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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Mar 21. 2021

마이클 샌델 '공정하다는 착각'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담론

 「공정하다는 착각」은 십여 년 전에 책 「정의란 무엇인가에」서 트롤리 딜레마를 언급하여 어떤 행동하는 것이 정의에 부합한가에 대한 토론거리를 던져 신선한 자극을 주었던 마이클 샌델의 책이다. 이번 책 「공정하다는 착각」에서는 능력주의에 굳건한 믿음을 가진 세상에 대해 과연 옳은가를 독자들에게 질문 던지고 있다.      

 

 마이클 샌델이 미국의 경우를 설명하고 있지만, 사실 한국만큼 능력주의 신화가 중요시되는 나라가 지구상에 존재할까. 우리는 초등학교 시절부터 등수에 따른 여러 차별들을 겪고, 높은 순위에 있지 않는다면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사춘기가 끝나고 나면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강한 소수의 학생들을 빼고는 낮은 성적표를 받은 대부분의 학생들은 본인을 루저라고 인식하게 되고 사회에 나가서도 그 상처는 낫기 힘들다. 이런 사회에 대해서 소리 높여 문제라고 이야기하지도 못한다. 철저히 실력으로 나뉘며 본인의 노력 여하에 따른 결과이기 때문에 본인 탓만 할 뿐이다.  


 나 또한 실력주의가 가장 공정한 방법이라고 생각했고 그 믿음을 굳건하게 20년 이상 가지고 살고 있었다. 때문에 과거 조국이 용이 되어 구름 위로 날아오르지 않아도, 개천에서 붕어․개구리․가재로 살아도 행복한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정의로운 사회라고 SNS에  올렸을 때 정말 한 대 맞은 것 같은 충격이었다. 지금까지 그런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개천에서 살아도 행복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하는 담론에 대해 능력주의에 너무 함몰되어 있어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었음을 반성했다. 마이클 샌델 또한 하버드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명문대에 합격한 학생들이 가지고 있는 자만과 오만이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을 경험하며 능력주의의 모순에 대해 이 책에서 이야기를 한다.   

   

 능력주의의 신화에서 야기되는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첫째, 선천적으로 뛰어나게 태어난 것을 우연이라고 한다면 우연하게 특출하지 못하게 태어난 사람들에게 성공하지 못하고 돈을 벌지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까. 어떤 재능을 갖게 된 것은 그렇게 태어날 수 있었던 행운의 결과임에도 본인이 가질 수 있는 혜택을 온전히 누릴 자격이 있다고 말하는 것은 실수이자 자만이다. 더 나아가 나의 재능을 후하게 보상하는 사회에 산다면 그것 역시 우연이며, 내 능력에 따른 당연한 결과라 주장할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매우 인기 있는 스포츠인 농구를 하며 수백만 달러를 벌어들인 농구선수는 탁월한 운동 재능을 가진 것 말고도, 그 재능을 가치 있게 여기고 보상해 주는 사회에 산다는 행운을 누린다. 가령 르네상스 시대에 그 농구선수가 태어났으면 현재와 같은 보상과 명예는 얻을 수 없다. 

 둘째, 사실 능력주의에서 가장 큰 문제는 일의 존엄성 하락을 가져온다는 것이다. ‘인재선별기’는 능력주의적 학력이 없는 사람들을 시궁창에 빠트렸다. 배관공이나, 전기기술자 등이 되는 법을 배우는 일은 공동선에 기여하는 훌륭한 과정으로 존중받아 마땅하지만 SAT 점수가 낮은 사람이나 아이비리그 대학에 갈 만한 재력이 없는 사람이 울며 겨자 먹기로 선택하는 과정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처럼 능력주의의 이상은 이동성에 있지 평등에 있지 않음을 주의해야 한다. 능력주의는 부자와 빈자의 차이가 벌어진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여기지 않는다. 단지 부자의 자식과 빈자의 자식이 장기적으로, 능력에 근거하여 서로 자리를 바꿀 수 있어야 한다고 볼 뿐이다. 모두가 성공의 사다리를 오를 평등한 기회를 가져야 하지만 그 사다리의 단과 단이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는 문제가 안된다. 능력주의 이상은 불평등을 치유하려 하지 않고 오히려 불평등을 정당화하려 한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에 대한 해답을 두 가지로 제시한다. 

 첫 번째는 대학 합격을 제비뽑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능력은 일정 관문을 넘는 조건으로만 보고, 나머지는 운이 결정토록 하는 일이다. 대학 지원자들 가운데 대학을 다니기 힘들어 보이는 일부만 솎아내고, 나머지 지원자들 중 제비뽑기 식으로 최종 합격자를 뽑는다면 적어도 대학입시를 위해 영혼까지 끌어모아 스펙을 채우고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하는 경험에서 해방시켜 줄 것이다. 또한 대학에 합격한 사람은 오직 자신의 힘이 아니라 운이 좋았던 것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능력주의적 오만에서 나올 것이다. 

 두 번째로, 일의 존엄성을 높이는 것이다. 실물경제에서 노동을 통해 유용한 재화와 용역을 공급하는 사람들이 진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간주하여 저소득 노동자에게 임금보전을 해주는 것이다. 정부가 시간당 임금으로 따질 때 저임금으로 분류되는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에게 정부가 시간당 보조금을 지급하는 방식이다. 또한, 반대로 불로소득을 노린 투기를 일삼으며 실물경제에는 기여가 전혀 없는 금융업계 종사자들에게는 금융거래세를 일종의 ‘죄악세’로 신설하여 투기 행위를 억제하는 방법을 제안한다.              


 마이클 샌델의 해결법은 노력해서 꼭대기에 오르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급진적이고 무모하게 보인다. 하지만 능력주의에 분명 부작용이 있다는 사실을 사람들이 인식하고 있음에도 지금까지 감히 건드릴 수 없는 성역 같은 부분이라 아예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지 진지하게 생각해보아야 한다. 능력주의의 신화를 조금씩 지상으로 끌어내려서 정의롭지 못한 부분을 어떤 식으로 바꾸고 보완할 수 있는지 담론을 만들고, 시스템을 만들기 시작해야 할 때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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