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17
태크커피가 있는 두구동으로 출퇴근 한지도 8개월째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언제 적응하지 싶었는데 어느새 나태해지고 퍼져있는 나를 본다. 가게를 내놓은 지는 한 달가량 된다. 가끔 쪽지로 위치를 묻는 사람이 있었지만 두구동이라는 낯설고 외진 곳의 이름을 듣고는 더 물어볼 것도 없이 대화는 끝이 난다. 나는 여기가 왜 좋았던 것일까? 내 눈에만 정겨워 보이고 아늑해 보였던 것일까? 나와 같은 감성과 나와 같은 마음을 가진 새로운 주인이 나타나기까지는 시간이 조금 걸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마음은 조금씩 정을 떼려는 듯 태그커피에서의 생활이 조금씩 권태로워지고 흥미를 잃어가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럴 때일수록 가게를 더 쓸고 닦으면서 바지런을 떨면서 일상을 보내고 있다. 동네할아버지들만 오고 가는 진짜 동네 카페가 되어가는 느낌이 들어서 당황스럽기도 하다. 사실 처음 바람처럼 되어가는 것인데 그게,,, 왜인지 썩 좋지만도 않은 느낌이다. 동네 주민도 아닌 내가 온갖 동네 소문과 이야깃거리를 더 많이 듣고 접하게 되니 그것도 나름의 편견이 되고 나도 모르게 아무 데나 아는 척 오지랖을 부리게 되는 것 같아서 스스로 당황스럽고 거리를 두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오늘은 옷장에 오랫동안 묵혀두었던 커다란 퍼프소매의 블라우스를 꺼내 입고 나와서 바지런을 떨면서 화장실청소도 하고 딸기청도 담으면서 아침을 시작하고 있다. 어제는 통창 유리를 청소한다고 발끝을 새우고 안팎을 돌아다니면서 바쁘게 설쳐댔다. 이른 아침부터 동네 어르신들이랑 인사를 하면서 통창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나니 한결 마음도 가벼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어제 오후 늦게 카페로 찾아 들어온 제비 한 마리는 오늘 아침 뒷문으로 또 찾아 들어와서 사람을 놀라게 하더니 몇 번을 들락날락거리면서 사람을 놀리듯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이 녀석이 카페에 집이라도 지으면 어쩌지 걱정이 돼서 빗자루를 들고 내쫓기 바쁘지만 내심 기분이 나쁘지 않은 것은 무엇인지 모르겠다. 작고 예쁜 제비가 우리 카페를 찾아주니 고맙기도 하고 먹이라도 챙겨줘야 되나 싶은 반반의 감정이 든다.
어느새 처음의 열정은 사그라들고 사람들을 나름 파악했다는 느긋함과 익숙해진 가게일들이 권태롭게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고 당장 가게를 누군가에게 넘기고 집에서 뒹구는 예전의 나로 돌아가는 것도 무섭다. 쉽게 정리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있어서 그런지 태그커피에서의 하루하루를 조금은 더 즐기면서 기분 좋게 보내고 싶기도 하다. 바로 옆에 생기는 큰 한우고깃집은 이제 오픈을 앞두고 나름 분주해 보인다. 직접 운영할 거라던 건축업자는 어디선가 여자 사장을 모셔왔고 만만해 보이지 않는 이 여사장은 우리 카페 3번째 방문만에 자연스럽게 외상을 하고 갔다. 자신의 고깃집이 우리 카페에 엄청난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하고 있은지도 모르겠다. 그건 나도 내심 기대하고 있는 부분이긴 하다. 그렇지만 같은 장사하는 입장에서 얼마 보지도 않은 사이에 당연하다는 듯이 외상을 걸고 가버리는 모습이 많이 씁쓸하고 속상하기도 했다. 커피 2잔 정도 내가 서비스로 드려도 되는 문제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발적인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는데,,,,,, 훅치고 들어오는 예의를 상실한 여사장의 행동에 할 말을 잃어버리고 멍해졌다. 한우가게가 오픈하면 축하 겸 직원들 커피나 디저트를 좀 갖다 드려야겠다고 생각했었는데 그럴 마음이 완전히 사그라들었다. 고깃집에 커피 머신을 들여놓든지 말든지 그건 나를 위한 배려라기보다는 자신들의 편리함과 손님들을 배려하는 마음이 우선일 거라 생각한다. 나에게 무엇을 바라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나는 현재로서는 고깃집에서 식사를 하고 오신 손님들에게 음료할인행사를 할 마음은 아직 없다. 혼자 작은 카페를 운영하면서 내가 가진 능력이상의 것을 바란 적은 없다. 그저 내가 모두에게 기분 좋은 서비스를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손님들이 와주시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고 지낸 것 같다. 사실 그것도 내 이기적인 마음일 것이다. 손님들은 절대 내 뜻대로 오고 가지 않는다. 내가 그리 마음먹는 순간 이미 떠나갈 손님들은 다른 곳으로 떠나가 버렸을 것이다. 그것이 장사라는 것을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가게를 정리해야 되는 내입장에서는 어느 정도 매출이 나와줘야지 권리금을 제대로 받고 양도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이유 때문에 고깃집이 생기길 누구보다 바라왔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나는 고깃집의 덕으로 내가 돈을 많이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그저 가게에 누군가 흥미를 가질 정도로 손님들이 오고 가길 바라는 마음뿐이다. 이왕이면 내 다음의 운영자가 생활하는데 지장이 없을 정도의 매출이 나와주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
나는 결국 태그커피에서 4계절을 보내게 될지도 모르겠다. 봄은 짧고 여름은 일찍 찾아올 것을 알기 때문에 약간은 조급해지는 부분도 있다. 이렇게 긴 시간 카페를 운영하게 될 거라는 생각은 미처 못했다. 임대차 계약서에 2년이라 명시되어 있었건만,,,, 내가 즉흥적으로 카페를 인수했듯이 또 그렇게 카페를 누군가에게 넘겨줄 수 있을 거라 굳게 믿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태그커피는 아직 나를 놓아줄 생각이 없나 보다. 사실 나도 아직은 여기 이 공간에서의 시간을 더 즐기고 싶기도 하다. 얼마가 남았을지 모르겠지만 더 즐겁게 더 아늑하게 잘 지내보자,,,
나의 태그커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