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에 졌다
보통 내기를 하면 느낌이 온다. 전혀 질 것 같지 않다거나, 왠지 내가 걸릴 것 같은 기분. 연속적인 승부에선 기세가 중요하다. 압도할 수 있겠다는 파도 같은 기세여야 한다. 이번에 질 것 같진 않았다. 큰 기대가 떨어져 나갔다. 둘이 걸렸다. 까만 하늘에 비가 퍼붓고 가끔씩 번쩍였다.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편의점에 가야 했다. 방 안에 단체로 모여 빈둥댔다. 닭살이 돋지만 누구도 에어컨을 끄지 않았다. 비바람이 독채를 좀 더 아늑하게 만들었다.
친구가 슬리퍼를 신고 차로 뛰어가 팔 한쪽을 펼쳐도 남을만한 우산을 하나 챙겼다. 아주 오랜 기간 몇 번 본 적 없던 친구였다. 모습은 그대론데 다른 것들이 채워져 있었다. 우산은 써 본 것들 중에 가장 넓었다. 바람은 비를 떠밀어 등과 어깨를 때렸다. 천둥이 들릴 때마다 곧 번개에 맞을 것이라는 망상이 올라왔다. 서늘한 비와 공기가 축축하게 스몄다. 걸음마다 슬리퍼 사이사이 젖은 흙이 들어왔다. 아무리 조심히 걸어도 들리는 소리처럼 비집고 들어왔다. 맑았던 낮에 가깝던 길이 잠깐 사이에 연장되어 보였다. 얇고 옅은 연두색 기능성 바지는 무릎까지 젖어 철벅거렸다. 몇 시간 전에 다녀왔을 땐 이미 도착했으리라고 짐작했으나 어두워서 내다볼 수 없었다. 불확실함이 시간을 얼리고 있었다.
언뜻 익숙한 이미지가 맞춰지자 탄성을 내지르며 뛰었다. 비를 피해 문 앞으로 다가가자 온기가 느껴졌다. 젖은 발을 수건에 닦으며 방에 디뎠다. 나쵸, 츄러스, 소주, 칫솔이 담긴 비닐봉지를 통나무 테이블에 놓았다. 방에 있던 친구 하나가 말했다. “왜 이리 빨리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