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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Apr 11. 2021

1장.해외살이로망

죽기 전에 많이 후회될 것 같아.

 나에겐 해마다 하나씩 쓰는 수첩이 있다. 주로 플래너 기능으로 쓰고, 가끔은 책에서 본 감동적인 문구나 갑자기 얻은 깨달음 같은 것들도 적기도 한다. 지금도 그 수첩들을 모두 가지고 있어서 심심할 때 열어보곤 하는데 신년 계획엔 항상 같은 것 세 가지가 적혀 있었다. 매년 같은 신년 계획이 적혀 있었단 것이 무얼 뜻하는지는 너무 뻔하니 굳이 말하지 않겠다. 첫째는 운전, 둘째는 수영, 셋째는 영어였다. 그런데 매년 이루지 못한 그 계획들을 적은 그 지면에 적을 수 없었던 또 다른 오랜 소망이 있었다. 그것은 해외살이였다. 난 그 흔한 어학연수도 다녀온 적이 없었는데 내 주변엔 외국에서 살고 있는 친구들이 제법 있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부러웠던 것 같다. 그러나 용기는 없었던 것 같다. 그건 내 것이 아니라고 이미 단정 짓고 감히 꿈 조차 꾸지 못했던 꿈이었다.     

 

 그러던 내가 ‘죽을 때 후회할 것 같은 것은?’이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였다. 정말 뜬금없이, 생각지도 못하게 내가 죽는 순간에 해외에 나가서 살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이상하리만큼 확실하게 들었다. 오래 살 생각은 없었고, 딱 5년만 살아보자 하고 결심했던 해에 시가 식구들이 호주로 여행을 다녀오셨다. 시어머니는 호주에서 찍은 사진들을 텔레비전 화면으로 크게 보여주시면서 뉴질랜드에 대한 얘기를 더 많이 하셨다. 이유는 호주 여행지에서의 한국인 가이드가 뉴질랜드 이민자였기 때문에 여행 내내 뉴질랜드 살이에 대해 얘기했던 것이다.  몇 백장의 사진을 다 보여주시고 난 후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30년만 젊었어도 가서 살고 싶더라. 뉴질랜드.”

 

 그로부터 일주일  아이들과 집에서 복작거리다가 남편과 눈이 마주쳤는데 나도 모르게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우리 갈래뉴질랜드?”

그럴까?” 그에 대한 남편의 대답이  예상치도 못했다당시 나는 10년을 근무했던 회계법인을 퇴사하고 1 넘게 아이 둘을 돌보며 전업주부로 살아보고 있는 중이었고남편은 창업을   2 정도 되었을 때였다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회계법인 퇴사와 뉴질랜드행 결심의 시초는 친구가 빌려줬던  ‘심플하게 산다이었던  같다월급의 절반은 대출금 이자로  절반은 물건을 구입하는  쓰느라 저축한 돈이 하나도 없었던 바로  흔한 월급 노예였다 책을 읽은  자칭 미니멀리스트로 선언하고 내가 지고 살고 있었던 짐들을 절반으로 줄였다여기에서  가지 아이러니는 남편이 창업한 아이템이 물건을 보관해주는 서비스였다는 것이다나는  짐을 다른 곳에 보관하는 것이 아닌 처분하는 것으로 줄여나갔다팔기도 하고기부하기도 하고버리기도 했다

 

  일은  달이 꼬박 걸렸으며이것으로 내가 얻은 것은 이랬다첫째버리는 것이 참으로 어렵다는 것을 알게  둘째버리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어서   신중하게  셋째그동안 내가 힘들게  돈으로 쓰레기를  모았구나 라고 깨닫게  넷째많이 사지 않는다면많이 벌지 않아도 되겠구나 라고 느낀 여기까지 이른 나는 남편 외벌이로 살아볼  있겠다는 용기를 갖게 되었다나는 퇴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육아와 일의 병행이 내겐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퇴사를   없었던 이유들을 해결할 방도들을 찾기 시작했고생각보다 쉽게빠르게 해결되어 갔다

 

 가장  장벽으로 생각했던 것은 대출금 이자였다이에 대한 해결책은 대출금을 갚는 것이었다무슨 돈으로우선 가장 쉬운  내가 입사 초기  무분별하게 들어놨던 저축성 보험들을 모두 해지하기로  것이었다그로 인한 목돈이  되었고 나에게는 퇴직금도 있을 터였다그리고 무리해서 가지고 있었던      채를 매각하기로 하였다이로써 대출금은 모두 해결할  있었다

 

  번째 장벽은 사회적 시선이었다좁게는 가족들의 나를 향한 기대를 저버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고넓게는 고작 아이 하나 육아와 일의 병행이 힘들다고 일을 포기하는 여자로 보일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나는  문제를 정정당당하게 해결하지는 못했다 사회적 시선을 정면으로 돌파할 용기까지는 없었다그래서 선택한 것은 둘째 아이 갖기였다아이  가진 엄마가 퇴사를 한다고 하면 가엾이 여겨 이해해주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이런 생각을 했던 나는 페미니스트는  아니었던가 보다아이가 하나만 있더라도 퇴사를 선택하는 이들이나 아이가 있더라도 가정이나 직장에서 배려받으며 또는 당당히 배려를 요구하며 일에서도 능력을 발휘하고자 하는 이들도 물론 나는 지지한다다만 내가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다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다아무튼 둘째 아이를 방패막이 삼은 것이 미안한 마음은 들지만사실 둘째를 가지고는 싶었다그러나  상황에서 둘째를 갖는다는 것은 해외살이처럼 요원한 꿈이었을 뿐이다나는 퇴사일을 정하고 그에 맞춰 둘째 아이 갖기 플랜도 진행하였다정말 감사하게도 임신과 퇴사를 동시에   있었다

 

 내가 퇴사를 선언했을  모두가 나다운 결정이라고 했다그러면서도 어떤 이는 이제 나는 경력단절녀가  거라며다시는 복직하지 못할 수도 있음을 경고하기도 했다나는 너무 멀리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나중 일은  모르겠고 우선아이들과  지내기로 했다그리고 퇴사  2년이 되었을  나중 일은  모르겠고 일단뉴질랜드에서 살아보기로 했다그때도 친구들은 내가 나다운 결정을 했다고 말했지만 나는  ‘심플하게 산다 우연을 가장한 운명처럼 나를  나라로 이끌었다고 믿고 있다.  안녕뉴질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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