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로컬학교, 반 친구도 그대로 담임도 그대로
우리 가족이 중국 베이징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지 14년째. 네 돌, 세 돌 즈음의 연년생 두 딸을 데리고 베이징의 새 아파트에 들어섰던 기억이 선명한데, 그 아이들이 벌써 고 1, 중 3 이다.
조금 전 딸아이가 이번 주말의 친구 생일파티를 예고하던데.. 오늘은 아이들 이야기를 해볼까. 우리 아이들은 둘 다 집에서 가까운 중국 로컬 중고등학교에 다닌다. 굳이 ‘로컬’이란 말을 붙인 이유는, 이곳에 사는 대부분의 한국 아이들이 미국계나 영국계 국제학교 또는 한국 교과과정을 그대로 배울 수 있는 한국학교에 다니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처럼 중국학교에 다니는 한국 아이가 드물고, 혹 있더라도 외국 아이들을 위해 따로 운영하는 ‘국제부’ 과정을 수학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우리 아이들은 중국 아이들이 공부하는 로컬 반에서 유일한 외국인 학생이기도 하다.
두 딸아이는 유치원부터 초등학교와 중고등학교까지 중국 로컬학교에 다니고 있는데, 심사숙고해서 내린 결정이었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정말 걱정이 많았다. 초등학교 입학은 아이에게나 부모에게나 새로운 세상으로 나아가는 어려운 관문인데, 거기에 더해 단지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불필요한 오해나 차별을 겪게 되지 않을까.. 혹시나 적응과정에서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초등 저학년까지는 가슴 졸이고 긴장하며 학교생활을 챙겼었다. 시간이 이만큼 흘러 큰아이가 고등학교에 다니는 지금은, 가끔 중국학교 어떠냐고 물어오는 사람들에게 나는 웃으면서 이렇게 말하곤 한다. “사람 사는 데는 다 비슷하잖아요, 여기도 사람 사는 데구요~” 기본적으로 아이들은 선하고 아이 키우는 엄마들은 호의적이며 선생님들도 무난하다.
‘어딜 가나’ 언행이 거친 아이들은 있고 자기 자식만 챙기는 이기적인 부모도 있으며 완고하고 괴팍한 선생님도 있다는 걸 감안하면, 애초 걱정했던 바와 달리 별 탈 없이 잘 지내왔고 앞으로도 그럴 거라고 생각한다. 베이징 학교들에서도 따돌림이나 학교폭력 문제가 꽤 심각하게 불거지고 있기 때문에 섣불리 일반화할 수 없지만, 일부 사례가 전체를 대변하진 않듯이 지금까지 우리 아이들의 학교생활은 평탄했고 전반적으로 평가한다면 ‘좋아요’에 가깝다.
하지만 나 역시 처음에는 중국학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걱정 보따리를 이고 지고 있었는데, 지금까지 우리 딸들도 그렇고 학교 엄마들 사이에 오가는 정보에서도 반 친구들 사이의 괴롭힘이나 따돌림 같은 이야기는 거의 들어본 적이 없다.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는 아직 어리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는데, 슬슬 눈빛이 달라지는 초등학교 고학년을 거쳐 중고등학생이 된 지금도 분위기는 별반 다르지 않다. 물론 친구들끼리 소소한 다툼도 있고 남자아이들의 경우 몸싸움까지 가는 경우도 있지만, 담임선생님이나 학교에서 문제를 삼을 만한 큰 일들은 없었다는 거다.
나는 이런 평온한 학교생활이 가능한 것이 초등학교 6년 내내, 중고등학교 3년 내내 반이 바뀌지 않는 학제 덕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중국학교는 입학할 때 반이 정해지면 졸업할 때까지 그 친구들 그대로 같은 반에서 쭈욱 생활하게 된다. 담임선생님은 초등학교의 경우 저학년과 고학년으로 나누어 1~3학년까지 한 분, 4~6학년까지 한 분이 3년 연속 담임을 맡는다. 중고등학교에서는 3년 내내 담임이 같다. 담임의 경우 간혹 임신, 출산 등 선생님 개인 사정에 의해 비정기적으로 바뀌기도 하지만, 반이 바뀌는 경우는 없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멋모르고 만난 코흘리개 친구들이 6년을 한 교실에서 함께 지내다 보니 다툼이 생기더라도 서로 말리고 챙기고 해서 크게 번지지 않는 분위기였달까. 우리 아이들 표현을 빌리면, ‘놀기 싫은 친구는 있어도, 친구를 괴롭힐 이유는 없다’는 거였다. 그래도 중고등학생이 되면 상황이 좀 달라지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지금까지 학교 커뮤니티에서 왕따나 폭력 비슷한 얘기는 들려온 적이 없어서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다.
또 하나 보탬이 되는 것은 담임과 학부모들 간의 일상 공유가 자유롭다는 점이다. 학부모회의는 기껏해야 한 학기에 한두 번 있지만, 우리 반 SNS 단톡방을 통해 담임선생님이 학교 행사와 아이들의 학교생활에 대해 수시로 사진과 의견을 올리고, 학부모들은 아이의 건강 상태나 숙제, 심지어 빠뜨린 준비물 전달까지 스스럼없이 이야기한다. 같은 반 학부모들이 모바일 결제로 SNS 상에서 돈을 모아 교실에 공기청정기를 놓기도 하고, 학과 준비물이나 문제집 등을 공동 구매하기도 한다. 방학이나 연휴 때가 되면 단톡방에 “수영장 같이 갈 사람 손들어~”, “스케이트 타러 갈 사람~” 하는 메시지가 뜨곤 한다. 큰아이의 경우 고등학생이 되고서는 이런 시시콜콜한 메시지가 뜸해서 단톡방이 조용한 편이다.
이렇게 몇 년을 함께 지내다 보니 아이들끼리도 반 친구 중에(보통 한 반에 35명 내외) 안 친한 아이가 없을 정도로 두루두루 서로를 잘 알게 되고, 담임과 학부모들도 매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SNS를 통해 자유롭게 소통하다 보니 학교의 문턱이 느껴지지 않을 정도랄까. 이런 분위기 덕분에 친구들 간에 왕따나 폭력과 같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여지가 적은 게 아닐까 싶다. 3년 연속 담임제의 경우는 아이가 좋아하면 3년이 행복하고 그렇지 않으면 3년이 힘들 수도 있기에 저어되긴 하지만, 어떤 선생님이든 ‘아이를 파악하는 충분한 시간’인 것은 맞다.
그리고 두 딸아이를 로컬 초중고에 보내본 짧은 식견으로는 중국학교 학생들 사이에는 서로 비교하고 편가르는 문화가 거의 없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에 따르면 집안의 경제적인 수준이나 부모의 직업, 이혼과 재혼 여부, 이복형제 등 친구의 가정사는 그저 개인 신상 정보일 뿐 교우관계에 별다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한다. 한참 예민한 사춘기를 지나면서도 왜소하거나 뚱뚱한 친구들에 대한 외모 비하도 거의 없고, 유난히 소심하고 조용한 친구가 있더라도 괴롭힘이나 강압의 대상으로 삼지 않고 ‘쟤는 그렇구나’ 하고 인정해주는 분위기라고.
우리 아이들도 지난 10년 동안 반에서 유일한 외국인 학생으로 지내오고 있지만 지금까지 외국인이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서 마음고생한 일은 없었다. 그리고 같은 반이나 같은 학년에서 친구들 사이의 심각한 왕따나 폭력에 관한 이슈가 있었던 적도 없었다. 한 반에서 각자 코드가 잘 맞는 친구들끼리는 좀 더 각별해지고 개성이 다른 친구는 또 그대로 인정하는, 그런 교우관계가 지극히 자연스럽게 이루어져 왔다.
물론 앞서 이야기한 대로 우리 아이들이 다닌 학교 사례로 베이징 전체를 보편화시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입학부터 졸업까지 같은 반’ 제도는 우리 경험에 비추어보면, 아이들이 오랜 시간 서로에게 물들어가며 서로를 이해하고 인정하는 '관계의 훈련’으로 보인다. 이런 훈련 덕분에 특정 친구를 이유 없이 괴롭히거나 따돌리는 행위 자체가 친구들 사이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분위기가 형성되는 것이다. 입학 후 반이 정해지면 좋든 싫든 졸업할 때까지 오랜 기간을 함께 지내게 되므로 담임선생님과 학생들 사이에 ‘우리 반’이라는 끈끈한 연대감이 보이지 않게 작용하는 것 같기도 하다. 무엇보다 아이들 스스로 너무 과격한 부딪힘을 만들지 않고 서로 도우며 긴장 관계를 조절해나간다는 것, 그 점이 돋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