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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Sep 17. 2020

발레 <백조의 호수> | 결말을 골라보는 재미

“이번 결말은 나쁘지 않네” 광주시립발레단의 공연을 보고 나서 든 생각이다. 이번에 본 공연이 아니라, 태어나 처음 본 발레 공연 <백조의 호수>는 동화의 끝과 달랐다. 남녀 주인공 모두가 죽는 공연이었기 때문이다. 


먼저 동화로 접한 <백조의 호수>는 Happy ever after, 그들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권선징악으로 마무리됐다. 그런데 발레 공연은 결말이 모두 제각각이었다.





차이콥스키의 대표 발레곡 중 하나



표도르 일리치 차이콥스키(Pyotr Ilyich Tchaikovsky) ⓒsnappygoat



<백조의 호수>는 표도르 일리치 차이콥스키(1840~1893)가 작곡한 발레 음악이다. 차이콥스키는 러시아의 유명한 작곡가이며, 클래식 음악의 거장으로도 불리기도 한다. <백조의 호수>는 차이콥스키의 3대 발레 중 하나로, 이외에도 <잠자는 숲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이 있다. 

<백조의 호수>에는 왕자 지크프리트, 백조들의 여왕 오데트, 악마(혹은 사악한 마법사) 로트바르트, 로트바르트의 딸 오딜이 등장한다. 안무가마다 <백조의 호수>를 다른 이야기로 전개하기도 하는데, 그래서 등장인물 설정도 때에 따라 달라졌다. 슬픈 엔딩으로 끝나기도 하고, 악역인 로트바르트가 주목을 받거나, 혹은 백조가 남성으로 바뀌기도 했다. 

이 공연은 세계에서 알아주는 러시아 볼쇼이발레단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버전으로, 원래 오데트가 죽고 왕자만 남는 비극으로 끝난다. 하지만 국립발레단에서 <백조의 호수>를 2001년 한국으로 들여올 때, 그리가로비치가 한국인들의 정서에 맞도록 행복한 결말로 수정해 주었단다. 

광주시립발레단 역시 국립발레단과 같은 스토리를 차용했다. 광주시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 예술감독 최태지가 이전에 국립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있었던 영향으로 보인다. 





'사랑의 승리' 그리가로비치의 재해석



1막


ⓒ광주MBC



처음은 왕자 지크프리트의 생일파티로 시작한다. 활기찬 음악에 맞춰 궁정 사람들이 자유롭게 춤을 추며 성대한 무도회를 즐기고 있다. 여왕도 지크프리트가 성인이 된 것을 축하하며 참석한다. 여왕이 자리에 앉자, 지크프리트와 두 발레리나가 3인무(파 드 트르와, a pas de trois)를 추며 무대를 채웠다. 즐거운 파티가 끝난 후 무도회장에 홀로 남게 된 지크프리트는 자꾸만 어디론가 가고 싶어 발걸음을 옮긴다. 


ⓒ광주MBC

지크프리트가 정신을 차려보니, 자기가 어느 숲속의 호숫가에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다 호숫가에서 한 백조가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왕자가 호숫가로 들어서면서 나오는 음악은 <백조의 호수>의 곡 중 가장 유명한 정경(Scene)이다. 정경은 지크프리트와 오데트의 극적인 만남을 의미하는 듯 웅장하게 울려 퍼졌다.



https://youtu.be/dY4KjcaGUU0

차이콥스키 ‘백조의 호수’ Op.20a, 1번 정경(Scene)


“당신은 왜 여기 있나요?”라며 묻는 지크프리트에게 오데트는 악마 로트바르트에 의해 낮에는 백조, 밤에는 사람으로 변하는 저주에 걸렸다고 하소연한다. 이 저주를 풀려면 한 사람의 변치 않는 사랑을 받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백조 무리가 나타나 함께 달빛 같은 조명 아래에서 춤을 춘다. 4명의 발레리나가 추는 ‘4마리의 백조’도 이때 나온다. 백조들의 무대를 지켜보던 오데트와 지크프리트도 백조들과 함께 군무를 춘다.  

공연 중, 주역들과 백조들의 흰색 의상이 푸른 조명에 반짝였다. 조명 탓일까? 새벽녘 호숫가에서 다 함께 어울려 즐겁게 놀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지크프리트는 오데트에게 다음 날 무도회에서 오데트와 결혼을 발표하겠다고 약속하며 헤어진다. 





2막



ⓒ광주MBC



다시 궁전 무도회장. 왕비는 이웃나라의 공주들을 초대해 그녀들을 왕자에게 소개한다. 각국에서 온 공주들은 디베르티스망(Divertissement)을 추며 왕자를 축하한다. 

원래 발레에서의 디베르티스망은 ‘줄거리와 관계없는 안무’를 뜻한다. 독특하게도 <백조의 호수>에서 디베르티스망은 스페인과 헝가리 등 각 나라의 문화가 드러나는 민속춤을 보여주며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했다. 

공주들의 춤이 끝나고 음악이 바뀌며, 악마 로트바르트가 자신의 딸 오딜을 데리고 등장한다. 지크프리트는 오데트와 닮은 오딜을 보고, 오데트로 착각하고 만다. 흑조 오딜의 매력에 빠진 왕자는 그녀와의 결혼을 덜컥 발표해 버린다.  

왕자가 오딜에게 결혼을 발표하자마자 조명이 어두워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절망에 빠진 오데트의 모습이 나타나는데, 그때야 왕자는 자신이 악마 로트바르트의 장난에 놀아난 것을 깨달으며 백조들이 있는 호수로 향한다. 


푸르른 조명으로 바뀌며 숲속의 호숫가가 나타났다. 여태 파란빛의 조명이 신비한 느낌을 주던 것과 달리, 우울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똑같은 조명이지만 작품 흐름에 따라 다채로운 감정을 전달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한편 오데트와 백조들은 슬픔에 빠져 있다. 오데트에게 용서를 빌기 위해 지크프리트가 달려오지만, 악마는 그를 오데트와 갈라놓기 위해 계속 방해한다. 왕자 지크프리트는 악마와 용감하게 맞서 싸우고. 그러나 악마의 강대한 힘 앞에 지크프리트는 쓰러지고 만다.  

쓰러진 지크프리트를 지켜보던 오데트가 “지크프리트 당신을 용서해요”라고 말하며 사랑을 고백하자, 그들의 ‘사랑’이 악마의 악한 힘을 이겨내는 기적이 일어난다. 그렇게 함께 악마를 물리치게 된다. 오데트와 지크프리트의 사랑이 ‘악마’라는 초월적인 힘을 이긴 것이다. 





<백조의 호수>를 감상하는 법



익히 알려진 사실이라 아는 사람도 있을 텐데, <백조의 호수>는 여성 주역 한 명이 선(善)의 오데트와 악(惡)의 오딜을 모두 연기한다. 나탈리 포트만이 연기한 영화 <블랙 스완>을 본 적 있다면 이해가 더 빠르다. 

이탈리아 유명 발레리나 ‘피에리나 레냐니’가 동시에 두 역할을 맡은 이후, 1인 2역으로 관습이 굳어졌다고 한다. 극과 극의 양면성 가진 캐릭터를 한 무대에서 연기한다는 것이 얼마나 매력적일까. 발레리나들의 선망의 배역으로 오데트와 오딜 역이 꼽히는 것은 다 이유가 있다. 각각의 캐릭터를 한 명의 발레리나가 무대에서 어떻게 표현하는지 관전하는 것도 관객들의 관람 포인트가 된다. 

두 번째로 흑조 오딜의 푸에테(Fouetté, 연속 회전)를 구경하는 묘미가 있다. 아쉽게도 이 공연은 그 장면이 없다. 백조의 호수에서 중요한 장면이자, 색다른 관전 포인트인데 빠진 것 같다. 



https://youtu.be/XfmSv0z205s

백조의 호수 中, 0:35부터 흑조 푸에테 ⓒThe Royal Ballet



2막에서 오딜은 왕자가 자기를 오데트로 착각하게 하도록 매혹적인 모습을 뽐낸다. 그 모습을 상징하는 것이 32회전 푸에테라고 생각한다. 발레리나가 푸에테를 성공적으로 해낼 수 있도록 관객조차 숨죽이는 장면이다.  

푸에테는 고도의 집중력을 요구하는 발레 동작으로, 발레리나는 온몸의 체중을 발끝 하나에 집중 시켜 32번의 회전을 해내야 한다. 그래서 박수도 푸에테가 끝난 뒤에 치는 것이 매너다.  

흑조의 우아한 푸에테를 보고 있노라면, 왜 지크프리트가 오딜에게 빠졌는지 십분 이해가 된다. 지크프리트뿐만 아니라 관객마저 매료시킬 아름다운 푸에테를 완성하기 위해, 수없이 연습을 했을 발레리나의 노고도 눈앞에 그려진다. 

앞서 안무가마다 각자 다른 내용으로 극을 이끌어간다고 언급한 바 있다.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는 악마를 왕자의 그림자로 표현한다. 원래는 악마와 왕자를 별개의 인물로 여기는 것이 통설이다.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가로비치 ⓒ아시아투데이



극 중에서 악마 로트바르트는 왕자의 그림자인 양, 내내 따라다니며 방해를 했다. 그리가로비치 극본에서의 ‘악마’는 마치 ‘운명’과도 같았다. 악마는 극 속에서 지크프리트가 오데트를 발견하도록 이끌기도 했고, 둘의 사랑을 끊임없이 시험하기도 한다. 미래를 알 수 없는 우리의 운명처럼 극의 이야기를 끌어나갔다. 



결말 또한 남녀 주인공이 ‘진실한 사랑’을 서로 고백했을 때, 악마가 사라졌다. ‘진실한 사랑’ 앞에서 ‘운명’도 어쩌지 못한다는 낭만적인 해석이다. 그리가로비치의 한국판 <백조의 호수>는 이런 엔딩을 맞이했다. 



보통 <백조의 호수>의 결말로는 대표적인 4가지가 있는데, 유리 그리가로비치가 한국 관객들을 위해 변형한 것처럼 ‘악마는 죽고 오데트와 지크프리트가 행복하게 사는 결말’, ‘오데트와 지크프리트 모두가 죽는 결말’, ‘아무도 죽지 않지만, 영원히 오데트는 백조가 되는 결말’, ‘오데트만 자살하여 죽는 결말’이 있다. 



유리 그리가로비치의 결말은 원래 비극적으로 끝이 난다. 하지만 한국 관객들을 위해 ‘행복한 결말’로 바꿨다. 그의 섬세한 배려가 돋보인다. 그러므로 원하던 결말과 다른 공연을 보고 싶지 않다면, 어느 안무가가 연출했는지 미리 확인을 하고 보러 가는 것이 좋겠다. 




ⓒ광주시립발레단

광주시립발레단의 <백조의 호수>는 지난 2018년 8월에 공연했다. 해당 공연은 이미 끝났지만,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은 광주MBC 유튜브를 통해 무료로 감상할 수 있다. 오데트와 오딜 역은 신송현, 왕자 지그프리드 역에는 보그단 플로피뉴(Bogdan Plopeanu)가 맡았다. 

코로나19로 인해 밖에 나가기도 어려운 요즘, 집에서 고전발레를 편안히 감상해보는 것은 어떨까.












글 | 박신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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