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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온 시간들 Oct 09. 2023

얼마 남지 않은 시간

   우리에게는 많은 시간이 남아 있을 것 같지만 실상 살아가다 보면 어느 순간 주어진 시간이 그리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만약 그러한 순간을 맞이하게 된다면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고, 남은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하는 것일까?


  편혜영의 <야행>은 오래전 남편을 잃고 하나밖에 없는 아들과의 관계마저 소원해진 죽음을 앞둔 어느 여인에 관한 이야기이다. 


  “뇌출혈로 쓰러진 남편은 얼마간 의식이 없는 채로 앓다가 세상을 떴다. 세상을 뜰 즈음에 남편의 몸은 안쓰러울 정도로 깡말라 있었다. 남편은 수의를 입고 나서야 예전의 건장한 체격을 되찾았다. 그녀는 더디고도 급작스러운 남편의 소멸을 지켜보며 죽음에 대해서라면 비탄할 필요도 없고 어떤 애원도 소용없으며 증오를 품어서도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그것은 그저 그렇게 되도록 되어 있는 일, 그러니까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게 되기까지는 시간이 많이 걸렸고 고통이 따랐다. 그럼에도 무엇인가 아직도 남아 있는 것 같았다. 남편의 주검을 떠올릴 때면 심장을 죄게 하는 무엇인가가.”


  항상 곁에 있을 것 같았던 사람이 갑자기 떠나게 되는 날이 찾아올 수도 있다. 나는 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을까? 내가 해줄 수 있는 것을 그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어느 정도 했던 것일까? 이제는 영원히 만나지 못하게 될 터인데 그동안 그 사람에게 잘못한 것들은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인생에는 잘살아 보려는 노력이 돌이킬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고 착실하고 소박한 노동의 대가로 비루한 생활이 주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그러므로 무엇이든 그저 오는 대로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자신마저 그렇게 생각하면 아들의 인생에는 더 이상 희망이 없을 것 같아 애써 그런 생각을 지우려 했으나 그럴수록 점점 아들의 인생이 실패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그녀는 자책했다. 어미로서 자식에 대한 기대를 저버린 것을, 어떤 때는 걱정과 우려를, 어떤 때는 표면적인 지지와 응원을 보냄으로써 아들이 매번 오기나 자만심으로 허황된 계획을 세워 실패를 반복하도록 방치한 것을.”


  삶은 우리가 생각하는 대로 바라는 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어쩌면 삶에 대한 애착이 우리의 인생을 더욱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것이 더 지혜로운 선택일 수도 있다. 너무 애쓰지 말고 그저 주어지는 대로 살아가는 것이 그나마 나은 삶일지도 모른다. 


  “뇌출혈로 쓰러져 의식 불명 상태에 이른 남편은 제 바지 주머니에 든 손수건조차 꺼내놓지 못했다. 남편이 남긴 물건은 선택된 것이 아니라 그저 사용자가 없어지는 바람에 저절로 남게 된 것들이었다. 그 물건들을 정리한 것이 그녀였다. 그녀는 남편의 유품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남편이 세상을 떠난 것 이상으로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자신이 남편에 대해 아는 것이 있기나 한지, 남편의 고민이나 희망, 고통 같은 것을 이해해 본 적이 있는지 생각했다. 추상적인 게 문제가 된다면, 취향이나 습관, 버릇이나 성향 같은 것은 구체적으로 말할 수 있는지 생각했다.”


  우리는 우리가 사랑하는 사람, 우리에게 소중한 사람에 관해 얼마나 알고 있는 것일까? 그의 아픔과 상처, 고통과 괴로움에 대해 우리는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것일까? 우리는 진정으로 소중한 사람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해주었던 것일까? 우리는 가까이 존재하는 사람을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 것일까? 이제는 돌아오지 않을 그 길을 가는 이에게 어떠한 것들을 해줄 수 있을까? 그런 시간이나마 남아 있는 것일까?


  삶은 그렇게 흘러간다. 사랑하고 소중한 사람은 그렇게 떠나가 버리고 만다. 인생은 결코 돌이킬 수 없는 길을 가는 것과 같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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