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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Sep 15. 2023

평범한 하루하루

눈을 뜨니 8시가 넘었다. 늦게 잠자리에 든 것도 아닌데 다른 날 보다 많이 잤다. 아마 어제 낮에 맞은 독감주사의 영향인 것 같다. 당연히 넘 편 님은 목요조찬 모임에 나가고 없었다. 거실에 내려가 보니 아들도 나가고 온 집안이 조용했다. 어제 그제 운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나가서 걸으라고 '내 안의 또 다른 나'가 자꾸 재촉을 하는지라 억지로 억지로 무거운 몸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하늘을 쳐다보았다. 구름 한 점 보이지 않는 완전 하늘색이었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것 같아 피부가 상쾌하다고 좋아했다. 혼자라도 잘 나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두 가지 일을 동시에 잘 못하는 사람이지만 걸을 땐 가능하다. 걸으면서 모음 '가갸거겨고교구규그기'부터 시작해서 '하햐허혀호효후휴흐히'까지 발음 연습을 한다. 피드백받은 녹음 파일을 듣기도 한다. 건강도 챙기도 공부도 하니 일거양득이라며 뿌듯해한다. 그러면서도 매번 밖으로 나갈 때마다 한참을 뭉그적거린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잘했어! 아주 잘했어!"라고 칭찬해 주었다. 샤워실로 직행했다. 환절기라서인지, 나이가 들어가서인지 샴푸를 할 때마다 머리카락이 한 움큼씩 빠진다. 바닥에 보이는 머리카락을 보면 우울해지기도 한다. 검색해 보니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겐이 감소되어 모발이 약해지기 때문이란다. 머리카락이 엉키지 않도록 자주 빗어주어야 하고, 천연 성분이 함유된 샴푸를 사용하라고 한다. 물론 단백질, 비타민, 미네랄 등 영양가 풍부한 식품의 섭취도 필요하다고 한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책상 앞에 앉아있는데 넘 편 님이 들어왔다. 점심을 먹으며 여러 이야기가 오갔다. 그런데 넘 편 님의 발음이 새고 있어 참고 참다가 입을 열고 말았다. (나 자신도 나의 발음을 못 챙기는 주제에 말이다.)


"자기... 말할 때 발음 새는 것 알아?" 


"응. 나도 알아. 노래할 땐 다행히 안 새."


 "사람이 나이가 들어가면서 몸만 늙는 것이 아니라 발음이 흐려진대. 우리말할 때마다 신경 써서 발음 똑바로 하자."


"맞아. 그러자."


 다른 때 같으면 "내가 언제? 다들 그래!" 등등의 말로 대화를 단절시켰던 넘 편이었다. 의외였다. 인정을 하며 "그러자."라고 했다. 


2층 나의 방으로 올라와 커피 한 잔을 더 마시며 생각했다. 싫어하는 상황을 만들지 않기 위해 피하기도 하고, 지나쳐버리는 순간들에는 나의 탓도 있다고. 나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만나고 싶지 않은 순간이더라도 어떻게 내가 다가가느냐에 따라 소중한 순간으로 바뀔 수 있다고. 


드라마 한 편을 고르다가 백퍼 공감되는 제목에 이끌려 넷플렉스에 있는 "아는 것도 없지만 가족입니다" 1편을 보았다. 할 일을 뒤로하고, 3편까지는 적어도 보고 잠자리에 들 것 같다. 하하!




"Seize the Moment, Carpe diem (순간을 잡아라, 현재를 즐겨라)

요즘 읽고 있는 박웅현 작가의 <여덟 단어>라는 책 속에 있는 문장이다. 현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개처럼 살자"는 작가님의 말이 웃기기도 했지만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 밥 먹을 때 걱정하지 말고 밥만 먹고, 잠잘 때 계획 세우지 말고 잠만 자자는 것이다. 순간을 살자는 것이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다. 사실 내가 추구하는 나의 문장이기도 하다.  나 자신도 늘 순간에 집중하며 의미를 부여하며 살기를 원했고 원한다. 나의 삶은 순간순간의 합일 테니까. 




들쑤시기 싫어 감춰둔 나의 순간들, 불편해질까 봐 피해버리는 나의 순간들, 그리고 겉과 속이 다르게 다가갔던 나의 순간들을 챙겨보자.  이런저런 이유로 제쳐두었던 순간들을 소중한 순간이 되도록 점검해 보자. 


모든 순간순간이 온전한 하루가 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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