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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날맘 쑥쌤 Jun 16. 2024

저는 초등학생 아이와 동업하고 있습니다.

아이에게 알려주려는 것들

IMF 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처음 겪어보는 경제공황시기, 겨우 초등학생이었어요. 딱히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가 부도가 난 것도 아니고 집이 망한 건 아니지만 거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아버지의 병을 그때서야 알게 되었거든요.



정신분열증 = 조현병


제가 어릴 적에는 정신분열증이라고들 말했어요. 가끔씩 뉴스에서 정신분열증 때문에 가족을 다치게 하는 경우나 위험한 경우가 생기면 친척들은 불안해하면서 아버지 약을 잘 챙겨 먹도록 잘 설득하라는 이야기를 적어도 천 번은 들었던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그 병을 앓고 있는 분들 중에서 아버지는 지능도 생활능력도 높았어요. 가끔씩 의심병이 도질 때만 빼고는요. 결국 친척들의 의견으로 강제 퇴사 + 종신병동 입원이 이루어졌고 저는 그때 아버지와 따로 살게 되었어요.



경제적 심리적 가난


모든 가족은 불안, 걱정으로 보내야 했고 남편 없이 무일푼으로 친척집 근처에 작은 구멍가게를 운영하며 삼 남매를 키워온 친정엄마는 마음의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도 어린 시절 인정받고 싶어서 학교 다녀와서 밥 먹으면서 재잘재잘 이야기하려고 할 때면 엄마는 항상 “조용히 하고 밥이나 먹어”라고 말을 끊어냈어요.


구멍가게 지하 창고에서 시험공부를 하고, 바깥에 골목을 한참 따라가면 화장실이 있어서 밤에는 너무 무서운데 아무도 같이 가주질 않으니 손전등을 들고 다녔지요. 욕실이 따로 없는 방 한 칸 구멍가게라서 싱크대와 냉장고 작은 계산대를 놓는 책상을 두고 물을 받아서 씻곤 했습니다. 참 다행히도 모두가 힘들어서인지 그게 창피하거나 투정을 부릴 대상이 되진 않았어요.


가끔씩 엄마 대신 구멍가게를 지켜야 했고, 담배도 팔았기에 그 이름을 열심히 외우고 가격을 기억해야 했죠. 가끔 외상장부를 달아달라던 폐지 줍던 아저씨는 어린 마음에 객기로 안된다고 사납게 대꾸하면 꼭 술병을 깨고 물건을 던지곤 했어요. 다행히 엄마가 돌아오면 몰래 구석에 들어가서 울면서 112에 전화해서 부르고 또 부르고.. 그때 처음 배웠어요.



정확한 물건의 손해를 기록하거나 증명하지 않으면, 죄를 인정받을 수 없고 하루 만에 결국 풀려납니다.
손해를 꼭 기록해 두세요.



소주 하나 과일이나 안주 정도, 그리고 쌍스러운 갖가지 욕과 협박에 벌벌 떨던 시간은 결국 1년이 넘도록 아무런 배상도 받지 못하고 반복되었어요. 그리고 그 당시 중고등학생 시기를 지나오면서 깨달았던 것 같아요. 엄마 혼자서 가게를 꾸린다는 걸 다들 아는구나. 만만한 거구나. 엄마는 결국 그런 아저씨가 와도 외상을 계속해주더라고요. 글쎄요. 구석에서 울면서 112를 부르고 나서도 한참을 울었던걸 엄마는 다 알고 있던 걸까요??



수많은 사건들이 지나고
누군가를 잃고 떠나고 그렇게 울고 울다가
지금 남편이 아무리 있는 거 없는 거 다 보여주고 난리부르스를 쳐도 떠나지 않기에 제가 결혼하자고 설득했어요.
떠나지 않는 게, 제겐 정말 중요했거든요.

결혼식을 얼마 앞둔 어느 날
맥주 한 잔 하고 용기 내어 고백했어요.
상처받고 힘들었던 그때 왜 도와주거나 들어주지 않았냐고요.

엄마는 자세히 듣지도 더 물어보지도 않고 대답했어요.
그땐 엄마도 힘들어서 그랬어..


아이를 낳고 나서야 내 아이에게 모든 말을 다 해줄 수 없구나.. 이제야 친정엄마를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어요.


돈이 전부는 아니야.
돈이 가장 중요한 건 아니야.
누가 그러나요??

돈 때문에 결국 이일 저일 전전긍긍하다가 공사장에 나가서 일하다가 물건에 부딪혀서 기억이 잠시 안 나던 날고 몸이 아픈 날도 주 6일 일하시는 친정엄마는 올해 64세가 되셨어요.

신기하게도 끼리끼리 비슷한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한다더니 남편은 중학교 때 아버지를 떠나보내서 돈도 마음도 없는 상태로 서로를 메꿔주다 보니 항상 부딪히고 싸우는 신혼을 보냈고요.

결혼 12년 차, 그렇게 마음공부를 하고 돈이 모아지려고 하니 시어머님이 아파 일을 못하게 되시면서 거액의 돈이 나가는 중입니다.

머리도 아프고 혼란스럽지만 지키려는 단 한 가지, 바로 아이들의 미래예요.



엄마 아빠도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면
돈을 벌 수 없어서 줄 수 없다.
그러니 좋아하는 일을 찾아 돈을 벌어야 해.
네 꿈은 뭐니?
넌 어떻게 돈을 벌거니?


오늘은 가구점 포스팅 촬영으로 주말이라 아이들과 함께 다녀왔는데 제가 카메라로 찍는 동안 둘째가 핸드폰을 빌려달라더니 세상에.. 거의 이 사진의 2-3배를 찍었더라고요. 심지어 구도도 괜찮은 사진이 꽤 되어서 몇 장은 포스팅에 추가하려 합니다.



8세 아이가 핸드폰으로 엄마 블로그에 기록하라고 찍은 사진들

처음엔 저도 아이가 그냥 따라 하고 싶은가 보다 했는데 총 3층 건물에 있는 가구를 죄다 찍고 동영상까지 열심히 흔들림 없이 각을 잡더라고요?! 아이에게 왜 이렇게 많이 찍는지 물어보니깐 엄마 도와서 빨리 일 끝내고 가려고 했다는 거예요??


사실 직원분이 보기엔 엄마가 블로거라 카메라 들고 다니니 아이도 그런 걸 배우네~ 하실지도 모르겠어요. 그런데 아이에게 뛰지 않고 사람들 방해하지 않도록 가르쳤고 정말 저만큼 사진을 잘 찍어냈어요. 저도 마음속에선 항상 고민합니다.


나도 다 해주고 편하게 해 주면서 키우고 싶다.

vs

아니야! 잘하고 있는 거야!! 눈 꼭 감고 버티자!!


최근 이효리 님이 엄마와 여행을 하는 리얼 모습을 담은 <엄마, 단둘이 여행 갈래> 방송을 주말마다 육퇴하고 챙겨보고 있어요. 친정엄마는 딸의 힘든 어린 시절이 너무 미안해서 얘기를 하지 말자고 하는데, 이효리 님은 추억이고 말하고 싶었던 것들을 엄마가 들어주었으면 하고 바라어서 계속 조금씩 꺼내놓더라고요.

구멍가게에서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중고등학생 다 큰 애가 냉장고 하나 가림막 하나 두고 방 하나에서 먹고 씻고 자고 했을까? 싶지만 친구들이 오면 과자 아이스크림 음료가 많은 집이라 뭔가 으쓱하곤 했어요. 그 모든 게 엄마의 눈물인데 이제 보니 철도 없었더라고요. 엄마가 힘들다고 단 한 마디를 안 하고 그저 입을 닫고 인상을 항상 쓰고 있었으니 그냥 엄마는 그런 성격이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저는 아이에게 다 말하고 다 보여주고 미리 준비하고 함께 하고 싶었어요. 넘어져도 쉽게 일으켜주지 않고, 오히려 옆에서 넘어지길 기다립니다. 그게 세상이고 어쩔 수 없는 것을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보여줍니다. 오늘도 엄마의 일 때문에 아이들은 당연히 가서 차에서 1-2시간을 기다리고 가끔은 촬영모델이 되어줘야 했어요.

그리고 모든 것이 끝나고 달콤한 빵을 사주고 좋아하는 토끼도 보고 들어와서 온 가족이 다 함께 게임기도 하고 세상 가장 원하던 늦게 자는 날을 만들었네요.


어느 날 제가 늙어서 갑자기
부모를 잃어버리지 않고
미리 그 준비가 되어 있는 아이로
키우고 싶어요.
그래서 전 제 일을 필요하다면
언제고 또 아이와 함께 할 겁니다.
지금은 그게 우리 가족의 돈벌이고
제 직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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