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hining days Jan 31. 2024

33년 만에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찬 바람이 스며들지 않도록 패딩 지퍼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애들 장갑과 목도리 챙기느라 내 것은 챙기질 못했니, 유모차를 미는 손등이 금세 빨갛게 부어올랐다.


첫째 어린이집에 보내고 나서 장난감을 정리했다. 둘째 내 뒤를 쫓아다니며 장난감을 다시 꺼내 거실을 어지럽혔다. 설거지한 그릇을 찬장에 차곡차곡 넣고 빨래한 을 개키고 나니 어느새 점심간이 다 어있었다. 째 아이를 식탁 의자에 앉히 이유식을 먹였다. 빨리 삼키질 않으니 한 숟갈을 먹이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그때 누군가 우리 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매우 조심스러운 노크 소리였다. 택기사님은 물건만 두고 기 때문에, 방문 판매인가 싶어 반응하지 않고 이유식을 계속 먹였다. 인기척이 없으면 금방 갈 거라고 생각했다. 런데 다시금 노크 소리가 들렸다. 


똑똑똑


벨을 누르지 않으니 인터폰으로 얼굴을 확인할 수가 없었다. 런 적은 처음이었다. 갑자기 예전에 들었던 묻지마 살인 사건이 떠오르면서 오싹한 기분 들었다. 성별이라도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돌아가는 발걸음이 들리질 않는 게 마음에 걸렸다. 나는 문을 닫은 채 물었다.


"누구세요?"

"여기가 혹시 ㅇㅇㅇ씨 댁인가요?"


다행히 중년 여자의 목소리였다. 흉흉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것 같아 안심이 다. 내 이름을 알고 있는 걸 보니 관리사무소에서 나온 건가  그제야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제가 ㅇㅇㅇ인데, 누구세요?"


풍채 좋은 여성분이 '교회 목사'고 적힌 명함을 건넸다. 전도하러 나온 사람인 건가. "저 교회 다녀요." 하고 문을 닫으려는데 그녀가 황급히 문고리를 붙잡았다.


"아, 그게 아니고요. 혹시 ㅁㅁㅁ씨를 알고 계세요?"


생각지도 못했던 이름 튀어나왔다.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잊고 지냈던 이름, 한 번도 부를 일이 없었던 이름. 바로 엄마의 이름이었다. 긴장감과 함께 표정이 다.  분  엄마까. 갑자기 세상이 슬로모션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심장 두근거렸다.


"저희 엄마 이름인데... 어떻게 아세요?"

"ㅁㅁ씨랑 잘 아는 사람이에요. ㅁㅁㅁ씨가 혜원 씨를 보고 싶어 해요. 혜원 씨 마가 불쑥 찾아오면 놀랠까 봐 제가 먼저 와본 거예요."


좋다, 싫다 보다는 당황스러움이 컸다. 이런 순간을 상상해 본 적이 없어서 뇌가 고장 나버린 것 같았다. 가 아는 엄마는 렇게 날 찾 만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더더욱 당혹감이 컸다.




엄마와의 추억은 손에 꼽을 만큼 적었다. 유치원 다닐 때쯤엔가, 집 전화 울렸다.


"여보세요? 어른들 아무도 안 계시니?"

"네. 밖에 다 나가셨어요."

"그렇구나. 너 내가 누군 줄 아니?"

"아니요."

"내 이름은 ㅁㅁㅁ이야. 들어본 적 있니?"

"아니요."

"그래. 할머니 오시면 ㅁㅁㅁ한테서 전화 왔었다고 전해줘라."

"네."


알고 보니 그게 엄마였다. 나와 첫 통화였음에도 불구하고 엄마는 나에 대해 아무것도 묻질 않았다.


아빠와 함께 밤중에 엄마를 찾아간 적도 있었다. '나의 아저씨'에 나왔던 이지안 집처럼 좁다란 골목길 맨 꼭대기에 있던 집. 파란 대문인지 초록 대문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술 취한 아빠가 엄마를 죽여버리겠다며 무작정 찾아간 곳이었다. 나는 엄마궁금하기도 하고, 진짜로 아빠가 칼로 엄마를 찌르면 어떡하나 무섭기도 했다. 끝도 없는 계단을 오르는 내내 가슴이 쿵쾅거렸다.


대문두드리니 엄마가 나왔다. 리 전화를 해뒀던 건지 엄마는 크게 놀라지 않는 눈치였다. 시간이 늦어 엄마 집에서 하룻밤 자고 가기로 했다. 나는 밤새 악몽을 꿨다.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지난 밤 아무 일이 없었단 사실에 안도했다. 


엄마의 집도, 엄마의 얼굴도 기억에서 금 잊다. 처음 엄마를 만난 거였지만 별다른 얘기를 나 않았다.  보는 눈빛이 따듯했다거나, 날 보고 싶어 했단 눈치도 아니었다. 아침에 어나 내 머릴 한번 묶어준 게 전부였다. 그날 내게 남은 감정은 아빠가 경찰서에 가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뿐이었다. 내 가족은 아빠밖에 없단 걸 다시 한번 느꼈다.

 

대학생이 됐을 때 엄마에게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평생 연락 한 번 없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나를 데리고 가겠다고 했다. 할머니 말로는 엄마가 재혼을 지 오래됐다던데 여태껏 자식이 없나라도 데려가려는 게 아니냐고 했다. 20살이 넘은 내가 생판 모르는 아저씨와 한 집에서 오손도손 잘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한 걸까. 순진한 건지 무례한 건지. 이러나저러나 하나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할머니에게 말했다. 엄마에게 신 연락하지 말라 전해달라고. 그 후로 엄마는 연락 또 끊었다.




그랬던 엄마가 다시 나를 찾고 있. 집 앞에 서 있는 그녀는 '엄마와 연락하고 싶다면 명함에 적힌 자기 번호로 연락 달라'는 말을 남고 돌아갔다.


넋이 빠진 사람처럼 하루 종일 다. 엄마를 만 말지, 엄마에 대한  감정 어떤지 모든 게 뒤죽박죽 혼란스러웠다. 퇴근하고 돌아 남편에게 오늘 있었던 일을 얘기했다. 당황스러워하는 건 남편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며칠을 고민하며 망설였다.


엄마가 나를 좀 더 일찍 찾았면 아마 만나지 않았을 확률이 크다.  삶이 평탄하면 굳이 엄마 필요하지  테니까. 그러나 요즘의 나는 엄마가 간절히 필요했다. 부모가 곁에 있다는 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엄마가 떤 사람일지도 궁금다. 점점 연락 보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연락해 보고 너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때 다시 인연을 끊으면 그만일 것이다. 엄마가 나에게 그래왔던 것처럼.


명함에 적힌 번호로 자를 보냈다. 그녀는 잘 생각했다며 나를 칭찬했다. 더불어 엄마를 이해하고 용서라며, 안 그러 나중에 후회할 거라는 쓸데없는 말까지 덧붙였다. 엄마 없는 삶이 얼마나 힘 겪어보지도 않았으면서, 엄마 지인이라고 엄마 에서만 얘기하는 게 무례하게 느껴졌다. 엄마가 이런 사람하고 친한 게 써부터 음에 들지 않았다.


용서하고 말고는 내가 알아서 결정하겠다고 했다. 엄마에게 휘둘리고 싶지 않았다.  태도와 감정은 엄마가 나를 어떻게 대하는 지에 따라 달라질 것다. 


그분이 엄마에게 내 연락처를 알려줘도 되냐고 묻길래 그러시라고 말했다. 그 뒤로 자꾸만 핸드폰을 쳐다보게 됐다. 왜 빨리 연락이 오질 않는지 초조해졌다. 하루종일 온 신경이 핸드폰에 가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


매거진의 이전글 나도 엄마가 있었으면 좋겠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