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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까를로스 안 Sep 21. 2022

아토피

글감 : 사진

언젠가부터 사진 찍는 게 싫어졌다. 그래서 혼자서는 되도록 사진을 안 찍는데, 첫째 아이가 내 핸드폰의 카메라를 켜서 한껏 이쁜 표정을 지으며 함께 사진을 찍으려고 시도하면, 못 이기는 척 맞춰준다.


사진을 두어 장 찍어서 가족 단톡방에 올렸더니, 누나가 말한다. “왜 이렇게 인상을 쓰고 사진을 찍어”. 나름 활짝 웃으며 찍은 건데, 억지웃음이었나 보다. 첫째 아이와 즐거운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는데, 사진 속에 나는 인상까지 써 보인다니 당황스러웠다.


왜 사진 찍는 게 싫어졌을까? 아마도 누나가 보인 반응처럼 찍힌 사진 속의 내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였던 거 같다. 어느새 나잇살이 늘어난 모습이 보기 싫었다. 그리고 아토피가 어릴 때는 팔다리 접힌 부분에만 있었는데 나이가 들면서 등, 어깨, 얼굴까지 올라와서 피부를 어둡게 만들어 더 보기 싫었던 거 같다.


아토피는 주기적으로 찾아와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드러냈다. 아토피가 얼굴에 퍼지면, 쌍꺼풀 한쪽이 다섯 꺼풀이 되거나, 노 꺼풀이 되어 짝눈처럼 보였다. 내 눈으로 내 눈이 보기 싫어지는 난처함이란. 미간의 주름은 움푹 파여, 어두워 보이고 나이가 더 들어 보인다.


사진 찍는 것을 싫어하는 이유를 생각하다가, 예상치 못하게 아토피라는 오래된 친구를 만나게 되었다. 평생 지겹게 나를 따라온 녀석이다. 고등학교 때까지 다리 접히는 부분의 아토피가 심해서 여름에도 긴 바지만 입고 다녔다. 군대에 가서도 심할 때는 아침에 일어났더니 눈에 고름이 차 눈이 떠지지 않았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 설거지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손에 습진이 심해져 일을 그만두었다. 추석 연휴에 푹 쉬고 좋은 컨디션으로 회사에 출근했는데, 사람들이 많이 피곤해 보인다며 건강 챙겨야 한다는 말을 들을 때만큼 당황스러운 일은 없다. 나 정말 컨디션 최고인데. 


아토피는 이상한 질병이다. 우리의 건강을 보호하는 면역체계가 아군을 적군으로 잘못 인식하여 과잉진압으로 생기는 병이다. 전문용어로 자가면역질환이다. 자기를 공격하는 병. 지금도 가난한 아프리카나 인도에는 없고, 선진국에 만연한 질병이 아토피다. 즉, 사회가 발전하면서 사용하는 세정제, 화장품(화학제품), 동물성 위주의 단백질 식사, 가공식품 등이 우리의 면역 체계를 혼란시켜 생기는 현대병이다.

9월, 환절기에 접어들면서 다시 아토피가 어깨, 목, 얼굴로 퍼져서, 피부과에 가서 급하게 치료를 받았다. 스테로이드제가 들어간 주사와 연고를 처방받고, 항히스타민제가 들어간 약을 일주일치 먹었더니 많이 좋아졌다. 그러나 스테로이드제와 항히스타민제는 오버하는 면역체계를 잠시 잠들게 해서 증상을 완화하는 것이지, 실질적인 치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잠에서 깨어난 면역체계는 그동안 못한 일을 야근도 마다하고 열심히 하면서 피부를 더 심하게 망가트려 놓곤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응급 치료를 받은 이유는 간지러움이 심해 긁어서 생기는 2차 감염을 줄이고,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졸리는데 자는 것만으로도 회복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사진을 찍기 싫었던 이유가 건강하지 못한 내 모습이 보기 싫어서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내가 나를 보기 싫어한다는 것이 슬프게 느껴졌다.


우선 나부터 나의 좋은 친구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거울도 자주 들여다보고, 몸의 아픈 곳이 있으면 치료를 받고, 마음도 자주 들여다봐야겠다. 스스로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나를 괴롭히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 했는데, “스스로를 해치는 자”에게 하늘은 과연 어떤 일을 행할지 생각하면 가슴이 싸늘하다. 


예전보다 머리가 나빠지고 외모도 마음에 안 든다고 나까지 나를 무시하면, 누가 나를 아껴주겠나. 이제부터 아토피를 만나면 화를 내거나 우울에 빠지지 말고, “내가 나를 많이 괴롭혔구나” 깨닫고 나를 돌봐주어야겠다. 환절기가 되면 항상 찾아오는 아토피, 너를 다시 만나면 이제는 안아주리라. 뜨겁게 안아주리라.


#아토피#자가면역질환#사진 찍기 싫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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