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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는 얼마나 신뢰받을 수 있는가?

과학자 집단 역시 공동체의 일원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by 권석준 Seok Joon Kwon

2020년 말 이런 여론조사가 화제가 된 적이 있다.

https://www.pewresearch.org/.../ps_2020-09-29_global.../


위의 뉴스는 요약하자면 각국의 시민들이 과학(자)을 얼마나 신뢰하는지에 대한 자료다. 한국은 주요 국가 중에서도 과학자에 대한 신뢰 수준은 상당히 하위권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예를 들어, 매우 신뢰 (a lot), 다소 신뢰 (some)을 합친 수치는 69% 정도다. 아예 신뢰하지 않거나 거의 신뢰하지 않는다 (not at all/not too much)는 수치는 23% 정도다. 많은 이들이 이 수치를 보고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한국이 이른바 '저신뢰 사회'라서 그렇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한국의 과학적 시민의식이 여전히 수준 이하라서 그렇다고 하시는 분도 있고, '유교국가'라고 한탄하시는 분도 있고, 정치적 이념이 과학마저도 집어삼켰다고 한국의 왜곡된 정치 지형을 성토하시는 분도 있다. 그런데 한 발짝 잠깐 물러서서 애초에 이런 설문 조사가 제대로 된 설문 조사 인 지부터 살펴보는 것이 '과학자'로서는 우선 취해야 할 입장이다.


내가 비록 survey 전문가는 아니지만, 이 설문은 누가 봐도 좀 엉성하게 설계된 것으로 보인다. 일단 설문 항목이 3개밖에 없고 (a lot, some, not at all/not too much), 그나마 not at all/not too much는 혼용되어 있다. 당연히 'trust'라는 개념은 정량적으로 측정될 수 없는 개념이므로, 이렇게 다소 두리뭉실한 설문 항목이 생성된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닌데, 애초에 가급적 극단적인 답변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는 한국인들에게 a lot과 not at all 같은 항목은 상당히 부담스러운 항목에 해당한다. '정말 강하게 믿어요'와 '그래도 믿는 편입니다' 사이에는 꽤 큰 간극이 있는 것 같지만, 결국 '믿는다'는 상위 층위로 넘어오면, 둘 사이에는 크게 의미가 차이 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애초에 종교의 영역도 아닌 부분에 대해 a lot이라는 항목을 넣는 것 자체가 말이 되는지부터 좀 회의적이다. 또한 'not too much'와 'not at all' 역시 뉘앙스가 많이 다른 항목이다. '그렇게 강하게 믿는 것은 아니네요'와 '전혀 믿지 않아요'는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 때문이다. '사기꾼을 믿습니까'라는 설문이 있다면 not at all이라는 항목이 의미가 있겠지만, '과학자의 연구를 믿습니까'라는 설문에 대해 'not at all'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모르겠다.


또한 애초에 이 설문의 목적이 무엇인지도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한다. 설문의 원문을 살펴보면 이렇다. 'who say they have ( ) trust in scientists to do what is right for'라고 되어 있다. 내가 주목한 부분은 이 문장의 뒷부분이다. 그냥 믿는 것이 아니라 'right'하다고 생각하는 일을 하는 것을 믿느냐이다. 이것은 과학자 자체에 대한 신뢰라기보다는,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과연 '사회적으로 right 한 것이냐'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것에 가깝다. 과학에 대한 신뢰가 아닌 과학자들의 연구, 나아가 그들의 직업윤리 혹은 직업의식이 상식적인 관점에서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정의로움(?)'에 얼마나 가깝게 있는지를 물어본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이에 대해 충분히 숙고하며 답변한 응답자가 얼마나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은 '과학자를 신뢰하세요?'라는 질문으로 이 문장을 단순화시켜 평상시 자신이 가지고 있던 과학자의 이미지를 떠올리며, 롤모델이나 최근에 읽은 교양 과학서적의 저자를 생각한 이는 아마도 +로, 황**, 송**이나 기타 안 좋은 사례를 떠올린 사람들은 아마도 -로 응답의 방향을 정했을 것이다. 즉,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과연 사회적으로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느냐와는 크게 상관없는 답변이었을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애초에 설문이 좀 혼란스럽고 항목이 제한적이며 그나마 항목의 grouping도 좀 불합리하게 설계된, 그리고 신뢰도 혹은 오차 범위나 sample number 등이 제대로 기재 안 되었고, sampling 방법이 제대로 기술되지 않은 단순한 나라별 bar graph 결과에 대해 지나치게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다소 피곤한 일일 수도, 그리고 조금 오버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데이터에 생각할 지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선 설문 조사만 놓고 본다면, 한국을 포함하여 많은 주요 국가들의 시민들은 기본적으로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신뢰를 보내는 편이라고 생각한다. median기준으로 어쨌든 신뢰하는 편이라고 답한 비율은 76%로서, 넷 중 셋은 신뢰한다는 편이니 상당히 높은 비율이다. 만약 같은 질문을 언론인이나 정치인 종교인에게 했으면 이렇게 높은 비율이 나오지는 않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또한 과학자에 대한 신뢰 외에, 이 조사에서 나온 결과 중 하나는 정파별로 얼마나 과학자들의 연구에 신뢰를 보내느냐에 대한 부분이다. 다만, 이 역시 조사 결과가 다소 편향될 수밖에 없는데, 이 조사는 믿느냐 여부가 아니라 'a lot trust'로 변수를 고정하여 설문 조사를 행했다는 부분에서도 이 사실이 드러난다. 차라리 'not at all'만 binary 변수로 고정하여 그것의 여집합을 계산하는 것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이 결과 역시 시사하는 부분이 없는 것은 아니다. 미국은 이른바 정치적 우파가 좌파에 비해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많이' 신뢰하는 수준이 바닥 (20%)이었다. 우파는 기본적으로 정부를 지지하고 따라서 정부의 세금으로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미국의 우파들이 이 정도로 바닥 수준의 신뢰를 보내는 것은 좀 의아한 부분이다. 과학자들에 대한 신뢰가 바닥이라기보다는, 그들의 연구가 세금 낭비이고 자꾸 자신들의 일자리를 뺏어간다, 따라서 사회적으로 right 하지 않다는 생각으로 귀결되었기 때문에 이런 응답을 했을 수도 있다.


흥미롭게도 한국은 좌우파 상관없이 가장 낮은 수치의 a lot trust를 보인다. 물론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이것은 다소 편향된 응답 수치이기 때문에 지나친 해석을 할 필요는 없다. 좌우파 할 것 없이 극단적 응답을 한 사람들의 비율이 그만큼 낮았다는 의미일 수도 있다. 오히려 not at all 비율을 비교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분명히 꽤 큰 차이가 보였으리라 생각한다. 다만 내 주변에서 만나는 '비과학자' 분들과 이야기를 해 보면, 그분들의 정치적 입장과 과학 혹은 과학자에 대한 이해는 큰 상관관계가 없었음은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현상이긴 했다. 이는 과학에 대해 교과서에서 배운 것 이상의 이해가 거의 없고, 따라서 언론에 오르내리는 연구 소식에 대해 피상적 이미지 외에 얻는 것이 없으며, 한국에서 유명한 과학자들이 연구로 유명하기보다는 언론이나 방송에 출현하는 빈도로 유명한 (즉, 유명한 것으로 유명한) 경우가 많아서 학계를 대표할 수 있는 '프로페셔널 직업인'으로서의 이미지가 정립되지 못 한 측면이 있어서라고도 추측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생각하면, 한국 시민들의 과학 의식이 후진국 수준이라고 폄하할 필요는 없다.


따라서 정체불명의, 그리고 설계 과정이 불명확하고 샘플링 방법에 다소 편향이 가미되어 있는 이러한 결과물에 대해 지나치게 일희일비할 필요는 없다. 그리고 저신뢰 사회랄지 유교국가랄지 중진국의 함정이랄지 라며 과도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도 다소 오버다. 그렇지만 이런 논의를 통해 한국 사회가 과연 다른 직업인에 비해 과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서 얼마나 사회적으로 그 일들이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특히 세금으로 지원되는 많은 연구들, 그중에서도 기초과학에 대한 연구들에 대해 그것이 얼마나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일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한 비율은 조금 더 세밀하게 조사할 필요는 있다. 기초과학 연구와 대형 기술개발사업은 일부 사립재단이나 대기업의 지원을 제외하면 거의 전부가 정부의 세금이 없다면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다. 과학자들은 목소리 높여 국가가, 사회가, 정부가 기초과학을 죽이면 안 된다고 외치지만, 그 목소리가 매일 치열한 삶의 전투를 이어가는 시민들의 마음 어디까지 와닿는지는 솔직히 나도 잘 모르겠다.


원칙론적으로 앵무새처럼 '기초과학은 한 나라의 부가가치 창출의 뿌리로서 그 중요성을 일일이 이야기하는 것은 입이 아프다'라고 나 스스로도 자주 이야기하지만, 당장 오늘 벌지 않으면 내일 굶어야 하는 분들, 정부의 20만 원 지원금이 없으면 다음 달 약값이 없어서 죽음의 시계가 앞당겨지는 분들, 저녁 6시 이후에는 돌봐 줄 사람이 없어 홀로 두려움과 외로움 가득한 마음으로 밤을 지새야 하는 독거노인이나 장애인, 그리고 많은 부모 없는 어린이들에게 그 과학이라는 것은 TV에서 나오는 예능 프로그램만도 못 한 것이 아닐까 싶다. 당장 피부에 와닿는 결과물을 주는 것도 아니고, 마음의 위안을 주는 것도 아니고, 100만 원 하던 약값이 10만 원이 되게 만드는 것도 아니고, 내 골방의 장판 온도를 5도라도 더 올려 줄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과학자들의 연구는 결국 과학자들 스스로의 커리어 장식품만은 아니다고 자신 있게 단언할 수 있는 과학자들, 특히 나를 포함하여 정부의 세금으로 연구하고 논문 쓰는 과학자들은 과연 얼마나 될지 궁금하다. 나 스스로에게도 반성이 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고통스럽지만 사실 이런 부분을 과학자들, 그리고 과학사회학자들이 더 사려 깊게 들여다보아야 한다. 대한민국 사회의 시민 수준은 한국이라는 나라의 겉보기 덩치가 성장한 것에 비해 여전히 소프트웨어는 다소 쳐졌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지만, 30대 이하 젊은 세대의 배움의 밀도는 어마어마하며 지식의 습득 능력과 도구도 건국 이래 최고의 수준이다. 해방 이후 이미 70년이 훌쩍 지나갔고, 더 이상 중진국도 개도국도 아니고 엄연한 선진국으로 분류되는 나라가 되었고, 그래서 어떤 선진국에서든 있을 수밖에 없는 사기꾼들과 유사 과학자들을 제외하면 어쨌든 과학과 기술의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으며, 국가 예산 대비 연구개발 비용의 비율은 세계 top 수준이고, 과학은 사회의 일부로서 조금씩 시민 사회 속으로 스며들고 있다. 시민 사회에서는 여전히 과학을 일종의 '지식 체계'로 혹은 암기 과목의 뉘앙스로, 혹은 그저 교양의 일부로만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는 부분은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어쨌든 그 gradient가 positive라는 것은 명확하고, 그만큼 사회적으로도 과학, 그리고 과학자에 대한 인식은 더 깊고 넓어졌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학이나 과학자에 대한 trust가 기대 이하라는 부분에 대해 과학자들이 비난의 화살을 시민 사회로 돌리는 것은 무리다. 대기업에서 연구개발에 종사하는 연구자들은 애초에 시민 사회의 trust를 걱정할 필요가 없다. 오히려 그들이 걱정해야 하는 부분은 매년 수익률과 그것이 반영되는 주가에 민감한 stock holder 들일뿐이다. 역으로 생각하면 시민 사회를 신경 써야 하고 그들의 의견과 인식에 대해 고민해야 할 측은 세금으로 연구하는 과학자들이다. 결국 자금을 투입하는 정부는 시민이라는 stock-holder를 대변하는 agency일 뿐이고, stock-holder들은 언제가 되었든, 자신들의 투자에 대해 결과물을 궁금해하고 실적을 보고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그 연구 결과물이 자신의 인생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질문할 권리가 있다.


과학자들이 상아탑에만 갇혀서 스스로의 연구에 파묻혀 지내며, 가끔씩 좋은 성과로 나라의 명예도 빛내고, 운 좋으면 사람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N 모 상도 수상하면서 국민들 어깨에 힘 좀 들어가게 해 주는 것도 가히 나쁜 것은 아니겠으나, 조금 더 실질적인 레벨에서 시민 사회가 과학자들, 특히, 과학자들이 하는 연구가 사회적으로 얼마나 right 한 것인지에 대해 신뢰를 갖게끔 꾸준히 사회와 interaction 하고 스스로의 연구와 그 진행 방향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나무 보기에만 파묻혀 있으면 자신의 원자력 연구가 갑자기 무기로 변하는 순간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자신의 신물질 연구가 신약으로 돌변하여 무시무시한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는 것을 캐치하지 못할 수 있다. 기업이 의뢰하는 의도를 캐치하지 못하고 연구비에 목말라 자신도 모르게 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꼴이 되어 가습기 살균제를 과학적으로 정당화하는 도구로 전락할 수도 있다. 시민 사회가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 그것이 right 한지를 믿는지 여부는 바로 과학자 스스로가 자신의 사회적 role, 그리고 자신의 연구가 갖는 여러 층위에서의 사회적 함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보일 때 더 깊고 넓어질 수 있다.


과학자들 역시 시민 사회의 구성원이고 과학자 역시 사람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과학자들에 대한 사회의 신뢰는 과학자들의 논문으로 대변되는 것이 아니라 그 논문이 전달하는 연구 결과의 사회적 의미에 대한 과학자 스스로의 평가와 사회로부터 오는 feedback에 대한 성실한 response로 결정된다는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 특히 세금으로 연구하는 사람들은 잊으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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