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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런아란 May 26. 2022

아아 아버지


미사 시간에 모인 갸륵한 사람들. 곳간이 차있어도 마음이 주려 주님 앞에 모여 앉은 이들. 그래서 절대자라는 든든한 어버이께 호적 올려주십사 청한 자들. 내 마음 충만치 않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여기까지 올 수도 없었다.


자신의 갈증을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은 기실 행운에 가까운 일 아닐까마는, 시원한 물속에 흠뻑 빠져 취해보면 미처 감지하지도 못했던 지난 날의 갈증이 가련하게 느껴진다. 물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어둠이 어둠인 줄 모르고 허기가 허기인 줄 모르고 사는 편이 차라리 다행일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아이 낳고 알았다. 그 전에 남편을 만나 알았고, 그보다 휠씬 전 부모의 사랑 받으며 알아버렸다. 내가 아는 만족이란 것, 행복이란 것이 얼마나 작고 일천한지를.


그러니 아버지. 하늘에 계신 아버지 이전에 땅에 계신 나의 아버지. 어린 딸의 장난감을 닦아주고, 멀끔한 교복 값을 벌어오고, 결국 토해버리고 만 내 안주 값까지 벌어주시던 아버지. 그 아버지께도 행복의 한계치를 갱신할 기회가 주어진다면야 그보다 좋을 일 없겠지만, 그렇다. 어쩐지 그 일 앞에는 가련함이 앞서야 한다. 절대자를 찾아 헤매는 불안과 두려움과 자괴감을 먼저 끙끙 앓아야 하는 것이다.


새 봄에 미사를 드렸다. 한 계절을 늦게 온 것도 모자라 시작시간 딱 맞춰 뛰어오는 바람에 끝자리에 겨우 앉았다. 대각선 저 멀리 익숙한 실루엣이 보인다. 제대 오른쪽 맨 앞자리는 신부님처럼 예복까지 갖춰 입은 모범성도가 앉는 곳이고, 바로 그 뒤 예비신자석에 아버지 닮은 이가 앉아 있다. 앞으로 살짝 들린 귓불이며 너무 오래 껴서 손가락이 패인 결혼반지까지 같다. 미사 주보를 열심히 읽는 모습 또한 모든 활자를 꼼꼼히 읽는 평소 스타일과 같아서 저러고도 내 아버지가 아니라면 영혼까지도 같다 하여 살면서 마주치면 안 된다고 하는 도플갱어 이론을 믿어야 할 판이었다.


아버지가 확실하다는 생각이 들자 미사에 집중하기 어려웠다. 그 사내가 가여워 견딜 수 없었다. 얼마 전 어지럼증으로 검사를 했다가 뇌 경색 진단 받으신 일이 생각났다. 스텐트 삽입술을 권했다는 의사 말이 떠올랐고, 그로부터 며칠 지나지 않아 코로나에 감염돼 일주일 갇혀 지내신 일도 생각났다. 냉동실에 코다리 남은 것이 있어 맑은 탕을 끓여 보냈다. 아픈 목에 개운한 국물로 밥알 수월케 삼키시라 했다. 큰 탈없이 회복하신 줄 알았다.


나이 일흔 여섯. 큰 탈은 이미 그 숫자 안에 상주해 있는 것일까. 앓고 나면 절로 생긴다는 항체처럼, 일흔 여섯 해를 온몸으로 살아내면 그 안에 피로가 철 끝난 벚꽃 잎처럼 쏟아져 내릴 것이다. 그것들이 어느 날 뭉치고 엉켜 병이 되는 게 아닐까. 산화와 풍화를 붙들어 매놓을 순 없으니까, 앞장 서 걷던 아버지의 걸음이 자꾸만 느려지는 것도 치료할 수가 없다. 그 숨 가쁜 절망은 최첨단 스텐트로도, 거푸 맞는 백신으로도 어찌할 도리가 없는 것이다.


별 수 없을 땐 아버지를 부른다. 싸워 이길 재간도 없거니와 붙어볼 엄두조차 못 낼 때면 엄마 하고 울어버리고, 울 아버지한테 다 이른다고 씩씩거리게 된다. 풀지 못할 숙제를 받은 아버지에게도 또 떠넘길 아버지가 필요할 것이다. 우리 아버지가 저 자리에 앉아 주름진 두 손을 공손히 모아 쥔 까닭은.


그 노신사는 그저 아버지를 많이 닮은 분으로 결론 났다. 나만큼은 아니어도 많은 이들이 예비신자석에 앉은 그 노인을 눈 여겨 보았을 것이다. 카톨릭 신자가 되려면 몇 달씩 교리 공부를 해야 하고, 다시 태어나는 의미로 대부 대모님도 모셔야 한다. 그분을 아들 삼을 젊은 엄마가 정해졌을까. 스스로 지은 세례명으로 다시 태어나게 될 새 생일은 삼 주 뒤. 당신의 갸륵함을 깨닫고 엎드린 시간보다 기도문을 달달 외울 그 삼 주간의 시간이 더 조바심 날지 모르겠다. 그 사이 영감님의 벚꽃 잎이 좀 천천히 나리기를, 짧은 기도 보탠다.


그날의 성경 한 줄은 방탕히 지내다 돌아온 둘째아들을 위해 살찐 송아지로 식탁을 차린 아버지 얘기였다. 한 번도 집을 떠난 적 없는 성실한 큰아들이 조금은 볼멘소리로 묻는다. 왜 동생에게 이리 후하신 거냐고. 아들아, 너의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돌아온 것이다. 이 어찌 축하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아버지들 마음이 이토록 후덕하시니, 나는 다음 번 미사도 계절 하나 건너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울 아버지께는 조만간 냉동 말고 생도다리로 끓인 쑥국 한 번 대접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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