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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매혹박 Apr 11. 2021

9장. 뉴질랜드엔 살러 오셨어요?

그냥 한 번 와 봤습니다.

 거처를 마련하고 차량을 구입하고 학교에 다니거나 직장에 다닌다면 살고 있는 것일까? 뉴질랜드에 와서 초면에 가장 많이 들은 질문이 ‘살러오셨어요?’였다. 나는 항상 대답을 하지 못하고 얼버무렸다. 그건 마치 순댓국 집에 가서 이미 순댓국을 먹고 있는데 마침 옆 테이블에 앉아 있던 사람이 ‘순댓국 드시러 오셨어요?’라고 묻는 격이라고나 할까? 질문이 이상하지 않은가? 오히려 이런 상황이었다면 질문의 의도가 더 드러날 것 같다. 바깥일이 바쁜 남편이 집에 와서 잠만 자고 나가기를 반복할 때 아내로서 ‘주무시러 오셨어요?’라고 물을 수는 있겠다. 불평을 담아서 뱉어 낸 말일 게다. ‘살러오셨어요?’라는 질문에는 어떤 의도가 담겨 있을까? 여행과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나는 긴 여행을 하러 온 것일까? 영구 영주권을 얻어 눌러살고 싶은 것일까? 그렇다면 내 대답은 ‘한 번 살아보러 왔다. 어떤 곳인가 하도 궁금하길래.’ 정도가 되겠다. 


 ‘살러오셨어요?’라는 질문은 외국 살이 3년 간 가장 마음이 불편한 그 주제와 연결된 듯하다. 그것은 바로 편 가르기이다.  나는 뉴질랜드에서 편을 가르기 위한 많은 선들이 있음을 알게 됐다. 영주권자 대 임시 거주자, 임시 거주자들 간에도 가족 구성원 전체가 온 경우 대 기러기 부부를 자처하고 조기 유학 온 경우. 영주권자들 간에도 인종 별로 보이지 않는 선이 그어져 있다. ‘살러 왔느냐’는 영주권자가 임시 거주자에게 입국 의도, 현재 비자 상태, 향후 영주권 취득과 관련된 노력을 어느 정도로 기울일 것인가에 대한 각오 등을 한 방에 묻는 질문이었던 것 같다. 그러니 내가 그 오묘한 질문에 한 방에 대답하지 못했을 수밖에. 

 

 나와 같이 가족과 함께 학업 후 이민 과정을 택한 한 한국인 친구는 나에게 있었던 일들과 그녀에게 있었던 일들에 대해 대화를 하고 나면 항상 이런 결론을 내리곤 했다. 

“한국인들 조심하래요. 한국에서 막 오신 분들은 괜찮은데 예전에 오신 분들은 조금 조심해야 한대요. 옛날 한국의 나쁜 점들을 그대로 가진 채로 한국인들에게는 그 옛날 잣대를 적용하고, 그러면서도 뉴질랜드 인들에게는 깨어 있는 잣대를 적용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대요. 그래서 상처 받을 수 있다고.”

한편, 뉴질랜드 인 남편과 가정을 이루고 오래도록 살고 있는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비자로 살고 계신 분들 하고는 거리를 두게 돼요. 불쑥 왔다가 훌쩍 가버려서 상처 받은 적이 있어서요. 그때 날 이용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또 그분들은 뉴질랜드 험담을 많이 하더라고요. 밑밥을 깔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나는 여기서 쭉 살 사람인데 내 앞에서 그런 얘기 하는 건 예의가 아닌 것 같아요.”

 두 친구의 말을 듣고 두 입장의 차이에 대해 한참을 생각했다. 나도 밑밥을 깔고 있지는 않았을까? 결국, 이 입장이나 저 입장이나 상처 받을 것을 우려한 자기 방어 기제가 아닐까? 덕분에 임시 거주자로서, 또 심각한 비교병 환자로서 다른 사람들에게 상처 주지 않도록 말조심해야겠다는 경각심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직접 겪은 입장 차이도 있었다. 큰 아이가 다녔던 학교에 한국인 남매가 있었다. 그 학교에는 그 남매와 우리 아이가 유일한 한국인이었고, 그 남매는 엄마와 함께 조기 유학을 왔다. 뉴질랜드에 오자마자 학교 생활을 시작한 딸아이는 그 남매의 여자 아이에게 의지를 많이 했었다. 놀이시간에도 따라다니고 방과 후에도 놀이터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았다.  그 남매의 엄마와도 대화할 시간이 자연스레 많아졌는데 그 엄마의 적극적인 태도에 적잖이 놀랐었다. 플레이 데이트와 슬립 오버는 물론 자신도 직접 현지 아이들 엄마와 관계 다지기에 바빴다. 학생 비자 1년짜리로 온 것이기 때문에 본전을 뽑기 위해서라고 했다. 그런 말을 듣고 나니 나는 괜스레 미안해졌다. 나와 내 아이가 그 시간을 뺏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다고 우리는 입장 차이가 있으니 관계를 그만둡시다 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그 뒤로 그 관계에서 최대한 티가 나지 않도록 발을 빼느라 애를 먹었다. 혹시 그때 내가 선을 그었다고 서운해하지나 않았을까 하고 문득 걱정이 들기도 한다.


 뉴질랜드는 참으로 다양한 인종이 모여 사는 나라임에 틀림이 없다. 그러나 ‘모여’ 살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인종 별로 흩어져 살고 있는 것이 눈에 확 들어온다. 우선 사는 동네부터가 다르다.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남쪽은 인도인들이 많이 살고 있고, 북쪽은 중국인과 한국인이 많이 살고 있다. 당연히 학교도 그에 따라 인종 별로 모이는데 우습게도 대부분의 학교가 인종 별 구성비를 공시한다. 데싸일 (Decile)이라고 하는 재정 자립도도 함께 공시하는 데 북쪽의 학교들이나 백인의 비율이 높은 학교들은 데싸일이 8~10 정도로 높고, 마오리(뉴질랜드의 원주민) 비율이 높아질수록 데싸일이 2~3 정도로 낮다. 물론 한국도 보이지 않는 선이 있을진대 이렇게 가시적으로 확인하고 나니 나도 모르게 인종에 대한 편견이 생겼음을 부인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떻게 같이 살고 있는 것일까? 나는 역으로 한인 영주권자들에게 묻고 싶었다. 


‘눌러앉고 싶다는 생각은 언제, 어떻게 들었나요? 저는 50 대 50으로 하루에도 열두 번씩 살아볼까 와 돌아갈까를 두고 왔다 갔다 하는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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