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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Feb 21. 2021

로맹가리 '새벽의 약속'

부모와의 애증관계란

 

 

 이 책은 읽으면서 한글자, 한문장을 음미한 책이다. 보통 책을 읽으면 그 뒷내용이 궁금해서 빨리빨리 읽는 편인데, 이 책은 한 페이지 넘길 때마다 끝나는 게 아쉬워 일부러  조금씩 읽었던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작가와 무언가가 공유되고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 책이 특히 그렇다. 한국 독자들은 더 공감하지 않을까 싶다. 나든 내 주변에서든 이야기들을 들어보면 아들, 딸 상관없이 부모와의 관계, 특히 엄마와의 관계가 독립적이지 않고 애증으로 얽혀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던가.  

 「새벽의 약속」은 한 작가에게 평생 한 번밖에 수여되지 않는 공쿠르상을 유일하게 두 번 수상한 작가인 로맹가리의 자전적 소설이다. 그의 유년시절부터 2차 세계대전까지의 그와 어머니의 생애를 다루고 있다. 

 그 모자의 관계는 다른 어떤 설명보다 그가 여덟 살에 폴란드에서 겪었던 에피소드를 보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당시 로맹가리와 그 어머니는 러시아에서 폴란드로 이주한 지 일 년 정도 됐었고, 매우 가난한 상태였고, 이웃들은 타국에서 온 그들을 탐탁해하지 않은 상태였다.        

 어머니는 문마다 종을 치고 두드리고 하면서 입주자를 층계참으로 불러내었다. 어머니는 나를 끌어당기더니 청중들이게 나를 가리키며 선언하였다. 높고도 자랑스럽게, 지금도 내 귓가에 울리는 그런 목소리로. “더럽고 냄새나는 속물들아! 감히 너희들이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 줄이나 아는 게야? 내 아들은 프랑스 대사가 될 사람이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을 것이고, 위대한 극작가가 될 거란 말이야. 내 아들은 런던식으로 차려입고 살 거야” . 아직도 그 ‘냄새나는 속물’들이 웃던 그 걸쭉한 웃음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 이 이야기를 보다 선명하게 하기 위하여 바로 이 자리에서 내가 지금 프랑스 총영사이며, 영토 해방의 용사로서 레지옹 도뇌르 수여자임을 밝히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리고 확실하게 알아두기 바란다. 나는 지금 런던식 옷차림을 하고 있다.


 나이가 서른 중반인 나도 8살인 로맹가리의 상황에 놓여있다고 상상하면 쥐구멍에 들어가고 싶을 정도인데 어린아이가 어머니의 허황된 연설을 들으며 얼마나 수치스럽고 어머니가 원망스러웠을까. 그러나 그 당시 이웃들의 비웃음이 그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지금의 그를 만든 것은 그 당시의 낡은 집 층계라고 말한다.     

 「새벽의 약속」 곳곳에 어머니와의 이러한 관계성이 표현되어 있다. 어머니의 무조건적인 사랑과 관심이 부담스러워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어머니의 희생과 사랑을 알기에 절대 벗어날 수 없는 그의 진심이 담담하고 진실 되게 표현되어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어린시절이 많이 생각났다. 엄마는 전형적인 한국의 어머니였다. 넉넉지 못한 살림에 자식들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굳건하여, 본인은 옷 한 벌 사 입지 못하면서 자식들을 학원을 보내기 위해 돈을 빌리는 어머니였다. 어릴 때는 집 경제사정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단지 다른 아이들과 비교했을 때 브랜드 옷을 입지 못하는 정도만 약간 다르다고 생각하였지만, 나중에 깨달았던 것은 그것도 부모님이 본인들이 돈을 전혀 쓰지 않고 자식들에게만 돈을 썼기 때문에 차이를 그다지 느끼지 못했던 것이었다. 엄마는 아빠와 갈등을 겪으면서도 자식들에게 학원을 보내기 위해 학원 선생님에게 학원비를 깎아달라고 사정하기도 하였고, 실제로 나와 동생이 같은 학원을 다녔는데 한 명분의 학원비만을 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어떻게 학원 원장님을 설득할 수 있었는지 신기하다. 그 정도로 교육열이 높은 엄마였고, 자식들이 어떻게든 공부를 잘해서 사회에서 괜찮은 직업을 얻기를 원했다. 그런 부모 밑에서 나는 고등학교 시절까지 공부 이외에는 다른 것에 욕심을 내본 적도 없고 흥미를 가진 것도 없었다. 하지만 소위 말하는 명문대를 들어가는 것은 성공하지 못했다. 엄마도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까지 알아주는 학원만을 다녔고, 딱히 사춘기 시절도 없이 그냥 조용히 공부만 했던 내가 결과적으로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에 대해 실망을 하셨을 것이다. 

  책을 읽으며 이런 나와 엄마의 관계가 로맹가리와 그의 어머니의 관계와 오버랩되는 부분이 많았다. 주어진 상황은 힘들고 자식이 특출한 재능을 보이지 않을 지라도 그 누구보다 확신을 가지면서 본인의 신념을 굽히지 않고, 자식의 장밋빛 인생을 꿈꾸는 어머니. 그래서 이 책을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고 싶었는지 모른다. 나와 내 엄마의 이야기라서.


 로맹가리는 세계대전으로 참전 중 어머니와 떨어져 있으면서도 항상 어머니를 느끼고 그녀와 생각을 나눈다. 전투 때문에 아프리카행 배에 탑승했을 때도 거의 매일 밤 어머니와 벗을 하며 대화를 하고 함께 밤하늘의 별을 감상한다. 배 간판에서 어머니는 소설 쓰기를 중단한 그를 나무라고 그는 글 쓰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겠다고 어머니에게 약속한다. 그 뒤 그는 본인의 자유시간을 전부 받쳐 소설「유럽식 교육」을 완성하고, 그 책은 그를 유명하게 만들었다.   

  책은 로맹가리의 특유의 유머스러움이 책 전체의 분위기를 밝게 이끌어가고 있으며, 객관적으로 보면 힘들고 상처 입는 상황에서조차 여유를 잃지 않고 있다. 정말 웃겼던 에피소드 중 하나는 세계대전이 시작될 무렵 어머니는 아들이 프랑스를 구하고 영웅이 되도록 아들에게 독일로 가서 히틀러를 죽이라고 한다. 하지만 막상 아들을 독일로 보내려니 겁에 질려 아들에게 울면서 그 계획을 취소하라고 말할 때였다.       

“하지만 차표를 벌써 산걸”
“환불해 줄거다!” 지팡이를 집어 들며 어머니가 선언하였다.
나는 그 점에 대해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다.  
     

 로맹가리는 어머니의 독촉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책을 쓸 때 어머니와 생각을 공유했다. 로맹가리는「유럽식 교육」 출판을 어머니가 데뷔한 것이라고 썼을 만큼 그의 모든 책들은 그가 쓴 동시에 그의 어머니가 쓴 책이다. 모자간의 이러한 연결고리는 상대방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과 남들이 가지지 못한 감수성이 있기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고 그가 에밀아자르라는 필명으로 「자기 앞의 생」 속 로사와 모모를 창조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책 끝부분에 어머니에 대한 반전이 있다. 그 반전도 그의 어머니다운 행동임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지며, 로맹가리가 평생 동안 그의 어머니를 사랑하고 존경하고, 그의 어머니 영향력 밖으로 나갈 수 없는 것은 어머니가 그런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전적 이야기는 그 속의 진심이 얼마나 독자에게 닿느냐에 따라 느껴지는 것이 다르다. 「새벽의 약속」에서 로맹가리는 가슴 아픈 상황들을 유머로 승화시키기도, 자랑할 만한 부분도 화려하지 않고 가식 없이, 어머니와의 연결에 대해서도 그의 생각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있다. 책의 문체는 덤덤하지만 읽는 내 마음은 뜨거웠고, 유쾌하게 웃으며 읽었지만 덮고 나서 한동안 마음이 먹먹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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