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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간 도슨트 Sep 08. 2021

우울하고 공허한 마음들에게 | 정상화 화백



가끔 우울해질 때가 있다. 특히 공허함과 텅 빈 마음은 그 우울함을 배가시킨다. 마치 가슴이 뻥 뚫린 것과 같은 허한 감정.


얼마 전 정상화 화백의 개인전이 열리던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장에서 이 감정을 똑 닮은 그림들을 보았다.


전시장에 걸려있는 그림들은 마치 공허한 마음들 같았다. 색감이 너무도 하얘, 또는 너무도 섬세해 마치 ‘살려주세요’ 외치는 가녀린 마음들을 마주하는 듯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3,4 전시실 ≪정상화≫ 전시 전경 | 사진=본인 촬영

 


  하지만 전시를 보고 나온 뒤에 느낀 감정은 놀랍게도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누군가의 마음을 오랜 시간 들여다보고, 하나하나 미세한 눈길을 줄수록 정상화 화백의 그림이 지닌 공백이 오히려 꽉 차 있는 상태 같다고 느꼈다.


공백을 향한 과감한 실험정신으로 더 이상 공백이 아닌 공백을 만들어냈던 작가 정상화.


그의 그림이 내는 목소리를 통해 새로운 공백을 선사해보고자 한다.


 



 





단색화와 정상화


 

한국 미술계의 중심 흐름으로는 이것을 빼놓고 논할 수 없다. 바로 ‘단색화.’


  단색화는 1970년대 시작된 단색조 추상회화를 칭하는 말로, 미술평론가 윤진섭(1955~)이 처음으로 정의한 용어다. 그 명칭의 학술적 타당성에 대한 이견이 분분하지만 2012년 국립현대미술관이 대규모 기획전 ‘단색화(Dansaekhwa)’를 개최하면서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했다(출처/서울경제). 단색화는 그  이름답게 단색으로 칠해진 절제된 색, 넓은 여백, 반복된 행위와 작업 등을 특징으로 한다.



단색화의 대표 작가 이우환의 그림/ 이우환, <점으로부터>, 캔버스에 석채, 194×259cm, 1973, 국립현대미술관



  단색화를 대표하는 작가들에는 박서보(1931~), 이우환(1936~), 하종현(1935~), 故 윤형근(1928~2007), 정상화(1932~) 등을 들 수 있다. 그리고 그중 정상화는 자신만의 독특한 조형 방법론을 발견해내 캔버스에 풀어갔던 작가다.


 




 


정상화의 공(空), 백(白)



아무것도 없이 비어 있는 백지와 같은 상태를 뜻하는 ‘공백.’


정상화의 공백이 처음부터 특별하지는 않았다. *앵포르멜 경향의 추상회화를 거쳐 백색 위주의 단색조 회화가 탄생되었고 콜라주(collage), 목판화, *프로타주 기법 또한 그림에 다양하게 사용되었다.


*앵포르멜(Informel): 제2차 세계대전의 참사를 겪고 그 파괴와 고통에 대한 깊은 회의를 느껴 프랑스를 중심으로 일어난 새로운 회화 운동. 색채에 중점을 두고 격정적이고 주관적인 호소력을 갖는 표현주의적 추상예술로 나타났다.
*프로타주(frottage) 기법: 주로 바탕 위에 종이를 대고 연필로 긁어내는 기법.


 

  특히 그는 프로타주 기법을 통해 화면의 깊이감을 더해갔다. 캔버스보다 다루기 쉬운 종이의 성질은 그에게 여러 조형 구조를 시험해볼 수 있도록 했다. 섬세하고 부드러운 종이를 이용해 그는 그만의 특징적인 조형 구조와 기법을 발전시켜나갔다.


  종이를 수직, 수평 또는 사선으로 잘라 내어 붙이고 떼어내기를 반복해 다양한 격자 구조를 실험하기도 하고, 종이를 대고 연필이나 펜 등으로 울퉁불퉁한 표면을 긁어 베끼며 그만의 특징적인 기법을 만들어냈다. 바로 ‘*그리드(grid).’


 

*그리드(grid): 격자 형식의 무늬.
 

 

무제 79-B, 종이에 흑연, 155×122cm, 1979, 작가 소장, 사진=이만홍


 




 


‘그리드’의 탄생, 수행(修行)



  1967년, 정상화는 상파울루 비엔날레 출품을 위해 브라질에 들렀다가 우연히 한 광경을 보고 큰 감명을 받는다. 도로를 공사하는 인부들이 돌을 네모나게 잘라 바닥에 놓고는 그 위에 모래를 덮어 길을 만들고 있는 모습이었는데, 그는 이 광경에서 브라질 곳곳에 도로를 과감히 확장시키는 ‘인간의 힘’을 본다.

그가 두 눈으로 목격한 인간의 힘은 곧 ‘그리드’라는 매체로 다시 태어난다.


그래서인지 그의 작업은 건설 현장 노동자의 작업 과정을 연상케 한다.

캔버스에 고령토를 바른 후 마르면 네모꼴로 뜯어내어 그 빈 곳에 유채나 아크릴 물감을 채우고, 마르면 다시 뜯어내고 채우고. 일명 ‘뜯어내기와 메우기’ 기법으로 그는 노동 집약적인 방식을 완성시킨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정상화≫ 티저 캡처



<정상화> 전시를 진행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이렇게 설명한다.



“자신의 작업을 ‘과정’으로 정의 내리는 작가의 작품에는 지난한 노동의 행위가 집약돼 있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걸리는 노동 집약적 행위는 고도의 인내심과 육체적 몰입을 요구한다.”



즉, 정상화의 작업은 육체적 몰입과 인내심을 통한 수행(修行)의 과정이다.


구도자가 오랜 시간 생각을 다스리듯, 단순한 노동을 넘어선 수행의 과정.


 



 


텅 빈 마음들에게


 

전시장을 나서며 왜인지 살아있는 기분이 들었다. 여러 마음들을 들여다보는 과정에서 개인의 마음 또한 살펴보았기 때문이리라.



정상화, 무제 74-F6-B, 1974, 캔버스에 유채, 226×181.5cm,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사실 정상화의 그림은 언뜻 보면 텅 빈 캔버스 같다. 흰 표면은 아직 그려지지 않아, 붓이 닿는 순간만을 기다리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채워지지 않은 이 그림을 가까이 들여다보면, 오히려 꽉 채워져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심지어는 겉으로 보이는 흰 표면일지 몰라도 그 속에는 다른 색깔도 자리한다.

정상화는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품 속 흰색은 하나의 흰색처럼 보이지만 보이지 않는 다양한 색이 존재한다.”


    같은 흰색이지만 다 같은 흰색이 아니다. 그리드의 간격이나 방향, 바탕 안료의 두께에 따라 전혀 다른 결과물이 탄생될 수밖에 없듯, 그렇게 모든 흰색은 미세한 차이로 자신의 다름을 증명해낸다.


 

(상단 좌측) 정상화, <무제 73-12-11>, 캔버스에 아크릴릭, 1973, 개인소장 (상단 우측) 정상화, <무제 76-8>, 캔버스에 아크릴릭, 1976, 개인소장
(하단 좌측) 정상화, <무제 018-2-16>, 캔버스에 아크릴릭, 2018, 작가소장 (하단 우측) 정상화, <무제 96-11-2>, 캔버스에 아크릴릭, 1996, 서울시립










언젠가 한 권의 책 제목이 눈길을 사로잡은 적이 있다.

“우울함이 내 개성이라면.”

어쩌면 공허함도 개성이 아닐까. 같은 흰색이 존재하지 않듯이 말이다.


 

마음에 공백이 들어 공허해지고 자꾸만 우울해지는 사람들에게,

또는 텅 빈 마음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공허한 마음을 가진 이도, 느끼는 이도, 치유할 수 있는 이도 모두 자기 자신이라고.


 


90세가 넘는 고령의 나이에도 아직까지 수행적 작업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을 정상화 화백처럼,

당신의 공백 안에서 당신의 흰색을 발견하길 바란다.


 


 



“덜어내고 메우고, 또 덜어내고 메우고, 그러면 요철이 나오고,
두께가 나오고, 높이가 나오고, 선이 나와.
하얀 그림 속에 전부 높이가 다 달라.”

/ 국립현대미술관 유튜브 정상화 화백과의 인터뷰







글 | 김은강

편집 | 김희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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