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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Apr 11. 2021

12장. 나는 왜 이곳에 왔을까?

이제야 철 좀 들었습니다.

 뉴질랜드에 와서 가장 좋은  뭐냐고 묻는다면마당에 널어놓은 빨래를 보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바람이 많아 구름도 빠르게 흘러가고덕분에 빨래도 반나절이면  마른다이유는 몰라도 빨래는 내가 집안일  가장 좋아하는 일이고바람에  말라 바람 냄새 품은 빨래를 개면 마음도 정화되는 기분이 든다.  무지개를 흔하게   있는 것도마당에 숨어 다니는 작고 귀여운 도마뱀이나 산책 길에 마주치는 겁먹은 고슴도치나 지렁이를 뽑아 먹는 새를 목격하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다

 

 뉴질랜드에 와서 좋은 점이 하나  있다소중한 것들을 깨닫게  것이다가장  것으로는 가족의 소중함이다나는 이제 ‘엄마라는 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난다가끔은 장난처럼 아이들 앞에서 ‘나도 엄마 보고 싶어.’라고 소리쳐 보이기도 한다하지만 진심이다동생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 벌써 돌이 지났는데도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애절하다나의 유일한 직계인 엄마와 동생은 내게 아리랑 가락을 생각나게 한다놀라운 것은 내가 엄마와 동생과의 사이가 원래부터 사랑이 넘쳐나고 끈끈한 정이 있고 그랬던 것은 아니다모든 잘못된 심리의 원인이라 일컬어지는 ‘엄마와의 불안정한 애착 형성 나에게도 있다고 기억에도 없지만 나는 엄마와 애착 단계에서 뭔가 잘못되어 엄마가 불편하다고 믿어 왔다그런 엄마와  동생은 각별하다따라서 동생이 미웠다나에게 유일한 가족 둘이 살갑지만은 않아서  외로웠었다 아이를 안아주는 모습을  작은 아이가 토라져서 말했다

엄마는 나를  안아줘누나만 안아주고.”

그럴 리가 없었다 아이와   터울 나는 작은 아이는  눈엔 아직 아기 같아서  많이 안아주고 애정 표현도  많이 하고 있었다나의 진심이나 객관적인 사실을 떠나  아이가 그렇게 생각한다면  아이에게는 그것이 사실이 되고 만다나도 그랬을 거다나의 엄마와 상관없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하고 사실이라 단정했을 것이다가족을 향한  추상적이고 느낌적으로 외로웠던 것이 이제는 구체적인 외로움이 되어 표면에 드러나자 표현되지 않고 있었지만 바탕에는 흐르고 있던 사랑이 전해지는 듯했다 줄기 조차도 그건 사랑이라고 놓치고 싶지 않다는  붙잡고 있는 내가 보였고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공간적으로물리적으로 장애를 앞에 두고 있기 때문인  같다나는  곳에서 와서야 엄마와 동생에 대한 나의 사랑을 깨달았던 것이다.


 소중한 것에 대한 또 다른 깨달음은 옛 직장에 관한 것이다. 취업 과정에서 얻은 상처는 옛 직장 상사들과 동료들에 대한 고마움으로 전이되었다. 너무 오랫동안 퇴사할 날을 꿈꾸며 일했던 곳에서 드디어 방전이 되어 도망치듯이 그곳을 나왔던 나는 속이 너무도 후련하여 회사에 대한 기억은 일절 하지 않기로 했었다. 10년간 가르쳐 주신 분들께 제대로 인사도 안 하고 나온 것이다. 신이 있다면 고난은 괜히 주시는 게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옛 직장에서 눈물이 날 정도로 큰 배려를 받고 있었음을 그제야 깨달았던 것이다. 그렇게 고마운 줄 몰랐던 나는 너무도 뒤늦게 옛 직장 상사와 동료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간 안부를 주고받은 끝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마음이 따뜻해졌다. 심지어 나에게 고난의 십자가 같았던 그 나쁜 사장님도 용서가 되었다. 이제 와서 보니 처음부터 끝까지 감사할 것 투성이었다.  

 

 어느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말했다

나는 수학은  하지만 아이디어 내는   못해그런데 알레이나는 재미있는 아이디어는  내는데 수학은 내가 도와줘야 .”

마침  아이와 함께 비룡소에서 나온 ‘ 학교에 가야 하나요?’라는 책을 읽던 중이었다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있었던 이유는 아이가 학교를 다니기 싫어해서가 아니라 학교의 기능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다는 순수한 동기 때문이다  초등학교는 이렇다  교사의 학습 지도 과정이 없다심지어 개별 수업 시간에 아이가 수학 풀다가 모르는 것을 물으니 그런  집에 가서 물어보라고 했다고 한다그렇기에 학교에 공부하러 간다는  말이  된다나도 공부 자체는 혼자서 하는 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학교를 작은 사회라고 부른다그리고 학교는 사회에 나가기  연습하는 곳이라고 말이다규칙을  지키고선생님의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사회화라는 것일까그런 생각의 늪에 빠져 있을   아이가 불쑥했던 말인 것이다그제야 나는 답을 찾았다사회화된다는 것은 서로 다름을 알게 된다는 것이구나서로 다르다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 학교를 다니는 거구나내가 너와 다르다는  점이 나를 존재하게 하고너를 존재하게 한다.   사는가 하는 자문에 대한 답을 얻지 못해 허무함에 빠졌다가 헤어 나오기를 반복했던  고질병에서 벗어나게  바로  날이었다.  

 

 나는  이곳에 왔을까나라는 사람은 어렵지 않으면 재미가 없는 사람이다 쉬워도 힘든 일이 있다재미가 없으면 그렇다나는  관점에서 최고 난이도의 삶을 살기 위해  곳에  것일까위의 학교의 기능 측면에서 따져보자나는  곳에서 생각지도 못한 다른 사람들을 보았고나와 전혀 다른 삶들에 대해서 들었다한마디로 말해 나에게  곳은 파격이었다나는  곳에서 나를 제대로 보았다다른 사람의 다른 것들을 인정하지 않아서 나의 정체성도 흐려져 있었던 것이다그러니 이제 다른 것들도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다른 것들이 있어서 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하자멀리  것도 없이 남편과의 관계가 삐걱거리는 원인도 다름을 인정하지 못해서 아니었던가 곳은 나에게 학교인 모양이다 모든 것들을 고려했을  나는 이곳에 와야만 했던 것이다. 이렇게 큰 걸 얻었으니 이제는 뉴질랜드와 이별해도 괜찮을 것 같다. 안녕, 뉴질랜드.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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