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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Oct 04. 2023

그냥, 일상

적막하기까지 한 늦은 밤이었다. 

갑자기 찌지지지직~하고 귀에 거슬리는 묘한 소리가 났다. 남의 집 일 같지가 않아 방 안에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하던 일을 멈추고 황급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차고 쪽인 것 같아 문을 열어보니 울상을 짓고 있는 아들이 서 있었다.


오 마이 갓!


불과 2주도 채 안된 반짝반짝 빛나던 새 차의 범퍼와 백미러가 찌그러져 떨어져 있었다. 대뜸 너 술 먹고 운전했어?라는 질문이 먼저 나왔다. 다행히 아니라고 했다. 너무 피곤해 무심코 후진하다가 실수를 했단다.


처음으로 자기 이름으로 구입한 새 차를 타고 다니면서 날마다 신나 하던 아들의 얼굴은 완전히 슬픔의 그늘로 바뀌었다. 답답할 정도로 원칙대로 행하는 아이라 차를 갖고 나가도 큰 아이보다는 덜 걱정이 되는 아이였다. 3년간 사고 한 번 없던 놈이었다. 그런데 어이없게 복잡한 도로에서가 아니라 집 차고에 파킹하다가 차가 망가진 것이다. 새 차를 보니 나도 한숨만 나왔다.


먼저 아들에게 괜찮냐고 물어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들어 너무나도 일상적인 말을 건넸다.


“그동안 다들 겪는 잔 사고를 넌 한 번도 안내서 지금 겪나 보다. 그래도 집에서 일어난 일이니 얼마나 다행이니? 엄청 속상하겠다. 그런데 이미 일어난 일을 어쩌겠어? 보험회사에 연락해서 클레임 하고 고쳐서 써야지. 수리 마치면 새 차로 돌아올 거야.”


순간 남편이 당했던 2년 전의 사고가 떠올랐다.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것만도 천만다행인 사고였다.  “나 사고 났어.”라는 한 마디 후 전화가 끊겨 연락이 완전 두절 되었었다. 몇 시간 후 경찰서를 통해 사고 난 곳과 남편이 있는 병원을 찾아내어 달려갈 수 있었다. 병실 문을 여는 순간 기가 막혔다.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팔과 다리, 머리를 붕대로 감싸고 누워있었다.


40년을 운전한 이래로 그런 상황은 처음 만났다. 5년 할부 새 차였는데 한 번도 페이를 하지 못하고 폐차해야 했다. 남편은 병실에, 집 앞에 세워져 있는 새 차는 순식간에 사라졌다. 며칠 후 폐차수속이 다 끝났으니 차 안에 있는 물건들을 가져가라는 전화를 받고 가보니 그저 살아있다는 것이 정말 ‘감사’ 그 자체였다. 새 차 한 대가 쓰레기통에 버려질 종이조각처럼 꼬기꼬기 구겨져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즘  나는 특히, 하루 종일 함께 있는 날 그냥 넘어가질 못한다. 남편과 나는 잔 투닥투닥의 연속이다. 남편은 나이가 들어가는지 잔소리가 많아졌다. 별 일 아닌데도 자꾸 부딪히게 된다. 물론 남편 님께는 별일이지만! 나는 갈수록 간섭받기 싫고 남편님은 날이 갈수록 간섭을 많이 한다. 날이 갈수록 미운 정만 쌓여가는 듯하다. 완전 스트레스다! 이를 어찌하랴!




아들아!

차는 ‘나’란다. 운전할 땐 욕심을 버려야 해. 방심해선 안돼. 항상 '나 자신'처럼 아껴야 한단다.


남편님!

우리는 이렇게 미운 정을 쌓아가며 죽을 때까지 함께 하겠죠? 




혼자 있는 행복한 수요일이라 끄적이다가 슬쩍 전화를 보니 남편님의 콜이 와 있다.

뭔 일 있나 전화를 걸어보니 냉장고에 계란 삶아 놓았다고, 껍질도 이번엔 잘 까진다고 먹으란다. 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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