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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원 Oct 10. 2023

오늘도 일 없는 하루이길

북한 말 중에 괜찮다는 의미로 잘 알려진 “일 없습니다”라는 말이 있어요. 아마도 드라마나 매체를 통해 누구나 한 번쯤 들어봤을 텐데요. ‘괜찮다’라는 말은 새터민들이 한국에 입국하여 하나원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이에요. 일 없다는 의미가 북한에선 괜찮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에선 완전히 다른 의미로 쓰이기 때문이죠. 이 외에도 많은 외래어를 배워요. 한국 사회에서 잘 적응해야 하기에 새터민들은 나이에 상관없이 모두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하게 돼요.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아요. 오랫동안 고향에서 써온 발음과 억양을 하루아침에 바꿀 순 없으니까요. 그럼에도 다들 이곳에 정착하려고 참 열심히 해요. 고향을 떠나 어렵게 이곳까지 살기 위해 왔으니까요. 조금 더 나은 생활을 하기 위해 목숨 걸고 왔으니까요. 하지만 그런 노력에도 이곳에서 정착하고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에 쉽지 않아요. 보이지 않는 유리 벽 같은 것도 있고 알게 모르게 차별도 당하며 상처도 많이 받거든요.     


어쩌면 애초에 태어난 고향을 떠나 더 잘살아 보려고 이곳에 왔으니 그 정도 각오는 해야하는 것일까요? 하지만 때로는 그 모든 게 너무 가혹하게 느껴질 때가 있어요. 누군가는 태어날 때부터 엄청난 부를 가지고 누군가는 밥 한 끼 제대로 먹지 못하는 환경에 태어나듯이 한국에 온 새터민분들도 저마다의 사정으로 이곳에 오거든요. 어떤 이유든 간에 적어도 그곳에서보다는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온 만큼 이곳에서는 부디 모두 괜찮은 삶, 일 없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어요.   

   

어제보다는 오늘이, 오늘보다는 내일이 기대되는 평온하고 소소한 일 없는 일상들이 모두에게 펼쳐지길 바라요. 애써 괜찮은 척 하는 것 말고 정말로 별일이 없어서 괜찮은 하루 그런 날들이 우리 모두에게 일어나길 소망해요. 가끔은 복잡한 생각 모두 내려놓고 평온한 하루의 시간에 나를 맡겨보는 일. 그저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며 살랑이는 바람과 공기를 느껴보는 아주 소소하지만, 꽤 근사한 그런 하루요. 특별한 일이 있어 행복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아 안심하는 날도 많으니까요. 언제 어디에 있든 일 없는 날들이 늘 함께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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