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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Apr 11. 2021

부록; 뉴질랜드의 교육 시스템

보고, 듣고, 주워 들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나는 큰 아이 학교의 모든 선생님들에게 감사한다. 큰 아이의 학교는 한 학년에 한 반뿐인 작은 학교 (뉴질랜드의 많은 학교들이 그렇다고 들었다.)라서 교장 선생님을 포함한 모든 선생님과 전교생이 우리 아이 이름을 알고, 우리 가족의 얼굴을 다 안다. 그리고 큰 아이가 입학한 날부터 매일 일대일로 영어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들어가면 영어 과외 수업을 배정받게 된다)를 가르쳐주셨던 이솔 (ESOL) 선생님은 할머니 선생님이셨는데 영어만 가르쳐주신 게 아니라 학교 생활 적응하는데 많은 도움과 사랑을 주신 따뜻하고 고마운 분이었고, 학교에서 마주칠 때마다 내 남편의 안부와 나의 초보 운전에 대한 응원과 그리고 나의 취업 도전에 대한 격려를 잊지 않았다. 

 

 한국 나이로 열 살이 된 큰 아이는 금요일 저녁 식사를 할 때부터 월요일을 기다린다. 이유는 학교에 가고 싶어서다. 큰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학교는 준수하고 있는 교과과정이 없는 듯하다. 사회생활을 할 때 필요한 일반적인 규칙 외에는 다른 게 없다. 1교시엔 수학, 2교시엔 영어. 이런 식의 시간표도 없고, 교과목도 없다. ‘오늘은 읽기 짝꿍이랑 책을 읽었어.’ 라거나 ‘내일은 과학 실험을 할 거래’라는 식의 그때그때 선생님의 계획에 따른 시간표로 운영되는 듯 보인다. 따라서 선생님의 성향과 취향이 학교 생활에 영향을 많이 주는데 2학년 (Year2) 때 담임 선생님은 나이 드신 두 분이 요일을 분담하여 맡고 계셨는데 한 분은 문학에 관심이 많은 선생님이셔서 큰 아이가 집에 와서 그 선생님에 관해 이야기하는 대부분의 것은 책과 관련된 것이었다. 우리 집엔 로저 하그리브스의  ‘행복씨’, ‘재주넘기양’ 등의 시리즈가 두 아이에게 사랑을 받으며 몇 년째 한 자리 차지하고 수 백 번째 읽어주고 있는데 그 선생님은 그 시리즈와 여행을 좋아해서 여행을 갈 때마다 그 나라의 언어로 된 그 시리즈 중 한 권을 사 모으는 취미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큰 아이는 그 이야기를 나에게 전해주면서 그 선생님과 자신의 공통 관심사에 대하여 흥분했다. 

 

 또 다른 담임 선생님은 수녀이자 교사였는데 딱딱함과 따뜻함을 동시에 가진 묘한 분이었다. 그 선생님은 수학의 기초를 다지는 데 중점을 두고 있어서 수학을 좋아하는 우리 아이가 성취감을 맛볼 수 있는 기회가 많았기 때문에 나에게도 만족스러운 한 해였다. 그리고 작년 담임 선생님은 아주 젊은 선생님으로서 미디어를 적극 활용하는 분이었다. 예를 들어, 이 선생님은 레고를 아주 좋아해서 레고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레고 주간을 만들어 수업 시간에 아이들과 레고 무비를 본 후 그 주 내내 팀을 나누어 계획을 짜고, 역할을 분담하고 정해진 시간 안에 레고 시티를 건설하는 데 시간과 열정을 쏟았다. 이 즈음 큰 아이의 관심사는 온통 레고뿐이었다. 가족 영화 시간에도 큰 아이의 추천으로 함께 레고 무비를 보았는데 단순한 애들 영화가 아니라 어른인 나에게도 경종을 울릴 만큼 철학적인 메시지를 담고 있었기에 그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레고 무비를 선택하여 단체 관람했던 것이 충분히 이해되었다. 게다가 특이하게도 이 선생님은 스쿼시 현역 선수로서 대내외적으로 활약 중이기도 하다. 이러한 교사 개인의 특성이 아이들에게 고스란히 전달되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이가 학교를 좋아할 수밖에 없어 보인다.

 

 둘째 아이가 만 3세 (뉴질랜드의 시민뿐 아니라 일시 거주하거나 여행자라고 하더라도 만 3세 이상의 어린이는 일주일 20시간을 무료로 어린이집에 다닐 수 있다.)가 되면서 다녔던 어린이집의 선생님들 역시 친절하고 따뜻했다. 내가 다녔던 학교 내 어린이집에 자리가 없어서 근처 다른 자리가 있는 곳으로 간 곳이었기에 우연히 그런 친절한 선생님들이 있는 어린이집을 만난 것이 아니라 뉴질랜드의 대부분의 어린이집이 그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뉴질랜드의 어린이집은 보호자가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러 갈 때 교실 안까지 들어가야 하고, 원하는 만큼 그 교실에서 머물 수도 있다. 

 

 둘째 아이가 처음 적응이 안되었을 때 아침에 갈 때마다 울었던 것과는 달리 나중에는 데리러 가면 집에 안 가려고 해서 이 삼십 분씩 더 있다가 오는 바람에 어린이집 분위기를 지켜볼 기회가 많았는데 그곳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놀이방이다. 그 어떤 프로그램도 없기 때문에 선생님들은 그날그날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놀잇감들을 여기저기 흩어놔 주고 아이들은 흥미가 가는 데로 가서 자리 잡는다. 또는 교실보다 더 큰 바깥 놀이터에 있는 모래 놀이장, 물 놀이장, 자전거 길, 그리고 여기저기 나무둥치들과 바위들 위에서 놀거나 진짜 나무 몇 그루로부터 떨어진 나뭇잎을 가지고 놀거나 거기에서 나왔을 벌레를 관찰하려 모여있기도 했다. 

 

 상시 인원 다섯 명 정도의 선생님들의 역할은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노는 가운데 갈등이 생기는 경우 중재하거나, 옷이 젖은 아이의 옷을 갈아 입혀주거나, 다쳤다고 오는 아이에게 반창고를 붙여주거나, 간식과 점심을 배급하는 일을 한다. 숫자나 알파벳도 제법 배워왔다. 짧은 동영상을 시청하면서 나온 숫자나 알파벳을 이용하여 다양한 놀이들로 반복해서 배우고 있었다. 예를 들어 숫자와 블록을 연결시켜 레고로 그 날 동영상에서 배운 숫자들을 만들어보는 것이다. 선생님이 레고 테이블에서 그 숫자놀이를 하고 있으면 자연스레 아이들이 모여들어 따라 하고, 뒤늦게 오는 아이들은 먼젓번 아이들로부터 보고 배운다. 둘째 아이는 취학 전 가장 형님 반에 있었기 때문에 총 30명 정도의 꽤 많은 어린이들이 한 반이었지만 교실도 크고 놀이터도 컸기 때문에 아이는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노는 모양이었다. 

 

 만 5세가 되는 생일이 되면 초등학교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둘째 아이는 생일이 2021년 1월 즈음인 아이들과 함께 어린이집을 졸업하였다. 뉴질랜드에서는 마오리 전통을 문득 여기저기에 느낄 수가 있는데 나의 대학 과정 졸업식 장에서도 보았던 마오리 전통 의상인 '카후 후루후루'라는 가운을 내 둘째 아이도 걸친 채 졸업 사진을 찍었다. 만 5세가 되는 생일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학교에 들어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아이의 성장 발달이나 부모 또는 보호자의 사정에 따라 입학 시기를 늦출 수 있다. 길게는 1년 후에 보내는 가정도 본 적이 있다.

 

 자신의 생일 즈음에 입학해서 들어오기 때문에 학교에 거창한 입학식은 따로 없다. 다만 입학하기 전에 세 번의 학교 방문 찬스를 준다. 신입생 반으로 들어가 기존의 신입생들과 선생님들과 만남을 가져볼 수 있는 기회다. 둘째 아이는 누나가 이미 다니고 있는 학교라 매일 따라다녔으면서도 세 번 모두 나와 떨어질 때 울었다. 선생님들은 학교라고 해서 다르지 않았다. 어린이집 선생님들처럼 아이가 우니 안고 달래 주며 '엄마랑 안녕하자'라고 아이에게 속삭였다. 그렇게 초등학교 학생이 된 둘째 아이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잘 뛰어놀고 있다. 갓 만 5세가 된 신입생들이 수시 입학을 할 때마다 그 아이들의 이름을 내게 고하는 것을 보면 눈 뜨고, 귀 열고 잘 다니고 있는 듯하다.

 

 뉴질랜드는 다인종, 다민족의 국가로서 사는 지역에 따라 학교에 따라 보이는 인종이 많이 다르다. 끼리끼리 모인다고 해야 할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큰 도립병원 근처의 가톨릭 학교이다. 내가 사는 도시에서 남쪽 지역에 위치해 있다. 병원에는 필리핀 의료인이 많이 근무한다. 게다가 필리핀인들은 대다수가 가톨릭 신자이다. 이 도시의 남쪽은 인도인들이 많이 산다. 인도인들은 모두 힌두교나 불교 신자일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천주교 신자도 많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교는 이 모든 특성이 합산되어 40% 정도가 필리핀인, 40% 정도가 인도인, 10% 정도가 '파키하'라고 하는 유러피언 백인, 나머지 10% 정도는 마오리, 사모아, 통가, 브라질, 가나, 그리고 한국 (우리 아이 둘이 유일한 한국인이다)에 뿌리를 두고 있는 아이들이다. 이렇게 다양한 인종으로 이루어져 있어 해마다 열리는 문화의 밤 행사는 참으로 다채롭다.        

 

 아이들의 학교에서 보내면서 내가 느끼는 뉴질랜드 교육의 가장 큰 장점은 책에 대한 빈번한 노출이다. 작은 아이, 큰 아이 할 것 없이 읽기 수준에 따라 선생님이 고른 책 한 권씩을 매일 북백에 넣어온다. 일종의 숙제인데 그것이 유일하다. 큰 아이는 혼자 읽지만, 이제 막 알파벳을 떼고 단어를 배우기 시작한 작은 아이는 소리 내어 읽을 때 내가 옆에서 도와준다. 또 일주일에 한 번씩은 학교 도서관에서 자신이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오고 일주일 간 읽을 수 있다. 아마도 이 것이 유일한 루틴이 아닌가 싶다. 또한 더피 북이라는 이름의 이벤트가 있어 해마다 책 1권 또는 2권을 신청하여 가질 수 있다.   

 

 초등학교는 풀 프라이머리라고 하여 중학교 과정을 포함한 학교도 있고, 아닌 학교도 있다. 풀 프라이머리에 다닌다면 1학년부터 8학년까지 다닌 후 바로 5년제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만약 풀 프라이머리가 아닌 학교에 다닌다면 중간에 2년제 중학교에 진학하거나 아니면 중학교 과정이 포함된 7년제 고등학교에 갈 수도 있다. 따라서 옵션이 여러 가지 생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의 학교는 풀 프라이머리인데 가톨릭 신자들이 많기 때문에 가톨릭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를 원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경우에는 8학년까지 다니고 졸업 후에 선호하는 고등학교로 진학하지만, 만약 가고자 하는 고등학교에 중학교 과정이 포함된 경우에는 6학년만 마치고 전학을 가는 경우도 꽤 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학교에는 7학년과 8학년의 학생 수가 적어 합반을 하기도 한다. 

 

 듣기로는 고등학교부터 공부가 어려워진다고 한다. 특히 대학에 진학하고자 하는 학생들은 마지막 2년 간 정해진 학점을 이수하고 시험에 통과해야만 한다고 한다. 더러는 2년 과정을 1년 만에 마치고 조기 졸업하기도 하는데 대부분의 한국인 학생들은 조기 졸업을 한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뉴질랜드의 교육시스템은 비정형화되어 있고, 선택의 여지가 많다. 대학에 진학하는 학생 수가 절반을 조금 넘는다고 한다. 나머지는 고등학교 졸업 후 일을 시작하거나 일을 하면서 업무 특성에 따라 학위가 필요한 경우에만 대학을 간다. 내가 다녔던 대학에도 유학생을 제외한 내국인 학생들은 모두 직장이 있어서 파트타임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나이가 많은 아주머니나 아저씨도 많았다. 이들에게는 교육과정 전체에서 대학 공부의 난이도가 가장 높기 때문에 졸업을 하기가 매우 어렵다고 한다. 그래서 그렇게 졸업식이 울음바다였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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