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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Feb 21. 2023

아버지의 편지 글씨가 흔들린다

미안해

옷장에 못 보던 핸드폰이 보이더니 종이가 여러 장, 종이에는 짧은 글들이 적혀있다. 용기를 내어 편지를 읽어본다.


“다 내 죄고 내 잘못이니 여기서 나가게 해달라.”

“사업도 미루겠고 고모에게 탓도 안 하겠다.”

“나는 폐쇄공포증이 있어서 답답하고 여긴 있을 곳이 못된다. 여긴 알코올전문병원이라 나랑 안 맞으니 ㅇㅇ병원 내 의사가 좋다. 이 의사랑 잘 얘기를 해봐라. “

“집에 수도관이 어는지 체크를 하러 가야 한다.”

등등..


나는 보기 힘든 그 편지를 궁금증에 안 볼 수는 없는 성격에 또 다 봐버렸다. 글자가 흔들린다. 초조함과 불안함이 느껴진다. 영수증이나 종이를 잘라 뒷면에 급히 쓴 느낌에 병동에서 너무 강하게 억제하는 부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약을 먹고 불안함에 글자가 흔들리는 것일까?? 병원이랑 통화해도 아무 일 없다는데 걱정은 되고 방법은 없다.


아버지가 다니던 큰 병원은 시와 문제가 생겨 더 이상 입원을 받지 않는 대고 의사는 그만뒀다고 한다. 아버지는 그 핑계로 동네 작은 병원을 다녔는지 그마저도 알약 그중에 자르고 잘라 딱 필요한 약만 먹다가 병세가 점점 심해지면 그것마저도 건너뛰어버리고 하나하나 부작용을 체크하고 역정을 내곤 했다. 코로나에 pcr검사 없이는 입원이 안되고, 제 발로 검사를 받으러 갈 분도 그런 병도 아니기에 고모부가 입원했었던 병원이라 그나마 겨우 의사를 만나 사정을 얘기하고 진료를 받고 당일 입원을 하게 된 것이다. 코로나가 별 걸 다 힘들게 할 줄이야..



왜 하나같이 글자가 흔들려보이는 것일까? 아버지의 필체는 보통 사람들과는 다르다. 처음에는 신기했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은 글자도 저렇게 쓰려나 했다. 이제는 알게 되었다. 글자에 불안한 마음을 담으면 무서움과 의심을 담으면 이런 글자가 나온다는 것을..


나는 아버지와 한 집에 살 자신은 없다. 아이들에게 할아버지는 나의 아버지의 이미지와는 다르다. 그냥 평범하고 가끔 고집스럽고 말 안듣는 그런 옛날 아버지 스타일 그 정도다. 아이들 스스로 판단하기 전까지 굳이 내 경험과 마음까지 줄 생각이 없어서 보이는 것 이상의 설명을 해주진 않았다. 모든 사람의 경험과 판단은 자유니깐.


지금 내가 아버지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부디 딱 5-6개월만 약을 주기적으로 먹어주고 일어난 일들을 이번 의사와는 부디 잘 얘기하고 상담이라는 게 진행되기를 바라본다. 쉽진 않겠지만. 그렇게 또 나왔다 들어갔다 반복하면서 나도 아버지도 나이를 먹겠지.


아마도, 퇴원하면 입원을 도운 내 남편 탓을 먼저 할까? 아니면 또 고모의 사주라고 쫓아가서 욕을 하려나? 아니다, 며칠은 약도 잘 챙겨 먹어서 얌전할 거다. 또 병원 가자고 할까 봐 몇 주 괜찮다가 또 약을 가려먹고 점점 안 먹고 그러다가 또 경찰을 찾고 법원에 신고를 하고 물건이 사라졌다고 하겠지. 항상 그래왔으니깐..


오늘 남편이 갑자기 아버지의 핸드폰비가 연체되었다고 한다. 돈이 빠져나갔는지 확인해 본다며 핸드폰을 꺼내 충전하는데 난 어색하고 처음 보는 느낌이다. 의심병 때문에 물건이나 방 상태도 아버지 없을 때나 볼 순 있지만 자주 사용하는 핸드폰도 이렇게 새로울 일일까? 멀쩡한 척하는 나 대신 진짜 멀쩡하게 일처리를 남편이 도와준다. 난 사실 겉으로만 멀쩡하다. 아니, 버티는 중이다. 아버지가 떠나면 그때 몰아서 무너지려고, 지금의 난 아이들을 잘 키우고 내 가정을 지키는게 우선이다.


이미 중학교 시절부터 아버지의 병원 입원이 시작되었고, 문제가 생기고 또 또.. 그렇게 내 졸업식에는 아빠가 항상 없었다.


아빠와 찍은 사진은 아마도 걸음마했을 때려나.. 그런데 내가 세상을 깨닫기 전 기억 석 아빠는 지금과는 달랐다. 항상 실실 웃으면서 엄마 말을 안 듣거나 고집을 부렸고 우리가 장난감 사달라고 조르면 다 사줘서 엄마가 항상 화를 냈다.



아빠가 어느 날은 삼촌에게 차를 사더니 등교를 시켜준 적이 있었다. 아빠는 그때 이 노래를 참 좋아했는데 그 감성을 이해 못 하던 나는 어느새 그때 아빠의 나이가 되었다.


아빠가 맘대로 아기 때 붙여서 나를 부르던 별칭은 hope(희망) 다. 왜 굳이 맘대로 지어서 그 단어만 생각하면 아빠가 부르는 목소리가 아른거리는지. 우리는 서로 무슨 일일 겪고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 이렇게 살아서 언제 힘이 빠지고, 언제 돌아가실지를 먼저 생각해야 할까.


아버지의 핸드폰은 엄한 핸드폰비는 안 나가고 상조회사로 두 번이나 이체되고 있었다. 언젠가 홈쇼핑에서 가입해야한다는 말을 듣고는 물어보더니 역시나 자기맘대로 결정할걸 뭘 물어보는지. 만약을 대비해서 한 개 가입하고, 막내 동생 결혼비용을 준비한다며 또 하나를 가입해야한다규 했다. 세상 백수 아저씨가 뭘 그리 자꾸 지르는지 속이 터졌는데 난 왜 이런 부모를 만나서 엄마도 미리 준비하고 아빠도 미리 준비하고 뭐 그리 죽을 준비를 하겠다는 말을 덤덤히 하시는지 얼마나 자식에게 상처를 주려고 하는건지


분명한 결정을 좋아하는 나는 “아버지“ 라는 단어 하나에는 안개 속을 들어가는 느낌이 들고 멍해지게 된다. 사람들은 부모님 살아계실 때 잘하라고 하는데 그 말은 나에게도 해당되는 걸까? 나는 그날이 오면 과연 후회할까? 불쌍한 아빠 세상을 잘못 태어나서 차라리 편히 쉬라고 얼른 가시길 빌어야 하나?


“모든 부모가 부모답지는 않다.”


그럼에도, 그 옛날이 그리울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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