소속감과 안정감이 있다. 나름 그 안에서 포근하다고 생각했던 때도 있었다. 포근했던 우물 안을 벗어나면 개구리는 현실을 깨닫는다.



다시 노량진 한복판에 선 것처럼 시공간을 초월한듯한 느낌에 정신이 아찔했고 그때보다 나이만 너무 먹어버린 취업준비생이라는 아직은 낯선 타이틀에 절망했다. 준비 없이 뛰쳐나온 대가는 너무도 잔인했다.




“어떤 일을 할지 결정하고 나올 걸 그랬어요.”
“세상사가 다 그렇죠. 한 순간이죠. 한순간. 생각하고 나오는 거 그게 가능했으면 아직도 공무원이실지 몰라요.”
“33살에 지금 어딜 가던지 비전은 없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는 사람들의 눈이 날카로웠다. 자격지심 때문인지 그 눈빛에 비웃음이 섞여 있는 듯했다.

자신이 처한 상황은 자신이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 리스크를 감수하면서까지 한 선택은 결국 나의 책임이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다. 현실과 한계를 들킨 사람은 부끄럽다. 피하고만 싶다. 학원을 나오면서 나는 그 학원에는 등록하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세상이 돋보기로 본 것처럼 더 적나라하게 보이는 거 같다.

그 안에 있을 때는 코로나는 그저 마스크를 써야 하는 답답함 밖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내가 도전하는 일을 시작하기도 전에 학원이 다 막혀버렸고, 자영업 13만 개가 12만 개로 줄어들었다는 기사도 심각하게 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실제로 거리에 나가면 비어버린 상점과 임대문의라는 글자가 난무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게 모든 것을 멈춰버렸다는 게 피부로 실감이 됐다.

지금은 내가 시간을 두고 조금 멀리 떨어져서 관망해야 할 때라는 것을 느끼며 조금 천천히 가자고 다짐했지만 때때로 불안감에 잠식되는 나는 어쩔 수가 없었다.



옷 하나를 사더라도 선택지를 줄여 보고자 작은 규모의 옷가게를 선호하는 나는 거대한 사회에서 12,000여 개가 있다는 직업 중 그저 찔러보고 간만 보고 있을 뿐... 어떤 것을 선택하진 못했다.

어렸을 때 충동적으로 공무원을 선택했을 때와는 달리 더뎠고 생각도 많았다. 내 성격, 성향, 내 나이,  오래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인지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나면 선택지가 아예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나에게 맞는 직업은 그 수많은 선택지에는 없는 것같이 느껴졌다. 하고 싶은 직업을 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냐고 했던 엄마 얼굴이 자꾸 떠올랐다. 하고 싶은 직업이 하나 있었지만 다시 대학을 가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또 선을 그었다.



“은희야, 나는 도대체 지금까지 대학교도 졸업 못하고 뭘 하면서 살았지..?”
“언니가 뭘 하긴 뭘 해. 5년 동안 공무원 했잖아”



그 잘난 전직 공무원이라는 게 아무짝에 쓸모없는 경력이 되어버렸다. 흡사 컴퓨터 휴지통에서 클릭을 잘못해서 완전 삭제돼서 아예 흔적이 없어진.. 공무원을 위해 달려오고 또 일했던 8년이란 세월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순식간에 사라진 느낌이었다. 성공하면 경험이 되고 그와 반대되면 실패가 되어버리는 것이 나에게는 철저히 실패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 어른들이 대학을 가고 졸업장이 있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하는지 이제야 깨달았다. 그건 마지막 보루 같은 거였다. 어른들의 말씀은 옳았다.



끊임없는 자기혐오와 자기 연민이 왔다가 갔다가 했다. 다른 사람들은 다 버티는 그 공무원 생활을 나는 왜 버티지 못했을까 나는 왜 이렇게 나약한 걸까 밖에서도 또 동기들과 나를 비교하고 있었다.

숨이 턱 하고 막혔다.



안에서 뛰쳐나오면 사람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거라 착각했다.

나는 여전히 그 안에 갇혀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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