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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Aug 17. 2021

영화와 관객을 이어주는 가교 역할, 번역가

몇 달 전에 영화 두 편을 연달아 번역했습니다. 하나는 극장 개봉작이었고 하나는 OTT 스트리밍 영화였는데, 다행히 작업 일정이 겹치진 않았죠. 올레! 요즘 들어오는 영화 의뢰는 IP TV용보다는 주로 OTT 영화가 많은 편입니다.


첫 번째 영화는 극장 개봉작이다 보니 마지막까지도 번역을 줄이고 또 줄였습니다. 분명히 다 줄였다고 생각했는데도 자꾸 줄일 만한 텍스트가 눈에 띄더군요. 번역가 입장에서는 원문과 다음 대사를 알고 있어서 순식간에 자막이 읽히는데, 이게 극장에서 보면 또 다른지라 이번에는 특히 더 줄였던 것 같습니다. 빨리 말하거나 화면 전환이 이루어지는 경우에는 여러 문장 중에 일부만 선택해야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고요. 두 번째 영화 역시 많이 줄이는 과정을 거쳤는데, 이 영화는 말도 빠르고 대사도 많아서 번역하면서도 귀가 무척이나 피로했습니다.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팍팍 줄이고 싶었지만, 그렇게 할 수 없는 내용도 많았거니와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주인공들의 서사를 느끼길 바라는 마음으로 어느 정도 선에서 적당히 타협해야 했습니다.


요즘은 영화를 보면서 번역가의 존재가 느껴지지 않는 게 좋은 번역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듭니다. 두 영화의 리뷰를 찾아보면서 온전히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티키타카를 나누는 모습이 묘하게 기분 좋았습니다. 저도 인간인지라 번역 칭찬이 있으면 기분 좋고 혹평이 있으면 시무룩한 게 당연하지만, 이번에는 오롯이 영화와 관객 사이를 이어주는 가교 역할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예전에는 번역하는 게 힘든데 왜 아무도 못 알아줄까 하는 서운함도 있었지만, 이번 경험을 통해 번역가의 존재가 숨어 있을 때 빛나는 작품도 있단 걸 깨달았습니다. 영화가 주고자 하는 메시지를 고스란히 전하고, 관객이 영화 자체를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번역가로서 그보다 더 좋은 칭찬이 어디 있을까요. 새삼 제 존재의 투명함이 감사하게 느껴지는 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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