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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리프트

by 지나온 시간들

나는 스키를 탈 줄 모른다. 젊었을 때 스키장에서 몇 시간 정도 렌트를 해서 한두 번 타본 것이 전부이다. 그때 너무 많이 넘어져 고생을 하기도 했고, 그 이후 경제적으로 어려워 스키장엘 갈 엄두도 내지 못했다. 시간이 지나 자리를 잡고 조금은 여유가 생겼을 때 나는 비록 스키를 배우지는 못했지만, 아이들에게는 스키를 가르쳐 주고 싶었다. 한겨울 눈 쌓인 스키장에서 유유히 스키를 타며 내려오는 모습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아이들이 겨울 스포츠로 그런 것을 즐기면 좋을 것 같았다.


몇 년도였는지 잘 기억은 나지 않는다. 아마 아이들이 10살 안팎이었을 것이다. 막내는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이었던 것 같다. 온 식구를 데리고 한겨울 스키장엘 갔다. 근처 리조트에 2박 3일로 예약을 하고 아침 일찍 아이들에게 스키를 렌트해 주었다. 아빠도 같이 타자고 아이들이 졸랐지만, 나는 이미 스키 배우기에는 너무 늦었다는 핑계로 구경만 하겠다고 했다. 사실 예전의 경험 때문에 스키가 무섭기도 했고, 나이가 들어 유연성이 떨어져 배우기도 힘들 것 같았다. 게다가 온 식구가 스키를 타다 보면 심부름해야 할 사람도 필요할 것 같았고, 돈도 아끼면 좋을 것 같았다.


휴게실에 앉아 창문으로 아이들이 스키를 배우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큰 애는 어느 정도 커서 그런지 어렵지 않게 스키를 배우는 것 같았다. 몇 번 넘어지고 그러더니 제법 스키를 타는 것이었다. 둘째와 셋째는 아직 어리고 몸도 작아 아무래도 힘에 부쳐 보였다. 한참 시간이 지나자 아이들이 조금은 지쳐 보였다. 핫코코아를 사서 휴게소 밖으로 나가 아이들을 불렀다. 따뜻한 것을 먹이고 났더니, 큰 애가 이제 자신은 스키 잘 탈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 위에서부터 내려오고 싶다고 했다. 초급 코스 리프트를 끊어서 아내와 큰 애를 올려 보냈다. 둘째와 셋째는 아직 어려 둘이 스키를 타기에는 너무 힘들어 내가 옆에서 지켜보면서 타기로 했다. 나는 운동화를 신고 아이들 옆을 쫓아다니며 넘어지면 일으켜주고 다시 넘어지면 또다시 손을 잡아 일으켜주곤 했다.


그렇게 한두 시간이 지나니 둘째와 셋째도 넘어지지 않고 제법 흉내를 내며 타기 시작했다. 큰애와 아내가 리프트를 타고 꼭대기에서 내려오는 모습을 보더니 너무나 부러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은 리프트를 타기에는 힘들 것 같았다. 아직은 초급 코스에서 스키를 타고 내려올 정도가 아닌 것 같고, 혹시 사고라도 나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도 자꾸 둘째와 셋째가 자꾸 큰애가 리프트 타는 것을 쳐다보기에 안 되겠다 싶어 내가 그냥 리프트가 되어 주기로 했다.


초급 코스 옆에 스키를 처음 배우는 사람들의 연습을 위한 야트막한 언덕이 있었는데, 길이가 제법 길어 100미터 정도는 되어 보였다. 경사도도 너무 크지 않아 꼭대기에서부터 타고 내려오면 제법 재미있게 놀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언덕에는 리프트가 없어서 본인들이 직접 걸어 올라가서 타고 내려와야 했다. 하지만 아이들이 걸어 올라가기에는 너무 힘에 벅차 보였다. 그래서 아예 내가 아이들 둘을 직접 꼭대기까지 끌고 올라가서 아이들이 슬로프를 타고 내려오면 다시 내가 아이들을 끌고 올라가서 태우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몇 번을 타고나더니 둘째와 셋째가 큰애 쪽을 쳐다보지도 않고 재미있게 타는 것이었다. 그렇게 아이들이 내려오면 다시 끌고 올라가서 내려오고, 다시 끌고 올라가서 내려오게 해 주었다. 그러더니 아이들이 내가 끌고 올라갈 때마다 ‘아빠 리프트, 아빠 리프트’라고 하며 너무나 즐거워하는 것이었다.


그날 하루종일 나는 아빠 리프트가 되어 그 언덕을 수십 번 아이들을 끌고 올라갔던 것 같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언덕을 그렇게 많이 올라갔어도 나 또한 힘들지 않고 너무나 즐거웠던 것이다. 물론 나중에는 체력이 바닥이 나서 조금은 힘들고 피곤하기는 했지만, 그 피로를 그리 많이 느끼지는 못했다.


아빠 리프트는 그다음 날에도 계속되었다. 그러는 사이 둘째와 셋째도 제법 스키 실력이 늘어났다. 사실 그날은 오후가 아닌 오전부터 아빠 리프트를 하느라 오후에 가서는 내 체력이 바닥이 나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둘째와 셋째도 이제는 초급 코스의 리프트를 타도 될 실력이 되었다. 매표소에 가서 둘째와 셋째를 위해 초급 코스 리프트를 끊어 아내와 아이 셋을 모두 초급 코스로 올려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시 휴게소에서 커피를 마시며 아이들이 스키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 많은 스키 타는 사람 중에 오직 우리 가족이 어디에 있는지만 눈을 크게 뜨고 찾으며 그렇게 하루를 보냈다. 하루종일 스키를 타도 지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는 행복을 느꼈다. 그 모습을 보며 나중에 커서 친구들이나 다른 사람들하고 스키장에 와서 유유히 코스를 즐기며 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스키를 타지 못한다. 스키장에 가지도 않는다. 내 인생에서 스키에 대한 추억은 ‘아빠 리프트’가 전부이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는 눈 오는 추운 겨울의 가장 아름다운 추억이다. 아이들을 끌고 아빠 리프트가 되어 그 언덕을 올라가던 그 시간들이 나에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 중의 하나로 영원히 남아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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