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통을 많이 겪다 보면 더 이상 두려움이 생기지 않는다. 그 아픔의 바닥까지 내려가 보고 나면 어떤 고통이 다가와도 담담할 뿐이다. 죽음을 이미 초월해 보았다면 더 이상 잃을 것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이제는 고통을 긍정할 수 있게 되었다. 고통이 나의 이웃이 된 듯하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다. 삶을 편하게 살 수 없다는 것을 경험으로 깨달았기에 그렇다.
“그대들은 가능한 한 고통을 없애려고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는 실로 오히려 고통을 증가시키고, 이전보다 더 악화시키려고 하는 것 같다. 고통에 대한 훈련, 거대한 고통에 대한 훈련, 그대들은 바로 이 훈련이 지금까지 인류의 모든 향상을 가능하게 했다는 사실을 아는가? 영혼의 힘을 길러주는 불행 속에서 영혼이 느끼는 긴장, 거대한 파멸을 목도하는 영혼의 전율, 불행을 짊어지고 감내하고 해석하고 이용하는 영혼의 독창성과 용기, 그리고 깊이, 가면, 정신, 간계, 위대함에 의해 영혼에게 부여된 것, 이것은 고통을 통해, 거대한 고통에 대한 훈련을 통해 영혼에게 부여된 것이 아닌가? 인간 안에는 피조물과 창조자가 통일되어 있다.”(선악의 저편, 니체)
고통을 통해 내가 더 발전하는지 더 나아지는 것인지는 관심이 없다. 니체의 생각과는 반대일지 모르나 나는 나만의 길이 있다고 믿을 뿐이다. 우리의 삶은 어떤 목적보다도 지금 이 과정이 더 소중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나에게 내일이 주어지지 않을지도 모르기에 그렇다.
다만 고통이 나에게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니체의 생각과 동일하다. 고통을 없애려 하는 마음도 이를 극복하려는 마음도 사실 나에게는 의미가 없다. 고통이 내가 원한다고 오는 것도 아니며 원하지 않는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니다. 그것이 이제 오늘의 일상처럼 되었기에 오면 오는 것이고 가면 가는 것에 불과하다.
나는 이제 고통에서 자유롭다. 그저 담담히 나의 길을 묵묵히 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