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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하나 소셋 Apr 09. 2024

극한 체험, 아름답게 살아남은 벚꽃

극단의 성향을 가진 두 명이 상사와 나, 그리고 내가 얻은 것

최근 몇 년간은 벚꽃 개화 시기 전 꽃샘추위가 찾아오거나, 또 봄비에 꽃잎이 제대로 피기도 전에 떨어졌었다. 올해 제대로 활짝 만개한 벚꽃을 오랜만에 보았다.

판교 신도시가 개발된 지도 벌써 15년에 접어들고 있다.

처음 이사 왔을 때 아기였던 나무들은 이제 분당을 대표하는 벚꽃길로 자리 잡았다. 

포털사이트에 '운중천 벚꽃'을 검색하면 아름다운 풍경이 많이 검색된다. 


어떤 한 가지의 일을 계속해오고 있는 사람의 인생도 마찬가지다.

개화하기도 전에 꽃샘추위가 찾아오기도 하고, 비바람에 그동안의 노력이 허사가 되기도 한다.

그렇게 풍파를 겪으면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다 보면 결국에는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마주하는 날이 언젠가는 온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대개의 그 풍파는 사람에게서 온다.  주로 상사다.

나는 28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많이 대비되는 두 사람의 상사를 만났다. 

물론 그보다 여러 명의 상사와 함께 일했지만, 그중 가장 극과 극이면서도 나에게 큰 영향을 준 두 명의 상사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한 명은 '나제일' 상사다. 

내가 초급간부가 되고 처음 함께 일하게 된 상사다.

우리 회사에서 '나제일' 이름만 대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직원들에게는 가장 같이 일하고 싶지 않은 상사로 정평이 나있었다. 

'나제일'은 자신의 기준을 명확히 가지고 있고 그것이 '第一 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조직의 성과를 극대화하기 위한 방안은 본인이 제일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은 나의 기준에 맞추어 시키는 대로 빨리 정확히 꼼꼼히 일을 해내면 된다고 강조하였다. 

어찌 보면 조직을 총괄하는 상사로서는 이상적이라고도 할 수 있는 마인드다. 

본인이 방향을 설정하고 직원들은 이에 따라 일을 하고 결과에 대해서는 본인이 책임을 지니 문제가 없다.

하지만 나제일의 소통 방식이 문제였다. 

지시는 일방적이다 못해 무서웠고, 피드백은 직설적이다 못해 인격모독에 가까운 발언을 하는 경우도 다반사였다. 아무도 나제일과는 길게 대화하지 않으려 했다.

또한, 같이 근무하는 직원들을 대상으로 나름의 테스트를 진행하는데, 그 테스트에 통과하지 못한 사람과는 상대를 하지 않기로 유명했다. 

반면, 업무에 관해서는 우리 회사 탑이었다. 

보고서를 작성하는 스킬 하며, 보고의 타이밍을 정하는 센스, 상사에게 본인의 의사를 관철시키는 노하우, 새로운 업무에 도전하는 진취성 등 정말 배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다. 

나는 초급간부였기 때문에 나제일에게 많은 테스트를 당했다. 

이제껏 검토해보지 않았던 주제를 던져주고 분석을 해오라던가, 관련 업무에 관해 교육을 듣게 한 후 회사 내 다른 사람에게 발표를 하라고 시킨다던가, 그 당시만 해도 여성직원이 하지 않던 임원 보고를 시킨다던가 하는 일이었다. 

던져진 한 가지 과제를 끝내려면 적어도 스무 번 이상 속된 말로 "빠꾸"를 당했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 과정에서 배운 것이 많았다

이제 회사에서 보고서 작성은 필자에게 검토받아 완성하라고 이야기할 만큼 실력을 인정받았고, '나제일'과 일하면서도 살아남고 인정받은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라는 꼬리표가 훈장처럼 달려있다. 

같이 일한 일 년 반의 시간이 나의 회사생활 전체를 통틀어 가장 힘들고 어려웠다.

하지만 회사를 다니면서 갖춰야 할 기본적인 업무 지식과 스킬, 노하우는 거의 모두 이때 배웠다고 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는 너무 소중한 상사로 기억되고 있다. 

이제는 퇴직을 하셨지만, 가끔 전화해 안부를 묻는 사이로 남아있다.


두 번째 '나얼리' 상사다.

나얼리 상사는 얼리어답터다. 회사에서는 신인류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회사에서 가장 먼저 사용했으며, 미국의 유명 전기차 출시와 동시에 국내에서는 최초로 구입하여 타고 다닐 만큼 시대의 흐름에 민감한 사람이었다.

이 상사와는 초급간부 5년 차쯤 함께 근무하게 되었다.

원칙과 규정을 따르고 시키는 대로 정확하게 일하는 데에만 익숙해져 있던 나에게는 신인류 같은 상사였다.

나얼리 상사는 과업이 생기면 먼저 어떤 방식으로 추진할지 상호 간 논의를 통해 일의 방향성을 결정하였다. 

이렇게 일의 방향이 정해지면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은 나에게 일임하였다.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이 회사의 규정과 사회적 통념에 어긋나지 않는다면 상관하지 않았다.

그 결과에 도달하는 방식을 고민하고 남들이 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도 접목해 보고, 우리 회사 같은 공공기관에서는 시도해 보지 않는 형식으로 일을 추진해도 전혀 제지하지 않았다.

이렇게 자기 결정권을 가지고 자율적이고 창의적으로 일을 하다 보니 너무 "재미있었다."

나제일 상사와 일할 때는 완벽하게 빈틈없이 하는 것에 대한 만족감을 배웠다면

나얼리 상사와 일할 때는 일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여러 가지 방식을 접목해 성과를 내었을 때 느끼는 성취감을 배웠다. 

나얼리 상사와 같이 근무하는 동안 "최초"인 일들을 많이 해냈으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재미를 제대로 알게 되었다. 


나는 어쩌면 정말 운이 좋다.

이렇게 정 반대의 성향을 가진 일 잘하는 두 명의 상사를 만나고 함께 일하면서 일하는 방식을 배워 내가 부족한 부분을 메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에 전설처럼 회자되는 두 분 모두 이제는 퇴직하셨지만, 이 두 분 모두와 함께 근무해서  '살아남은' 나를 모두 대단하다고들 한다. 살아남은 자라는 말이 왠지 기분 나쁘게 느껴지지는 않는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딱 그만두게 싶게 만드는 사람들을 여럿 만나고는 한다. 

하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쯤은 내가 취할 것이 있기 마련이다.

'피할 수 없으면 즐겨라'는 말처럼 생판 모르는 남이 내 인생을 휘젓게 둘 것이 아니라, 내가 그 사람을 인정하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취할 것과 무시할 것을 명확히 해 정면돌파를 하는 것이 결국 내가 이기는 것이다. 


내 인생의 벚꽃이 올해 운중천에 옹골차게 핀 벚꽃처럼 만개했다고 다른 사람들이 판단하는지는 잘 알지 못하겠다.  

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나는 나의 지금의 나의 벚나무가 매우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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