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매혹박 Apr 11. 2021

11장. 한국에서 온 손님들

손님 대접 제대로 못해 죄송했습니다.

 뉴질랜드에서 거주한 지 4년째 되는 동안 한국에서 손님들이 세 번 다녀 가셨다. 정확히 한 팀은 중국에서 살고 있는 남편의 한국인 친구 가족이었다. 뉴질랜드로 떠나오기 전에는 우리 사는 동안 한 번 다녀가라고 인사치레하듯 말했지만 막상 뉴질랜드에 오고 나서는 나 하나, 내 식구 하나 잘 건사하고 있는 것 같지 않아 놀러 오라는 말이 더 이상 안 나왔다. 


 뉴질랜드에 온 지 1년째 되는 여름, 시가 식구들이 첫 번째 손님으로 오셨다. 시부모님과 당시 열한 살이었던 시조카가 선발대로 오고, 후에 작은 시누 부부가 오셔서 일주일을 머물다 다 같이 되돌아가셨다. 시부모님은 한 달간 계셨는데 아이들은 방학했지만 남편은 일을 해야 했으므로 여행을 많이 다니지는 못했다. 애당초 여행을 목적으로 오신 것이 아니라 자식 사는 곳이 궁금하고, 걱정되어 오시는 거라 괜찮다고 하시긴 했지만 먹을 것조차 변변치 않아 죄송스러웠다. 아침으로 국을 드셔야 하는 시아버지께 매일 국을 끓여드릴 자신도 없고, 재주도 없어 처음부터 계시는 한 달 동안 주방은 시어머니께서 맡기로 하셨다. 덕분에 나는 원하시는 재료가 '있다', '없다' 말씀드리고 있는 재료는 열심히 사 날라 모처럼 맛있는 시어머니의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 당시 나의 둘째 아이는 세 번째 생일을 앞두고 있는 일명 '미운 세 살'이었던 관계로 나는 누가 봐도 피폐했던 것 같다. 어린 시조카도 나에게 말하기를 힘들어 보인다고 했었다. 시누이 부부가 오시고는 여기저기 가까운 곳으로 여행을 다니기는 했지만 결론적으로 나는 손님 대접을 잘 못했다. 그리하여 한 달 후 공항으로 배웅 나간 자리에서 한국에서 뉴질랜드로 오는 공항에서 울었던 것보다 더 많이 울었다. 


 그로부터 여섯 달 후 이번에는 친정 식구들이 왔다. 친정 엄마와 내 첫째 조카, 나의 둘째 조카를 임신 중이었던 내 동생, 이렇게 세 명 아니 복중 아기까지 네 명이 왔다. 동생이 열흘 휴가를 얻어 온 것이라 머물 수 있는 기간은 일주일 정도였다. 나의 둘째 아이보다도 더 어린 조카를 위해 카시트를 하나 더 준비해놓고, 더 이상 쓰지 않아 버리려고 했던 유모차와 아기띠도 만일을 대비하여 보류해 놓았다. 그 정도가 전부였다. 나의 손님맞이 준비는. 친정 식구들의 방문 역시 여행보다는 내가 사는 곳의 탐색이었기 때문에 임신 중인 동생을 배려하여 크게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집 근처로만 다녔고, 뉴질랜드에 왔다면 반드시 먹어줘야 하는 음식 정도로만 맛을 보여준 게 다였다. 그렇게 짧은 만남 후 다시 공항에 배웅을 하러 가야 했다. 친정 엄마는 내 눈시울이 붉어진 것을 보고는 덩달아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도망치듯 출국장 안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몇 달이 지나도록 더 잘해줄 수도 있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는 후회감을 떨치지 못해서 장문의 사과 메시지를 동생에게 보냈었다. 


 마지막으로 중국에서 10년이 넘게 살고 있는 남편의 친구 가족이 다녀 갔었다. 남편의 친구 부부는 우리 집 큰 아이보다는 어리고, 작은 아이보다는 나이가 많은 외아들을 데리고 왔다. 역시 휴가를 받아 온 것이라 오래 있지는 못했다. 또 역시 관광이 목적이 아니므로 따로 신경 쓰지 말아 달라는 신신당부를 받았다. 친구가 많은 편이 아닌 남편에게는 가깝고 소중한 친구였는데 가족들이 왔을 때보다 더 즐거워 보이고 편해 보였다. 이래서 가족과는 별개로 일생에 반드시 지기지우 하나쯤은 필요하다고 했나 보다. 나 역시도 내 가족이 아니어서 그랬는지, 내 친구가 아니어서 그랬는지, 아니면 이제 손님맞이 세 번째라고 숙달이 된 건지 한 집에서 같이 지내는 동안에도, 이별할 때에도 마음이 한결 편하고 가벼웠다. 그리고 해외 살이 선배인 남편의 친구는 다음과 같이 조언했다.

"너무 멀리 내다보지 말고, 내일까지만 생각하면 편하더라."   


 외국에서 산다는 것은 모국에서 오는 가족들과 친구들을 손님으로 맞이 하여야 할 의무를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 네 번째 손님이 오지는 않았지만 만약 온다면 최고 대접을 할 자신이 있다.                   


 

이전 10화 10장. 내가 만난 사람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