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도 이제 최신 과학기술 관련, 양질의 기사를 누릴 시점이 되었다.
일인 당 GDP 3만 불을 넘었다고 선진국이라고 자부하는 한국, 그리고 그 한국 사람들이 많이 보는 뉴스 포털에 올라오는 과학기술 관련 뉴스는 정치, 사회, 그리고 스포츠에 밀려 늘 관심 밖인 경우가 대다수다. 아주 중요한 연구 결과는 일 년에 한두 번 보도될 뿐이고, 대다수의 연구 결과 관련 기사들은 연구자 혹은 연구자가 속한 기관에서 홍보자료로 뿌리는 내용에 기반한 기사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연구가 국민의 세금으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그 성과에 대해서도 국민들은 알 권리가 있고, 따라서 적절한 빈도로 적절한 깊으로, 그 성과들에 대한 해제 기사가 보도되는 것은 필요하다. 이왕 과학기술 연구 성과 관련 기사가 나온다면, 이제 그 경제규모와 수준에 걸맞게 이렇게 바뀌었으면 좋겠다. 개인적인 소망일 뿐이니, 당연히 모든 사람의 마음에 들지는 않을 것이다.
1. 일단, '과학+IT 관련' 섹션은 '과학'과 '최신 기술' 섹션으로 분리했으면 좋겠다. 애초, 과학과 IT를 같은 섹션에 묶는 것은 90년대 이전에나 어울리지, 21세기가 20년이 지나가고 있는 이 시점에는 어울리지 않는다. 과학은 주로 국내외 최신 기초과학 연구 성과에 대한 내용, 그것에 대한 해설, 윤리적 문제에 대한 제언, 과학기술정책 등에 대한 내용으로, 최신 기술은 IT를 비롯하여 각종 의학적, 공학적 신기술과 신제품 성과 (홍보가 아닌..), 기술 수출 등에 대한 내용으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기초과학 연구 성과는 기사 말머리에 분야를 같이 분류해 주었으면 좋겠다. 원자물리학 관련이라면 [물리학], 새로운 분자 합성이라면 [화학], 단백질 구조 발견이라면 [생물학] 정도라고 거칠게라도 분류해 줬으면 좋겠다.
2. 과학 세션에 보도되는 뉴스는 기관이나 연구자가 뿌린 보도자료를 그대로 crtl+c, crtl+v하지 말고, 기자의 관점에서 해설하고, 연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그렇지만 그 분야의 전문가의 제삼자 관점에서의 논평도 같이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기자가 스스로 해설 기사를 쓸 능력이 없다면, 해설을 해 줄 만한 전문가를 섭외하여 해설을 곁들이면 좋겠다. 어느 매체를 들어 가도 똑같은 앵무새 같은 내용이 실려 있다면, 네트워크 자원 낭비고, 지면 낭비다.
3. 과학 세션에 보도되는 뉴스가 최신 연구 논문을 다루고 있다면, 그 논문의 서지 사항 (논문 제목, 저자, 저널명, 권/호/페이지, & DOI)을 기사 말미에 링크시켜 주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궁금한 독자들은 링크만 클릭해도 저널의 페이지로 바로 연결되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저자가 3명 내외라면 3명의 이름을 다 써주고, 4명을 넘어가면 '1 저자와 주저자 등'이라고 표현하면 좋겠다. 또한, 기사 중에 'XXX'에 게재되었다고 표현할 때, XXX를 굳이 한국어로 쓰지 말고, 그냥 원문으로 써 줬으면 좋겠다. 예를 들어 저널 오브 피지컬 케미스트리 혹은 물리 화학저널 이렇게 표현하지 말고, The Journal of Physical Chemistry 이렇게 표현했으면 좋겠다.
4. 과학 세션에 보도되는 뉴스가 최신 연구 논문을 다루고 있다면, 연구 내용에 초점을 맞췄으면 좋겠다. 어떤 저널에 나왔다는 것, 그리고 그 저널의 IF가 얼마라는 것을 굳이 괄호로 치지 않았으면 좋겠다. 가끔씩 JCR 상위 몇 % 라는 수식어도 보이는데, 독자들 입장에서는 별로 관심 없기도 하고, JCR이 뭔지도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다. 과학 기술 분야 종사자가 아닌 일반 독자들 입장에서는 IF, JCR% 같은 불필요한 distraction이나 정보는 필요하지 않다.
5. 과학 및 최신 기술 섹션에 보도되는 성과, 특히 최신 논문 관련된 성과에서 굳이 저자들의 사진을 넣어야겠다면, 1 저자와 주저자 사진을 병치시켜서 같이 실어 주었으면 좋겠다. 대부분 PI 사진만 넣는데, 그것은 1 저자로 역할을 다한 대학원생, 포닥급 연구자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개인적으로는 가급적 연구자 사진은 증명사진 같은 사진은 안 썼으면 좋겠다. 그냥 박제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기사로 실어야 하는 사진이라면, 기자가 인터뷰하고 인터뷰 과정에서 찍은 사진을 활용했으면 좋겠고, 한 컷에 가급적 모든 연구자들이 다 포함되면 좋겠다.
6. 과학 및 최신 기술 섹션에 보도되는 성과에서, 연구자들이 속한 기관을 소개할 때 괄호로 기관장의 이름을 안 넣었으면 좋겠다. 외국 매체의 과학기술 관련 뉴스에서 기관장의 이름을 넣는 경우를 거의 보지 못 했다. 기관장 이름이 연구자 이름보다 먼저 나오면, 기사의 수준이 굉장히 촌스럽게 느껴진다. 더 촌스러운 것은 기사 말미에 그 연구를 지원한 과제의 지원 기관장까지 나열하는 것인데, 예를 들어 '이 연구는 XX재단의 XXX사업으로 지원되었다'라고 까지 하는 것은 당연히 과제를 지원한 기관의 크레디트를 인정하는 것이니 보기 나쁘지 않은데, '이 연구는 ZZZ 부 (장관 :AAA) XX재단 (기관장 : YYY)의 XXX사업으로 지원되었다'라고 하면 참 보기 좀 그렇다. 기관장이 그 과제를 지원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7. 최신 연구 성과에 대한 소개에서, 그 성과가 왜 중요한지, 그간 관련된 연구들도 같이 언급해 주면 좋겠다. 예를 들어, 크리스퍼로 어떤 새로운 연구를 한 것이 Nature 어쩌고에 나왔다면, Nature 어쩌고에 나와서 중요하다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그간 이런 문제가 크리스퍼로 해결 안 되고 있었는데, 이 결과로 해결의 실마리가 보였다는 식으로 맥락을 짚어 줬으면 좋겠다.
8. 최신 기술 성과에 대한 뉴스는 그 업체의 광고로 보이지 않게 해 주었으면 좋겠다. 업체 대표의 이름을 굳이 써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위에 기관장 이름 언급하지 말아야 하는 맥락에 맞춰, 언급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특정 기업의 기술적 성과는 기술적 성과에 초점을 맞춰야지, '세계 시장 석권 가능성' 뭐 이런 미사여구로 그 기업의 주가에 초점을 맞추는 식의 논조로 기사가 흘러가지 않았으면 좋겠다.
9. '한국 최초', '세계 최초', '한국 최고', '세계 최고', '한국 유일', '세계 유일', '한국 단독', '세계 단독' 같은 한정사는 가급적 사용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연구 논문을 쓸 때도 novel이나 new나 disruptive 같은 표현은 저자들이 스스로 쓰는 것이 금기시된다. 혹시나 실수로 그런 표현을 쓴다면 리뷰어들이나 에디터가 고치라고 지적할 가능성이 높다. 연구 성과에 대해 한정사를 붙일 정도로 평가할 수 있는 것은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동료들, 그리고 사용자들과 나아가 일반 시민들이 경험하면서 하는 것이 마땅하기 때문이다. 평가의 주체는 기자나 연구자가 아니고, 동료 과학자들 엔지니어들과 나아가 시민들이다.
10. 엠바고가 걸린 뉴스는 확실히 엠바고를 지켜 줬으면 좋겠다. 과학 성과나 최신 기술에 관련된 엠바고 기사 중, 나중에 생각해 보면, 사실 그렇게 호들갑 떨 정도로 흥분할만한 성과는 그렇게 많지 않다. 지킬 것은 지켜 줬으면 좋겠다.
11. 과학자를 인터뷰한 기사는 인터뷰 대담을 극본 나열하듯 나열하지 말고, 대담의 일부를 발췌하면서, 기자의 시선으로 내러티브가 살아 있게끔 하나의 글로 완성되면 좋겠다. 인터뷰 기사는 청취록을 복사하여 붙이는 것과는 달라야 한다.
12. Scientific Reports 저널을 폄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 저널에 논문 나왔다고 '네이처 자매지'라고 좀 안 했으면 좋겠다. 몇 년 전에 이런 경향은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아직고 간혹 이런 표현이 기사에 보인다. 기자가 쓴 것이 아니라, 아마도 연구자나 기관에서 보도 자료를 만드는 과정에서 이런 표현을 쓴 것인데, 알만한 사람들에게는 참 부끄러운 일이다. 제발 부끄러움은 읽는 이의 몫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논문 내용에 자신 있다면 어느 저널에 나왔고, 그 저널이 네이처 자매지인지는 그다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겉치레만 자꾸 강조하면 내용은 그에 비례하여 점점 없어 보일 뿐이다.
13. 재미 한국인이 달성한 과학적 성과 신기술 개발에 대한 뉴스를 국내 연구진이 한 것인 양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성과는 엄연히 미국의 것, 그 기관의 것이기 때문에, 그 한국인에 대해 한국 사람으로 자랑스러워 할 수는 있어도, 한국의 성과로 착각을 유도하면 안 된다. 손흥민이 아무리 EPL에서 날고뛰어도, 한국 축구의 수준이 같이 올라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4. 연구자들 입장에서, 가끔씩 본인이 해외에서 서브밋까지 한 논문이, 한국 대학이나 기관으로 돌아온 후 출판되는 경우, 그것을 보도 자료로 내놓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을 한-미, 한-영, 한-독 등 공동 연구진의 성과라고 포장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엄밀히 말해, 그 성과는 그 연구자가 속해 있던 해외 기관의 성과고, 한국의 현 기관은 affiliation만 빌려 준 것이기 때문이다. 공동 연구 성과가 아닌데, 공동 연구 성과라고 하면 안 된다. 이런 경우는 예외다. 미국에서 반 정도 하다가 마무리를 못 짓고, 한국에 돌아온 후, 연구를 지속하여 마침내 마무리를 지어서 출판되면, 그리고 마무리 지을 수 있도록 한국의 소속 기관이나 과제에서 지원을 받았다면 한-미 공동 연구진이라고 해도 괜찮지 않을까 한다.
15. 과학 혹은 기술 섹션에 어느 기관의 누군가가 Marquis Who's Who 같은 스캠 성 인명사전 등재되었다는 식의 뉴스는 제발 더 이상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단언 컨대, 이런 기사는 보도 자료를 뿌리고 싶은 연구자나 기관의 브랜드 가치 제고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이미지만 깎아 먹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이 중요하다고 혹시 착각할지도 모르는 다른 이들에게 사기당할 경로를 열어 주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우리나라는 경제 규모도 충분히 선진국으로 분류될 만큼 커졌고, 과학 기술 관련 연구 성과도 10년 전 20년 전과 비교하면 양과 질 모두 비약적으로 발전하였으며, R&D 투자도 세계 탑 수준이며, 시민 의식도 그만큼 성숙하고 있는 단계로 접어들었다. 이제 그 성과를 과학 기술 분야 종사자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들도 충분히 향유하고 정보를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토양과 분위기가 형성된 것이다. 그것의 중요한 매개체가 되는 뉴스 미디어가 과학과 기술 관련 기사를 쓸 때, 이런 부분들을 조금만 더 신경 써 주면 참 좋을 것 같다. 그리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해질 수 있도록, 뉴스 매체들이 과학 기술 분야 기자 양성에 더 많이 투자를 해 줬으면 좋겠다. 아니면 아예 이런 분야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온라인 매체가 등장했으면 좋겠다. 필요하다면 나도 그런 매체의 전문성 확보에 도움을 의당 제공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