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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낭독가 한희정 Nov 22. 2023

할머니를 다시 만났다

이용순 성우님의 낭독수업에 참여하고 있다. 그 수업에 들어가면 모두 다 낭독환자들이다. 나의 낭독병은 몸에 힘이 들어가는 것과 바르지 않은 띄어 읽기로 특유의 ‘조' 그러니까 운율이 생기는 것이다. 낭독환자들의 문제점은 각양각색이다. 음가의 톤을 자주 내려 말하기 낭독이 되지 않거나, 감정을 과하게 쓰며 읽는다든가, 너무 뚝뚝 끊어 읽는다든가 , 너무 급히 읽어 청자를 배려하지 않는 낭독이 된다든가, 사투리와 발음을 교정받기 위해서 등등. 



수업에서 교재로 낭독하고 있는 책은 박완서 작가님의 <모래알만 한 진실이라도>이다. 지난주 과제 중 하나인 <할머니와 베보자기>란 글을 낭독하면서 잊으면 안 되는 할머니 생각으로 아차 했다. 할머니를 완전히 잊고 살아가고 있는 나의 무정함에 허탈한 기분이 들었다. 



나에게도 나에게만은 과하게 지극한 사랑을 퍼주시던 할머니가 계셨다. 당신의 몸보다 더 나를 챙기셨다. 국민학교(지금은 초등학교) 때였다. 할머니는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학교인데도 날마다 데려다주셨다. 괜찮다고 연거푸 말해도 할머니는 내 말엔 아랑곳하지 않으셨다. 할머니는 교문 앞에 서서 내가 교실이 있는 건물로 들어갈 때까지 바라보고 계셨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단지 손녀가 다니는 학교라는 이유 하나로 아이들의 등교가 끝나면 텅 빈 운동장에 이곳저곳에 보이는 휴지를 주우셨다. 왜 할머니가 그런 일까지 하시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학교가 끝날 때쯤에도 교문 앞에 마중 나와 늘 나를 찾으시며 기다리셨다. 나는 늘 할머니의 모습을 먼저 보지만, 어떤 날은 모르는 척하며 혼자 집으로 가려고도 했다. 그러면 ‘희정아, 희정아’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려 할머니에게 마지못해 돌아간 적도 있었다. 완전히 어린 시절의 작가님과 똑같은 마음이다. 나도 할머니를 참 많이도 부끄럽게 여겼다. 


중학교 때였다. 반찬투정이 심한 나는 매일 아침 도시락 반찬을 점검했다. 내가 좋아하는 계란말이와 소시지볶음과 김을 쌌나 확인했다. 어느 날 엄마가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할머니처럼 내가 원하는 것을 넣은 것이 아니라 엄마 맘대로 쌌다. 게다가 냄새나는 김치도 들어 있었다. 화를 내며 도시락을 팽개치고 학교로 향했다. “굶어봐야지 음식 귀한 것 알지!”하는 엄마의 잔소리를 뒤로하고 말이다.


점심때가 되었다. 그러나 내 고집도 한 고집했던지라 엄마에게 딸이 굶는 모습을 보여주려 했다. “내가 진짜 굶은 것을 알면 엄마의 마음이 좋겠어?”하는 반항심으로 매점으로 달려가지 않고 배고픔을 참고 있었다. 그런데 웬일인가? 교실 문이 쓰윽 열리더니 두 개의 보온밥통을 든 할머니가 보였다. 거의 두 시간이나 걸리는 학교로 김이 모락모락 하는 흰쌀밥과 소고기 뭇국을 가져오신 것이다. 아침에 도시락을 내팽개치고 간 손녀가 마음에 걸려 새로 밥을 짓고 국까지 끓여 버스를 두 번이나 갈아타고 오셨건만, 쪽을 찌고 한복치마를 입은 할머니의 모습이 달갑지 않아 '고맙습니다'라는 인사는커녕 '어서 빨리 가라'고만 했다. 


할머니는 늘 내가 피아니스트가 될 사람이라고 나의 손을 무척이나 아끼셨다. 맛있는 것이 있으면 감춰두었다가 나에게만 주시곤 하셔서 동생들의 질투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어릴 적 할머니의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무엇보다도 쪽을 찐 모습이 창피했고 늘 나를 따라다니며 과보호하는 것도 싫었다. 내 기억에 고2 때 까지도 내가 탄 버스가 도착할 시간이 되면 늘 정류장에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기다리고 계셨다. 



할머니는 대학 3학년 때 대장암으로 돌아가셨다. 그때서야 알았다. 늘 기다려주고 바라봐주고 하던 할머니의 모습은 그 어디에도 없다는 것을. 1년 넘게 실감이 나질 않았다. 버스 정류장에서 늘 마중 나와 기다리고 계신 할머니, 나만을 위한 밥상을 차려놓고 흐뭇해하는 할머니는 더 이상 보이지 않았다. 무심코 '할머니!'하고 불러봐도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무척이나 듣기 싫어했던 "내가 결혼하는 것을 보고 저세상으로 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겠다"는 할머니의 목소리만이 들려올 뿐이었다. 


매 해 할머니가 돌아가신 날이 돌아오면 할머니를 만나러 혼자 산소에 찾아가기도 했었지만, 더 긴 세월이 흐르니 절대로 잊을 수 없는, 잊어서는 안 되는 할머니를 잊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무정함, 무심함이 마치 세월을 이긴 것 같았다. 



<할머니와 베보자기>라는 글을 만나 낭독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잊고 있었지만 늘 내편이었던 할머니와의 오래전 추억들을 다시 새록새록 떠올릴 수 있어 참 감사하다. 


할머니의 눈과 맘에는 오로지 나만을 향한 사랑이 있었을 뿐인데...

낭독을 하면서 다시 깨달은 할머니의 사랑!


오늘따라 할머니를 향한 그리움, 고마움, 후회, 아쉬움이 아련히 스치고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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