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듣고, 주워 들어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의
둘째 아이가 아팠던 바람에 뉴질랜드의 병원 시스템도 경험한 바 있다. 만 4세를 앞둔 크리스마스 여름휴가 기간에 둘째 아이는 배가 아픈지 울면서 데굴데굴 굴렀다. 뉴질랜드 의료 시스템은 낙후되었다는 글도 어디서 보았고, 언어 장벽도 있고 해서 웬만하면 병원 행은 피하고 있었던 중이었다. 그러나 한국에서 둘째 아이가 장중첩증으로 응급 처치를 받았던 적이 있었기에 둘째 아이의 그 배 아파하는 모습이 어쩌면 그것과 똑같은 응급 상황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지체 없이 병원 응급실로 달려갔다.
웃으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먼저 인사를 건네 온 필리핀 남성 간호사를 통해 접수를 하고, 소아응급병동으로 안내받아 가서 인도 남성 간호사로부터 친절하고도 꼼꼼한 문진을 받고, TV가 있는 1인 응급실에서 기다리자 백인 여성 의사가 들어와 걱정스러움에 장황하고 서투른 우리의 이야기를 끝까지 다 들어주었다. 심지어 나는 그 의사 앞에서 초음파 검사를 해야 할 것 같다고 자가 처방까지 내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의사는 여전히 상냥한 말투로 우리 부부가 무엇을 어느 정도로 걱정하는지 이해하지만 아이에게 방사능 노출은 되도록 피해야 하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의 초음파 검사는 이르다고 타일렀다. 혹시 맹장염은 아닐까 하고 우려하는 부분은 자신의 판단으로는 아니지만 우리에게 안심을 주기 위해 맹장염 전문의를 불러서 확인시켜주겠다고 했다. 얼마 안 되어 맹장염 전문의가 왔고, 맹장염은 확실히 아니니 일단 집으로 돌아가서 상황을 지켜보라고 했다.
우리는 집으로 돌아와 다시 하룻밤을 보냈고, 둘째 아이의 배 아픈 증상은 사라지지 않았다. 우리 부부는 다시 병원에 가야 할까 조금 더 기다려야 할까를 두고 몇 백 번이나 고민했다. 아이는 주기적으로 극심하게 아파했고, 장중첩증이라는 진단이 한시라도 빨리 나와 시술을 통해 그 고통을 덜어 주고픈 마음이 컸다. 더 지켜만 볼 수는 없어 결국 다시 응급실로 갔는데 이번에는 처리 속도와 처치가 달랐다. 두 번째 방문은 이들을 빨라지게 만드는 모양이다. ‘장중첩증 의심했었지? 어제도 왔다 갔는데 그 사이 아이가 많이 힘들었겠다. 이제 초음파 찍어보자. 마침, 지금 시간이 비어있다고 하니 가자.’ 하며 오늘 응급실 당번 의사인 듯한 인도인 남성 의사가 초음파실을 향해 빠른 걸음으로 앞장섰다.
결국 장중첩증으로 진단되었고, 그 후로 모든 것이 빠르게 진행되어 우연히도 한국인 의사로부터 시술까지 무사히 받고 하루 입원을 하였다. 응급실에서도, 입원실에서도 간호사가 수시로 다녀 가며 아이의 기분을 맞춰 주기 위해 농담도 건네고, 아이스 바도 시시때때로 갖다 주곤 하였다. 퇴원하면서 어디로 가서 지불을 해야 하나 물었더니 일단 집으로 가면 나중에 편지로 청구서가 갈거라 했다. 우리는 시민권자도 아니고 영주권자도 아니어서 병원 수속 시 고작 비자 서류 제출한 것이 전부인데 후불제라니 그것도 귀가 후. 돈을 떼일지언정 우선 고치고 본다는 원칙인가? 과연 며칠 후 청구서도 오고, 둘째 아이의 병원 기록도 오고, 시술 후 의사 면담 일정도 왔다. 병원비가 얼마나 청구될지 감이 아예 없어 총알을 얼마나 준비해둬야 할지 걱정하고 있는데 다행히도 보험사에서 바로 병원으로 지급이 가능하다는 답변을 들었다. 병원비는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다. 뉴질랜드 달러로 4,400불 (약 한화 380만 원)이었으니 생각보다 꽤 많이 나왔다. 부담이 많이 될 뻔했으나 우리에게 보험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보험사에서 처리가 늦어졌는지 두어 달 후에 병원에서 두어 차례 병원비 지급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재촉성 메일 (그마저도 부드럽고 친절했다)이 온 것을 제외하고는 잘 처리되었다.
퇴원 후 한 달 후 있었던 의사 면담은 15분간 이루어졌는데 아이에게 두 차례의 장중첩증을 있게 한 원인들에 대해 설명해주고, 향후 지켜봐야 할 지점에 대해서 친절하게 설명해주었을 뿐만 아니라 내가 제대로 이해한 것인지 알고 싶어서 종이와 펜을 빌려 다시 정리하며 물어보니 수정도 해주고, 맞다고 고개를 끄덕여 주기도 했다. 의사와 이런 대화가 오갈 수도 있는 거였다. 둘째 아이의 응급실 행은 우리 가족이 뉴질랜드에서 맞은 가장 큰 위기였으나 지나고 보니 상냥하고 친절한 다인종의 의료진들로부터 최고의 서비스를 경험했다는 점에서 참으로 감사한 일이었다. 한국에서 병원의 차갑고 딱딱함에 익숙해 있다가 처음으로 한의원에 갔을 때 받았던 내가 포용되고 있다는 따뜻한 느낌을 받았던 것을 뉴질랜드 병원에서도 느꼈다. 후에 그 병원에서 일하고 있는 한국인 간호사를 알게 되었는데 우리 집 사연을 듣더니 고개를 끄덕였다. 뉴질랜드 간호사가 되기 위해 받은 교육 과정에서도, 업계에 종사하면서도 의료 종사자들의 질 좋은 대면 서비스가 시종일관 강조된다는 것이다. 뉴질랜드 의료인으로서 뉴질랜드의 의료 서비스 속도가 느리고 의료 기술이 낙후된 것은 인정하지만 의료인들의 대면 서비스는 단연 최고라고 자부한다고 했다.
그것을 계기로 뉴질랜드 고등교육 시스템과 의과대학 학제에 대해 관심이 갔다. 뉴질랜드의 고등학교 마지막 2년간 일단 학점을 채우고 시험에 통과하면 어렵지 않게 의과 대학에 진학하기 위한 사이언스 학부에 입학이 가능하다. 뉴질랜드에 두 개밖에 없는 의과 대학을 선택하여 사이언스 학부에 입학한 후 1년 동안의 학점과 적성 검사 결과를 통해 2학년에 의과 대학 합격 여부를 알 수 있게 된다. 의과 대학 진입 후 5년의 학업 과정과 2년의 트레이닝 과정을 거쳐 비로소 의사가 된다. 대학 진학률 자체가 높지 않은 데다가 의과 대학이 두 군데밖에 없기도 하고 적성 검사에서 탈락한 낙오자와 어려운 학업으로 인한 포기자가 매 학기 누적돼 의대 졸업자가 얼마 안 된다고 한다. 따라서 항상 의사 공급 부족을 겪고 있는 만큼 뉴질랜드의 의사 역시 희소성 있기는 한국과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몸에 밴 친절함은 과연 그 한국인 간호사가 얘기했던 대로 학업 과정 전반에서 강조되는 서비스 정신에서 오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뉴질랜드의 의료 시스템이 낙후되었다는 불만이 나오는 또 다른 이유는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한 대기 시간이 한국과는 비교도 안 될 만큼 길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말하길 두 세 달 기다리는 것은 일도 아니라고 했다. 자신의 순서가 오기를 기다리다 저절로 낫거나, 아니면 죽거나 둘 중 하나라는 말이 나올 정도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료 공공 의료 서비스를 받기 위한 대기시간이다. 만약 사적 의료 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면, 언제라도 사적 의료 기관에 가서 보다 질 좋은 치료와 시술을 받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키위들은 사적 의료 보험에 가입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지 아니면 높은 보험료가 부담이 되는 것인지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