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수시절에피소드#16
다음 글은 어찌어찌하다가 수능을 세 번 보았던 내 청춘의 이야기다. 성공담이라기보다는 실패담 혹은 에피소드에 가깝다.
찌질했던 삼수시절.
재수학원에 등록한 뒤 한달 째가 됐을까.
봄이라 마음은 싱숭생숭했고, 별의별 여자가 다 예뻐보였다.
미의 기준도 조금 바뀌었다.
하나, 솔선수범해서 칠판을 지우는 한 여학생의 싸가지 있는 행동이 그렇게 이뻐보였다.
둘, 긴 생머리를 늘어뜨리고 공부하는 여학생의 뒷모습이 그렇게 이뻐보였다.
셋, 츄리닝을 입고 쓰레바를 찍찍 거리고, 화장도 안하고 생얼로 문을 열고 들어오던 한 여학생. 이뻐보였다.
드라마속 예쁜 여주인공이 아닌 저런 모습도 이쁠 수 있구나.
여자 많은 대학캠퍼스에 있다가 교실이라는 감옥에 다시 한번 갇혀서 그런가.
이유는 모른다.
잘록한 허리, 큰 가슴, 예쁜 얼굴 등을 고루 갖춰야 이쁜 게 아니었다.
하나 둘 부족해도 충분히 아름다울 수 있었다.
새로운 미의 기준에 눈을 떴다고나 할까.
그래서 봄에 공부가 안됐다. 핑계인가. 크크크.
당시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하라는 재수, 삼수 선배들의 금언을 헌신짝처럼 내다버렸다.
여학생들의 꾸미지 않는 모습을 보고도 내 몸과 마음은 반응하고 있었으니..
나는 여자를 정녕 돌로 볼 수 없었다.
그렇게 봄을 보냈다.
여자 보기를 돌같이 할 수 있는 것은 이 세상에 진짜 '돌'밖에 없지 않은가.
아니지. 그건 또 모르지. 크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