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서살이 Aug 01. 2023

나는 한강에서


 드디어 오늘이다. 모든 준비를 마치고 지긋지긋한 삶을 끝내는 날. 한 달 전부터 지우고 싶은 흔적을 모조리 정리했고 방금 전 엄마 아빠를 위해 마지막 편지 한 통을 썼다. 오래전부터 무어라 쓸지 생각해 둔 탓에 편지는 술술 적혔고 적는 동안 담담했다. 마지막 부분에 '고맙고, 미안해'라는 문장을 쓰며 울컥했지만 눈물이 흐리진 않았다. 편지지를 고이 접어 편지봉투 안에 넣었다. 봉투 밖에는 '엄마, 아빠'라고만 써서 내 책상 위에 올려두었다.



 교통카드 한 장과 휴대폰만 챙겨 집 앞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나는 ㅇㅇ대교로 가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두 달 전, 투신자살 명소인 ㅁㅁ대교에 갔는데 높다란 자살방지난간을 보고 장소 물색을 다시 했다. 뛰어내릴 만한 적당한 곳을 찾다가 선택한 곳이 ㅇㅇ대교였다. 도착한 ㅇㅇ대교에는 여전히 많은 차들이 지나다니고 있었다. 죽는 마당이지만 강물에 투신하는 내 모습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아 적당한 타이밍을 위해 대교를 걷기 시작했다.



 주변을 살피며 걷다 보니 금세 대교 끝에 다다랐다. 방금 걸었던 길을 반복해서 걷는 것을 선호하진 않지만 어쩔 수 없이 뒤돌아 왔던 길을 다시 걸었다. 대교 중간쯤 왔을 때 난간 방향으로 몸을 돌렸다. 다시 한번 좌우를 살피고 차가 뜸한 틈을 타 한 치의 망설임 없이 양손으로 난간을 짚고 상체를 최대한 숙였다. 예상보다 난간이 높았지만 그 순간, 출처를 알 수 없는 강한 힘이 솟아나 어렵지 않게 밑으로 떨어질 수 있었다.


떨어지는 시간 1초, 두려움보다 안도감이 들었다.



 두 눈을 질끈 감았는데 오히려 내 몸의 모든 촉수는 눈을 뜨고 지켜보는 듯했다. 물 표면에 정수리가 닿는 순간 비릿한 물 냄새가 났고 몸이 물속으로 들어갈 때는 마치 슬로모션처럼 머리부터 발끝까지, 모든 게 생생히 느껴졌다. 물속 깊이 빠진 몸은 재빠르게 수면 위로 떠올랐다. 뛰어내리자마자 심장이 멎고 정신을 잃게 될 줄 알았는데 예상과 달리 몸과 정신이 아주 말짱했다. 어렸을 때 배운 수영 덕분인지 발이 땅에 닿지 않아도 두렵지 않았다. 물은 내게 큰 데미지를 주지 않았다. 오히려 물속에서 바라본 고요하게 빛나는 도시의 밤 풍경은 아름다웠다. 두 다리가 땅에 있을 때 보다 조금 더 마음이 평안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입술이 달달 떨리고 체온이 급격히 떨어지기 시작했다. 따뜻한 봄이지만 4월 말 한강 물은 여전히 차가웠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물속에 있던 폰이 정상 작동했다. 대단한 방수력이다. 비밀번호를 눌러 휴대폰 잠금을 풀었다.



 조금 전, 10시 17분에 엄마가 보낸 카톡이 와 있었다.

'아직 안 끝났어?'

 당직 근무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엄마가 내 방 불이 꺼져있는 것을 보고 보낸 모양이다.



 오늘 아침, 학원 끝나고 독서실에서 공부 좀 더 하고 오겠다고 미리 말해뒀지만 조금 있으면 엄마한테 전화가 올 거다. 나는 핸드폰을 멀리 던져 버렸다. 오늘은 집에 돌아가지 않을 거다. 죽기만을 바라며 물 위에 누워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봤다. 점점 흐리멍덩해 보이는 별빛이 마치 나 같았다. 8개월만 있으면 성인이 될 수 있지만 어쩐지 성인이 되기 싫다.



 10살 때, 친구랑 크게 싸운 적이 있다.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아무튼 화가 난 친구는 연필 한 자루를 내 허벅지에 꽂아버렸다. 나는 필통에 있던 연필 모두를 꺼내 잡고 뒤돌아가는 친구 등에 꽂아버렸다. 그 녀석은 쓰러져 울기 시작했고, 그날 엄마가 학교에 왔다. 퇴근 후 이 사실을 알게 된 아빠는 친구 엄마에게 전화해 온갖 욕설을 쏟아부었고, '세자루나 꽂은 당신네 딸이 더 무서운 년'이라며 전화기 너머로 친구 엄마가 소리를 바락바락 질렀다. 옆에 있던 엄마도 전화기에 대고 '어미나 애나 똑같다'며 '또 한 번 우리 딸 근처에 얼씬거리면 죽여버리겠다'라고 악을 쓰며 소리를 질렀다.



 부모님에게 나의 '연필 세 자루'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친구가 내 허벅지에 연필을 '먼저' 꽂았다는 것만 중요했다. 그날 엄마 아빠의 이성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 일로 친구는 전학을 갔고 나는 왕따가 됐다. 그때부터였을까? 내 인생이 꼬이기 시작한 게.



 고등학생이 되고 어렵게 사귄 친구들은 별 것도 아닌 일로 하루에도 두세 번씩 뾰로통해지곤 했다. 여자지만 또래 여자아이들과 어울려 지내는 게 어려웠고 욕을 입에 달고 사는 남자애들을 보는 것도 싫증이 났다. 부모님은 '공부 잘해야 편하게 산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나는 그 말만 믿고 공부했지만 내 삶은 전혀 편치 못했다. 작은 불행이 모여 예고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나를 집어삼켰다.



왜 공부를 잘해야 하지?

왜 말을 잘 들어야 하지?

….

왜 참아야 하지?

왜 살아야 하지?



차라리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텐데.


오랫동안 해답을 찾아 헤매었지만, 찾지 못했다.


 부모님은 풍족하진 않지만 본인들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해 나를 키웠고 아낌없이 사랑해 주었다. 하지만 그것이 나에게 살아갈 이유를 만들어 주진 못했다. 고통스러운 기억들을 떠올리는 동안 죽음이 눈앞에 다가왔다. 살며시 눈을 감으니 눈물이 흘렀다. 내가 그동안 흘린 눈물을 모으면 이 강물만큼 될까? 그 정도는 안 되겠지? 그래도 절반쯤은 될 거다. 눈으로 흘린 눈물만이 눈물은 아니니까.



 점점 정신이 흐려진다. 몸이 무거워지는 듯하더니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입 속으로 물이 들어오더니 이내 콧 속으로도 물이 차올랐다. 눈을 떴지만 앞이 보이지 않았다. 양팔을 몇 차례 허우적거리고 나니 살면서 한 번도 겪은 적 없는 극한의 고통이 밀려왔다. 숨을 쉴 수 없다는 게 이렇게나 고통스러운 일이구나.




다음 생에는 먼지로도 태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작가의 이전글 코로나 확진, 올해만 벌써 두 번째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