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작업(연극치료)
“여러분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내가 학생들에게 자주 묻는 질문이다. 아이들은 떠오르는 사람이 많은 지 난처하다는 표정을 짓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소중한 이름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기도 한다. ‘아닌데요, 전 엄마가 젤 소중해요.’라고 말하는 아이(특히 저학년에서 많이)도 많다. 그럼에도 나는 ‘선생님은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렇다, 나는 자기 사랑 예찬론자다. (물론 나르시시즘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이기주의에 빠지지 않으려고 한다.) ‘나를 먼저 사랑하자.’는 뻔한 말을 이해하기까지 나는 많은 길을 돌아왔다. 그래서 내가 만나는 아이들에게 내 경험과 태도를 더 알려주고 싶은지도 모르겠다.
두 번째 담임을 맡았을 때였다. 그동안 학급경영, 수업, 놀이 등 많은 연수에 참여해서 나름 여러 기술도 배웠겠다, 첫 해보다는 잘해야지 싶었다. 하지만 쉽지 않았다. 매일같이 터지는 크고 작은 아이들 간의 다툼, 보호자의 전화, 익숙하지 않은 업무…. 무엇보다 내가 봐도 학년에서 우리 반이 제일 소란스러운 것 같았다. (그렇다고 누가 가타부타 말한 것도 아니다.) 나와 우리 반을 바라보는 동료와 관리자의 시선에 괜히 위축되었다. ‘고생이 많아’란 스치는 걱정이나 위로의 말도 듣고 싶지 않았다. 정확히는 그 말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여유가 없었다.
학년 부장님께 내일 수업에 대해서 질문을 하던 중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동학년 선배 한 분이 내게 “자기는 지금 수업 신경 쓸 때가 아니지 않아?”라고 물었다. 흔히들 행간을 읽으라고 한다. 그럼 나는 뭐에 신경을 써야 한다는 말인가? 선배의 답은 나도 알고 있었다. 수업연구 이전에 교실 분위기가 잡혀야 한다는 것을. 그러니까 좀 더 쎄게 말하면 애들 관리부터 하라는 말이었다. 순간 지금 내가 수업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쓸데없는 짓처럼 보이나 싶었다. 나는 얼굴이 달아올랐다.
그 선배가 나에게 상처를 줄 의도는 없었을 것이다. 나를 걱정했던 마음에서 나온 조언이거나 별 뜻 없이 내뱉은 말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의중이 어떻든 간에 그 자리에서 나는 상처를 받았다. 그리고 그 말은 저에겐 상처예요,라고 전할 생각도 하지 못했다. 대신 곱씹으면서 스스로 상처를 더 키워나갔다.
무심코 건드려진 작은 상처가 커지고 커지다 너무 아팠나 보다. 문득 나 역시 빌미를 제공했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래 방치된 음식에 벌레가 꼬이는 것처럼 나 자신을 돌보지 않은 것이다. 누가 뭐라 하든 나는 내편이었어야 했는데…. 열심히 해보려고 애쓰던 나를 내가 먼저 초라하게 바라봤던 것 같아 미안해졌다.
당시 나는 한 달에 한 번 연극치료 선생님을 만나서 상담을 받고 있었다.
“날파리들이 꼬이지 않게 나를 지키고 싶어요.”라는 내 말을 듣자, 연극선생님은 과제를 냈다. 그날 공원 벤치에 앉아서 지금까지 나를 위해 했던 행동들을 하나씩 종이에 적었다.
(1) 저녁에 일기를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한 것
(2) 내가 좋아하는 특별한 이벤트를 선물한 것 (야구장, 공연장, 여행, 친구와 만남 등)
(3) 내가 믿을 수 있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한 것
(4)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지런히 찾아다닌 것 (연극치료 선생님과 작업, 병원에서 상담, 운동으로 체력 키우기, 동료들에게 묻고 조언 구하기 등)
떠올리기만 했을 뿐인데도 미소가 번졌다. 각 항목을 나타내는 간단한 그림도 그렸다. 본격적인 작업에서는 각 항목별로 정지동작을 만들었다. 몸으로 말해요처럼 표현하고 사진도 찍었다. 그렇게 종이에 적고, 몸을 쓰고, 사진을 남겼다. 아직도 그날의 작업이 생생하게 남아있다.
작업을 마치고, 연극치교 선생님은 일상에서 하는 모든 행동도 나를 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꼭 두 번째 항목으로 적었던 특별한 장소나 상황이 아니더라도 말이다. 내가 먹은 그릇을 설거지하고, 베고 눕는 이부자리를 정돈하고, 집을 청소하는 것도 나를 지키는 행동이었다.
그날의 작업이 요술을 부려서 한 번에 나를 다른 사람으로 바꿔주진 않았다. 때때로 방전된 나를 충전하려면 반짝거리고 비싼 약도 필요했다. 하지만 나를 지키기로 했던 약속들은 내 일상에 쌓여갔다. 이후 배달음식을 줄이고 음식을 해 먹기 시작했다. 나를 즐겁게 하는 이벤트들도 더 찾아보았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일터와 일상을 분리하려고 했다. 학교에서의 일을 집에까지 가져오지 않도록 일부러 USB는 책상 위에 두고 퇴근했다. 그렇게 나를 소중하게 여기고 시작하는 작은 행동들은 서서히 그리고 촘촘하게 나만의 습관으로 자리했다. 그 꾸준하고 단단한 하루가 모이면서 어느 순간에 내 눈빛도 생기를 잔뜩 머금은 것 같았다.
그렇게 내가 먼저 나를 소중하게 대해줘야 주변에서도 나를 존중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대할 때도 내 기분과 욕구부터 들여다보려고 했다. 필요하다면 그때그때 표현하려고 했다. 때로는 경계도 세웠다.
상처를 받지 않고 살 수는 없는 것 같다. 상대가 의도했건 안 했건 받기도 했다. 그리고 유독 내게 크게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구태여 스스로 생채기를 내면서 덧내지 않으려고 한다. 받고 싶지 않은 위로에는 속으로 ‘그냥 신경 꺼주세요.’라고 말한다. 요즘은 조금 더 우아하고 세련되게 ‘삐, 선 넘으셨어요.’를 전달하고 싶다. (이렇게 생각하다 보면 언젠간 또 되는 날이 오겠지.)
그렇다고 나만 지키자, 나만 괜찮으면 된다는 건 아니다. 나를 소중하게 지키면, 다른 이도 소중하게 바라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내가 했던 성취만이 아니라 나의 좌절과 실패에도 좀 더 너그럽게 봐주는 것. 필요하다면 애틋하게 바라봐주는 것. 이렇게 '나를 지키는 약속'은 작은 행동과 태도부터 시작이라는 걸 경험해 보고 이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