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나를 기억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그게 내 목표야."
몇 해 전에 H선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그녀와 나는 가끔 출근길 지하철 역에서 만났다. 언덕 위에 있던 학교를 오르면서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선배의 말은 더 이어졌다.
“보통 기억되는 선생님은 최악이거나 아주 좋은 선생님이잖아. 아이들 기억 속에 지독하게 나쁘지 않게. 그렇다고 좋은 선생님을 위해 내가 너무 애쓰면... 이 일이 힘들다는 걸 아니까. 그 선을 지키고 싶어.”
내 눈에 비친 H선배는 베테랑이었다. 학급관리도 잘했고 원칙을 지키면서도 따뜻했다. 충분히 좋은 교사였는데 왜 그런 말을 했을까? 겸손의 표현이었을까? 이런 의문 때문인지 선배의 말이 오래 기억에 남았던 것 같다.
누군가의 기억에 남는다는 건, 그것도 좋은 기억이 된다는 건 내 욕심일 수도 있겠다. 나만 봐도 학창 시절 기억하는 교사는 소위 나쁜 선생이다. 중학교 동창들과 만나면, 이름만 들어도 치가 떨린다, 그때 인격모독을 당했다, 쪽지시험 보고 손바닥 맞는 게 싫었다, 등의 토로를 여전히 한다. 수많은 선생님을 지나왔지만, 안 좋은 인상을 남긴 몇 명만 또렷하다. 대다수 선생님들은 이제 밋밋하기만 하다. 그저 몇 년도, 몇 학년 몇 반이라는 숫자. 그마저도 희미하게 남았다.
처음 교단에 서면서 나는 아이들에게 어떤 선생님으로 기억되고 싶었던가?
실은 이런 고민할 겨를도 없이 시간이 흘렀다. 나중에 누가 날 기억하든 안 하든, 어떻게 기억이 되든 자시고, 그냥 다음 날 수업 걱정하며 하루하루 살았다.
아이들에게 적어도 너무 나쁘게 기억되지는 않도록, 그 이유가 누구의 인정 때문이 아니라
자신 안에 떳떳하지 않은 건 남기지 않으려고,
내 일안에서 최선을 다했던 것뿐이라는.
누군가 좋게 기억해 준다면 고맙고,
나를 잊었으면 그 역시 당연한 거라고.
H선배의 말은 그런 뜻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