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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일랜드 Jul 11. 2024

굳이

2024.05.09

하루가 멀다 하고 휴게시간마다 와서 1-2시간씩 쉬다가 가시던 다움병원 조리실 이모님들은 이제 발길을 끊었다. 굳이 가게 앞을 지나서 토리나무 쪽으로 가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유도 나름 짐작은 가지만 먼저 아는 척은 하지 않는다. 나는 항상 그렇듯이 나 스스로 진심으로 대했던 관계에 대해 누구보다 더 냉정해지고 스스로 미련을 두지 않으려고 하는 것 같다. 그분들이 어떤 마음으로 내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등을 돌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더 이상 아는 체를 하지 않을 것이다. 사실 별로 알고 싶지도 않고 혼자 나른한 오후를 조용히 책이나 읽으면서 보내고 싶기도 하다. 처음에 먼저 다가간 것도 나였었고 두구동이라는 낯선 곳에서 그나마 맘 편하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었는지도 모르겠다. 비슷하게 아이들을 키워왔고 남자들과는 하지 못하는 속내도 드러낼 수 있는 분들이라 생각해서 더 많이 챙겨드리려고 나름  애쓰고 먼저 다가가려 애썼던 것 같기도 하다. 그렇지만 이야기를 할수록 그분들의 자기 보호울타리가 나 자신의 그것보다도 더 두텁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상처받지 않고 세상을 살아가려면 그 정도 두께로 자신을 합리화하고 보호해야지 가능한 것 같기도 했다. 나 또한 자기 합리화라면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람인지라 알게 모르게 말을 하면 할수록 깊이를 잃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에 허물없이 드러내던 속마음은 어느 순간 줄어들게 되고 마음을 서서히 닫게 되어버린 건지도 모르겠다. 내 고민거리는 그분들에겐 의미 없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분들은 항상 자신의 이야기를 심각하게 인상을 쓰면서 이야기하곤 했다. 누군가의 험담을 할 때도 마치 자신들은 모두 옳고 나머지는 다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인상을 쓰면서 심각하게 몇 시간을 이야기하다가 가곤 했다. 어느 순간 돌아보니 웃으면서 이야기를 나눈 시간들보다 나까지 심각해서 그분들 이야기에 동조해 주면서 보낸 시간이 더 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도 모르게 그분들이 처음 마음처럼 존경스러워 보이거나 안쓰러워 보이지도 않게 되었다. 그분들은 충분히 스스로를 보호하고 합리화하고도 남을 정도로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분들이었다. 굳이 내가 아니어도 태그커피가 아니어도 어디든 가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쏟아내거나 당당히 앉아서 혼자만의 시간도 즐길 줄 아는 분들이라는 것을 잘 알게 되었다. 그저 처음 태그커피를 인수하고 가게가 잘되길 바란다는 말 한마디에 혼자 감동해서 이것저것 챙겨드리고 지내던 것이 나름 어쩌면 부담으로 다가왔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정도 챙겨드리고 그 정도 이야기를 들어드렸으면 충분했다고 생각한다. 다만 나도 모르게 그들 사이에서 불쑥불쑥 선을 넘고 아는척한다든지 예의에  벗어난 행동을 했다면 그 부분은 미안하고 죄송스러운 마음이다. 그분들도 나름의 이유로 나를 판단하고 등을 돌리게 되었을 것이다. 나는 괜찮다. 물론 아직 1-2시 사이에 혹시나 그분들이 오시거나 가게 앞으로 지나치는 것을 보게 될까 봐 조마조마하기도 한다. 그럴 이유도 없는데 가게 안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종종거리며 굳이 가게 앞을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우습기도 하고 씁쓸하기도 하다. 토리나무가 우리 가게를 지나야지 나온다는 것이 그분들도 여간 신경 쓰이긴 할 것이다. 그러나 저러나 서로가 눈이라도 마주칠까 피하기 바쁘다는 것쯤은 이심전심이 통해긴 한다. 혹여 내가 먼저 아는 체 해주고 인사라도 건네주길 바라는 마음이라면 더욱 우스운 일이다. 토리나무를 가면서? 나는 또 뭐라고 하면서 아는 체를 할 수 있을까? 이런 게 사람 사는 것이지 웃으면서 넘기면 될 일이다. 섣부르게 전화번호를 주고받고 함께 식사를 하고 속마음까지 드러내면서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새삼 공허한 허상들 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이런 게 인간관계라는 것이다.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눈앞에서 사라져 버리는 것,,,,,, 알고 있지만 새삼스럽게 다가온다.

어떤 사람은 등을 돌리고 떠나가고 어떤 사람을 눈을 반짝이며 다가온다. 어떤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오래가는 관계가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가는 요즘이다. 진짜 오래가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알기에,,,,,, 햇살이 따뜻하고 바람이 시원하게 분다. 좋은 생각만 하고 싶고 책 속에 빠지고 싶은 봄날이다. 언제 또 스치듯 지나가버릴지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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