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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거스 Oct 29. 2021

[책] 이미예 '달러구트 꿈백화점'

내 꿈은 내가 결정한다

 

 몇 년 전 프로이 무의식에 관한 강연을 들은 후, 나의 무의식과 감정을 알아내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 꿈을 꿀 때마다 메모를 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어쩌다 꾸는 꿈을 습관적으로 메모하기 쉽지 않고, 기록을 위해 꿈의 파편들을 억지로 연결시켜 스토리를 만들고 있는 것 같아 얼마 뒤 그만두었다.

 나는 보통 꿈에서 누군가에게 쫓긴다거나, 낯선 장소에서 나 홀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로 어찌할 바를 모르다가 그 상태에서 깬 적이 많다. 행복한 감정으로 꿈을 깼던 적이 언제였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만큼 꿈을 꾸는 행위가 그리 달갑지 않다.


「달러구트 꿈백화점」은 우리가 어릴 때부터 무수히 경험하고 있지만 그 실체를 알지 못하는 꿈이 사실은 우리들이 살 수 있는 제품이라는 상상을 펼친다.  심리를 전공한 사람들이나 정신의학과 의사들만 꿈에 대해 말할 것 같았는데 작가가 꿈을 멋있고 나름 설득력 있게 독자들에게 알려주는 게 재미있다. 내가 아는 한 꿈의 세계를 다루는 소설이 없던 만큼, 작가의 상상력과 소재의 독특성에 감탄할 수밖에 없다.


 내가 중학교를 다니던 시절 학교 앞에 비디오와 만화책을 다루는 규모가 큰 대여점이 있었다. 요즘 세대에게는 ‘ 비디오가게’란 말 자체가 생소하겠지만 그 당시에는 동네마다 하나씩은 꼭 있었던 랜드마크였다. 학교 앞 비디오가게 사장님이 내가 좋아할 만한 비디오나 만화책을 추천해주셨고, 특히 만화책은 후속편이 나오면 바로바로 빌려주셨던 기억이 난다. 꿈백화점도 비디오가게처럼 방문하는 사람들에게 현재 처한 상황이나 기분에 적절한 맞춤형 꿈을 추천해준다. ‘하늘을 나는 꿈’이나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은 워낙 사람들이 많이 찾기 때문에 스테디셀러 코너에 따로 있을 정도이다.


 특히 사장 달러구트는 돈을 버는 것보다 손님의 만족이 더 중요하다고 여기고, 손님들이 최상의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옆에서 도와준다. 단골손님 201번에게 ‘좋아하는 사람이 나오는 꿈’을 며칠간 판매하여 손님의 꿈에 거래처 남자가 계속 나오게 한다. 꿈에서 깬 여자는 자신이 그 남자를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아 용기를 내어 남자에게 먼저 연락한다. 달러구트는 ‘트라우마 극복을 위한 꿈’도 사람들에게 사도록 설득한다. 이 꿈을 사는 사람들은 군대 가는 상황이나, 시험을 다시 치르는 상황을 꿈에서 겪는다.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기 때문에 꿈에서 깨면 괴롭지만 동시에 그 어려움을 헤쳐나갔던 기억 또한 같이 상기시킬 수 있다. 힘들더라도 그 꿈을 통해 스스로의 믿음과 자신감을 얻게 되어 서서히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갈 수 있다.


 각각의 이유로 꿈을 사고 그 꿈을 통해 성장하거나 기쁨을 느끼는 사람들의 에피소드들을 보며 위안과 편안함을 느낀다. 가끔 누군가에게 쫓기다가 낭떠러지 앞에서 더는 갈 곳이 없어 절망감을 느낀 채로 잠에서 깬 적이 종종 있다. 보통 이런 꿈들은 현실에서 심적 고통이나 압박을 느낄 때 무의식적으로 그런 꿈을 꾼다고 한다. 이를 달러구트 백화점의 관점에서 본다면? 내가 스스로를 더 단단하게 만들기 위해 돈을 주고 그 꿈을 산 게 된다. 아마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꿈' 정도가 저런 꿈의 상품명이 아닐까. 달러구트 백화점은 그래서 흥미롭고 즐거운 공간이다. 힘든 꿈이든 행복한 꿈이든 내가 직접 백화점에 가서 그 꿈을 사는 행위가 이루어 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꿈을 꾸는 행위 자체가 나의 불안이나 기분에 따라 발생하는 수동적인 행위가 아니라 스스로 꿈을 결정하는 매우 능동적인 행위가 된다.

 소설을 읽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소설 속 가상세계에서 일어나는 세상살이들이 나에게 위로가 되는 점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잠이 든 내가 달러구트에게 ‘옴짝달싹하지 못하는 꿈’을 구매하기 위해 백화점으로 달려가는 장면을 머릿속에 그려본다. 비용까지 지불해가며 꿈을 산 이유는 다음 날 잠에서 깬 내가 더 성숙할 수 있다는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기 때문은 아닐까.      


 ps) 눈꺼풀 저울도 있는데 단골손님들이 올 시간을 미리 알기 위해 만들어진 저울로 단골손님들이 잠이 들 때쯤 눈꺼풀이 무거워지며 추가 내려가는 시스템이다.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진다면 이 눈꺼풀 저울이 어떻게 시각적으로 구현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유미의 세포들」에서 세포들이 정말 귀엽고 움직임이 자연스러워서 앞으로 컴퓨터 그래픽으로 만드는 세상이 모두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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