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굳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이 다정함이 될 때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지방으로 이사를 하면서 남자친구와 장거리 커플이 됐다. 여느 장거리 커플처럼 일주일에 한 번 정도 데이트를 한지 두어 달쯤 됐을 때였다. 우리는 금요일 저녁에 만나 예약해 둔 호텔에서 1박을 하기로 했다. 저녁을 시켜 먹고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백수인 내가 먼저 잠이 들었다. 다음 날 아침, 남자친구는 볼일이 있어 먼저 나갔고 뒤늦게 일어난 나도 나갈 채비를 하던 중이었다. 옷을 갈아입으려 어제 벗어둔 셔츠가 걸린 옷걸이를 옷장에서 꺼내니 단추가 모두 채워져 있었다.
'아... 이걸 다 왜 채워놨데, 귀찮게...'
저녁에 다시 입을 잠옷을 게지 않는 것처럼 채워진 셔츠 단추를 보고 '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5개 남짓한 단추를 푸는 동안 '남친은 왜 단추를 잠갔을까' 곰곰이 생각했다. 분명 나를 골탕 먹이려고 번거롭게 단추를 채우진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셔츠가 구겨질까 봐 그랬을까? 그것도 아닐 것이다. 니트 안에 입을 셔츠라 구겨짐은 크게 상관없었다. 그렇다면 심심해서 잠갔을까? 피곤했을 그가 단순히 심심함 때문에 단추를 채우진 않았을 것 같았다. 그렇다면 남은 건 하나, 사랑이다. 정갈하게 잠긴 셔츠의 단추를 보며 연인의 보살핌을 느끼게 해 주려 그러지 않았을까? 겉에서 보기에는 자발적 백수지만 더 이상 일을 하기 힘든 지경에 이르러 퇴사를 선택한 나였으므로, 사회인으로 어떤 쓸모가 있는지 고민하는 내게 다정한 그는 작은 위안을 주고 싶었을 것이다.
그가 집에서도 셔츠 단추를 모두 채워 옷장에 보관하는지 궁금했다. 내 셔츠의 단추는 간밤에 내가 잠든 사이에 채웠을까? 아니면 아침에 나갈 준비를 하며 채웠을까? 그 셔츠를 보며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랐을까? 내가 내린 결론이 그의 의도와 딱 맞아떨어졌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나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행여라도 그가 '단추 내가 채운 거 아닌데'라고 말하면 갑자기 호러가 될 테고, '그냥 별 뜻 없이 채웠는데'라고 말하면 멋쩍어질 테니 말이다.
(이제는 다른 누군가의 셔츠를 채우며 살아가고 있을 그에게, 안녕을 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