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아침은 12월 초순이라 날씨가 좀 쌀쌀했었다. 밤에 비가 조금 내렸기에, 혹시 바닥이 얼었나 싶어 살펴보니 살얼음 정도였다. 괜찮을 것 같아 아무 생각 없이 차를 몰고 나갔다. 이른 아침이라 길이 막히지 않아 쉽게 고속도로를 탈 수 있었다.
차도 별로 없었고 평상시처럼 110킬로 정도로 운전을 했다. 매일 다니던 길이라 별생각 없이 운전을 하고 있었는데, 느낌이 좀 이상했다.
양옆으로 있는 산 근처의 도로에 내 차가 들어서는 순간, 웬일인지 갑자기 차가 팽이 돌듯 빠른 속도로 팽팽 돌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머릿속에서 갑자기 번개가 쳤다.
"아뿔싸" 빙판이었던 것이다. 순간 너무 당황하여 뭘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당시 운전을 배운 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다. 무의식적으로 브레이크를 밟았다. 순간 차가 반대 방향으로 팽팽 돌았다. 내 차는 아주 싼 차라 ABS 장치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아, 끝났다."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자마자 차가 팽글팽글 돌면서 도로 밖을 벗어나 논두렁 같은 곳으로 처박히는데 갑자기 커다란 콘크리트 구조물이 보이는 것이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환상 같은 느낌이 들면서 내 눈앞에 어떤 커다란 문이 나타나는 것이었다. 그 문으로부터 나까지는 얼마 되지도 않는 거리였다. 그리고 그 문에서부터 내가 있는 곳까지 길이 있었는데 그 길 색깔이 누런색이었다. 물리학을 전공한 나로서는 전혀 이해할 수 없는 경험이었다. 자동차 사고가 났는데 눈에 보이던 콘크리트 벽이 사라지고 웬 문인가 싶었다. 꿈도 아니고 환상도 아니고, 내 평생 그런 경험이 정말 처음이었다.
아마 1~2초도 아니었을 것이다. 찰나의 시간에 그런 것이 내 눈에 보였다가 사라지더니, 자동차 운전석 왼쪽 문과 콘크리트가 엄청난 충격과 함께 부딪히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쾅!"
천둥 벼락을 맞으면 그런 느낌이 아닐까 싶을 정도의 커다란 충격이 내 몸을 때렸다. 그 순간 나는 정신을 잃었다. 그 이후로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얼마쯤 지났을까? 눈을 떠보니 몸이 이상했다. 왼쪽 다리가 움직이지 않았다. 다리뿐만 아니라 내 몸의 왼쪽이 커다랗게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미 응급처치는 끝난 것 같았다. 한참 지나 간호사가 와서 일어났던 일을 설명해 줬다.
콘크리트 구조물과 차가 부딪치면서 운전석 쪽으로 너무 많이 씹혀 들어와 나를 꺼낼 수 없어서 소방대원들이 차 문짝을 전기톱으로 자르고 꺼냈다고. 그 정도 사고로 죽지 않은 것은 진짜 천운이라고. 하늘이 도왔다고. 나는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그 후 짧지 않은 시간을 나는 병원에서 지내야 했다. 당시 의사는 나에게 앞으로 달리기나 등산은 불가능할 거라고 말했다.
병원에 있으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했다. 그제서야 난 알 수 있었다. 그게 블랙아이스였다는 것을. 난 당시 운전 경험이 거의 없는 상태였기에 그러한 것에 대해 전혀 알고 있지 못했다.
사고 났을 당시 내 눈앞에 나타났던 것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를 했더니, 아마도 그건 임사체험(Near Death Experience) 일 것이라고 했다. 그분이 하는 말로는 내 눈에 보였던 문은 저승 문이고, 그 문과 나 사이에 있었던 길은 황천길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 말씀을 해주신 분은 학부 때 나를 가르쳐 주셨던 물리학 교수님이셨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물리 교수님이 그런 말을 하니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정말 그분의 말이 맞는 것일까? 만약 내가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갔다면 그것으로 내 생은 끝이었을까? 하긴 내가 본 그 문은 열려있지는 않았던 것 같았다. 문이 열려있었더라면 나는 어쩔 수 없이 들어가게 될 수밖에 없었을까?
사실 나는 그 사고 이후 지금까지 꿈에서건 현실에서건, 내 눈앞에 누런 황천길이 다시 나타난 적은 없었다. 누런 길 끝에 놓여 있었던 문도 그때 본 것이 내 생의 유일한 것이었다. 정말 임사체험이었을까? 난 거의 죽음 직전까지 갔다 온 것이었을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고 났을 당시 충돌 위치는 내가 앉아 있던 운전석 보다 약 20cm 앞부분이었다. 만약 그 위치가 나와 정확하게 일치했다면 아마 그 문이 열려 있었을까?
사고가 난 후 몇 달이 지나 내가 탔던 차가 보관되어 있는 곳으로 갔었다. 고쳐서 다시 타야 할지 결정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이 말했다. 그냥 폐차시키라고. 도저히 고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고. 내가 탔던 차는 정말 휴지 조각처럼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완전히 구겨져 있었다.
그 사람이 다시 나에게 말했다. 저 안에 탔던 사람이 내가 맞냐고. 어떻게 저 안에서 살아남았냐고. 평생 쓸 운을 다 쓴 것 같다고. 나는 내 차를 다시 살피지 않은 채 그 사람에게 폐차시켜 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