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은 엄마와 아빠를 닮는다. TV를 보는 방법까지
보통 사람들은 반복하는 것을 참 힘들어한다. 아무리 좋아하는 영화라도 몇 번 이상 보면 더 이상 보기 힘들다는 사람들이 많다. 만약 어떤 영화를 반복해서 볼 수 있다고 하더라도, 약간의 텀을 두는 것이 보통 사람들의 일반적인 선택이다.
근데 나는 좀 다르다. 나는 반복하는 것을 무척 좋아한다. 한 번 읽었던 책을 여러 번 읽는 경우도 많고, 심지어 인터넷 강의를 반복적으로 듣는 것도 재미있어한다. 영화나 드라마는 수십 번씩 본 것들이 허다하다. 아침에 본 영화를 점심에 보고 저녁에 세 번째로 봐도 힘들지 않다. 오히려 재미있고 기대된다.
다시 보는 영화도 복잡한 내용의 일부 명작들에 국한되지 않는다. 로맨틱 코미디도 수십 번씩 다시 보고, 디즈니에서 나온 애니메이션, 단순한 액션 영화들도 그렇게 반복해댄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어떤 사람들은 "어? 나도 그러는데!", "나도 그렇게 반복해서 보는데!"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난 한 번 웃음 포인트를 알고 보면 다시 봤을 때 재미없다는 예능 프로그램들도 그렇게 반복한다. 장르 가리지 않고 그렇게 반복해대는 통에 심지어 몇 년 전에는 인도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힌디어를 꽤 많이 외웠던 적도 있었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동생은 이런 말을 했다.
"누나,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알고 있는 내용을 반복적으로 보면서도 웃어대는 나를 보고 동생은 진심으로 우려를 표했다. 이러다가 머리가 잘못되는 건 아니냐고 걱정을 늘어놨다. 동생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걱정을 엄마와 아빠에게도 나눴다.
"엄마, 아빠, 진짜 누나 머리가 어떻게 되면 어떻게 해? 나이 들 수록 점점 더 심해지는 것 같아. 계속 똑같은 거 보잖아."
그 말을 들은 엄마와 아빠는 동생과 함께 우려를 표했다. 그렇게 똑같은 거만 골라서 보다가 바보 된다, 맨날 보던 것만 보지 말고 다른 것도 봐야 한다, 억지로라도 노력해야 한다, 세상은 좋아하는 것만 보고 살 수 없다. 등등...
좋아하는 영화와 드라마를 반복적으로 본 것 때문에 가족들 사이에서 난 부적응자 비슷한 걸로 낙인이 찍혀 있었다. 그런데 얼마 전부터 뭔가 이상한 걸 발견했다.
아빠의 휴식 시간을 쭉 관찰해 본 결과, 아빠는 네 가지 드라마를 계속, 반복적으로 보고 있었다. 미스터 션샤인, 나의 아저씨, 호텔 델루나, 장가행.
특히 나의 아저씨의 경우, 아빠가 5번 이상은 정주행을 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그리고 그 드라마들을 보고 있는 아빠의 표정은, 내가 반복적으로 영상을 볼 때 짓고 있는 그것과 다를 것이 없이 동일했다.
반복해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그 상황에 이입하고, 안타까워하고, 아이유를 응원하는 아빠의 그 아련한 표정. 그 표정에 돌연 배신감이 들었다. 이렇게 반복을 열심히 하고 있으면서, 나한테만 뭐라고 했다고?
"아빠, 나의 아저씨 보는 거 벌써 몇 번째야? 아빠도 나랑 똑같아. 맨날 장가행, 호텔 델 루나, 미스터션샤인, 나의 아저씨 반복해서 보는 거지?"
아빠는 머쓱한 듯 웃으며, '이건 재밌잖아.' 했다. 그 뒤로 아빠는 내가 반복적으로 뭔가를 다시 보는 것에 태클을 걸지 않았다. 이제 남은 건 엄마였다.
그런데 엄마는 도무지 빈틈이 없었다. 뭔가를 그렇게 반복적으로 궁금해하고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러다가 엄마에게 이상 징조가 포착된 것은 뭉쳐야 찬다 2 14회가 방영된 이후부터였다. 해당 편차에서는 중학교 1학년 축구천재들이 나와서 기존 뭉찬 멤버들과 대결을 펼쳤다.
https://tv.jtbc.joins.com/trailer/pr10011362/pm10063017/vo10539898/view
그중 김예건이라는 선수가 있었는데, 중학교 1학년이 볼 다루는 솜씨도 대단하고 귀여웠다. 근데 엄마 눈에는 대단히 귀여웠나 보다. 뭉쳐야 찬다 시즌2 14회를 벌써 4~5번 이상 반복해서 보고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중에도 엄마는 거실에서 또 같은 회차를 보고 있다.) 그냥 쉬려고 앉으면 자동으로 뭉쳐야 찬다 시즌2 14회를 틀어 놓는다.
엄마가 좋아하는 장면이 나오면 여지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는다.
"엄마, 이게 그렇게 재밌어?"
"어. 너무 재밌어. 볼 때마다 재밌어. 어쩜 애들이 이렇게 축구를 잘해.”
네 개의 드라마를 반복해서 보는 아빠, 뭉쳐야 찬다 시즌2 14회를 반복해서 보는 엄마, 온갖 걸 다 반복해서 보는 나. 결국 난 나 혼자 반복하는 게 아니었다.
엄마랑 아빠를 닮아서 반복하는 거였다.
이런 우리 셋을 보고 동생은 "셋이 똑같아. 똑같아." 했지만, 동생은 지금도 몇 년 전에 종방한 무한도전을 반복해서 보고 있다. 처음 봤을 때 웃었던 그 포인트에서 또다시 웃어대면서 말이다.
우리 가족은 그냥 다 똑같다. 동생도 나도 엄마와 아빠를 닮았다.
https://brunch.co.kr/brunchbook/familyessay : 브런치 북으로 만든 매거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