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나온 시간들 Sep 02. 2023

알 수 없는 일, 알 수 없는 길

   삶은 의지대로 이어지기도 하지만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는 알 수 없는 일들이 일어나고 그로 인해 알 수 없는 길을 가기도 한다. 알 수 없는 길로 가다 보면 다시 원하는 길로 가고 싶어도 돌이켜 가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그로 인해 후회를 하기도 하고 가슴 아파하기도 한다. 진정으로 원한 것은 다른 곳에 있었는데 알 수 없는 곳에서 삶을 경험하고 또다시 알 수 없는 길을 가게 되기도 한다. 황정은의 <상류엔 맹금류>는 일상의 사소한 일로 인해 세월이 지나면서 자신이 전혀 알 수없었던 길을 가고 있음을 이야기하는 소설이다. 


  “나는 오래전에 제희와 헤어졌다. 수목원 나들이가 있고 이 년쯤 지난 시점이었을 것이다. 헤어질 무렵엔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모르겠다. 무슨 일을 계기로 헤어지게 되었는지도 지금은 기억나지 않는다. 어째서일까? 그날의 나들이는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데.”


  제희와 헤어지게 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느 날 같이 했던 나들이가 그들의 관계를 일그러뜨려 버리고 말았다. 생각해 보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었는데, 전혀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이었는데, 알 수 없는 일이 일어나서 그로 인해 그와의 관계가 완전히 끝나버린 것이다. 이제는 돌이키려 해도 돌이킬 수가 없고, 다시 시작하려고 해도 할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길로 들어서 버렸고, 그 길에서 보내 세월들이 이제는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아무리 소원한다고 하더라도 더 이상 그때로 돌아갈 수가 없다.


  “나는 지금 다른 사람과 살고 있다. 제희보다 키가 크고 얼굴이 검고 손가락이 굵은 사람으로 그에게는 누나나 형이나 동생이 없다. 그의 부모님은 자동차로 두 시간 걸리는 소도시에서 살고 있고 두세 달에 한 번쯤 나는 그와 함께 그 집을 방문해 밥을 먹고 돌아온다. 그는 내게 친절하고 나도 그에게 친절하다. 그러나 어느 엉뚱한 순간, 예컨대 텔레비전을 보다가 어떤 장면에서 그가 웃고 내가 웃지 않을 때, 그가 모는 차의 조수석에 앉아서 부쩍부쩍 다가오는 도로를 바라볼 때, 어째서 이 사람인가를 골똘히 생각한다. 어째서 제희가 아닌가.”


  삶은 어쩌면 불확실함으로 가득한지 모른다. 그런 불확실함에서 우리의 삶은 일그러지고 원하지 않은, 어쩌면 너무나 고통스러운 그러한 삶을 살아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나의 부족으로 불확실함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고,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그러한 불확실함이 다가오는 경우도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알 수 없는 일로 인해 나의 삶이 알 수 없는 길로 접어들지라도 비록 그 길을 돌이킬 수는 없지만 그 길에서라도 불확실함을 줄일 수 있는 지혜와 용기일 것이다.  아직은 그 길이 끝나지 않았으니 이제는 내가 알고 있는 길로 갈 수 있도록 나 자신에게 일어날 수 있는 것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 나 자신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삶을 알아야 하고, 인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나의 노력으로 어느 정도는 가능하기에 더 이상의 알 수 없는 일로 가득한 삶을 살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작가의 이전글 내면의 이원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