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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Aug 14. 2021

내가 10년 차 번역가라니

얼마 전에 이력서를 쓰면서 경력을 계산하니 내년이면 번역 업계에 발을 들인 지도 10년이 되었더군요. 근데 이게 또 연차로 계산하면 올해 10년 차가 됩니다. 영상 번역만 한 지는 7년 차고요. 참 헷갈리는 계산법이죠. 번역가로 10년쯤 일하면 두려울 게 없는 베테랑이 되어 있을 것만 같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네요. 이렇게 빨리 다가올 줄도 몰랐습니다. 그도 그럴 만한 게 3년은 기술 번역 회사에 다녔고, 그 이후엔 영상 번역을 공부하고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쏜살같이 지나가 버렸습니다.


경력이 쌓인 만큼 일은 익숙해졌지만, 그만큼 부담감은 더 커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들어 번역을 고민하는 시간도 부쩍 길어졌습니다. 경력 초기에 번역했던 문장을 살펴보면 오히려 모험적인 표현을 많이 시도한 흔적이 보입니다. ‘내가 저런 번역을 했다고?’ 싶은 문장들도 가끔 마주치는데, 그럴 때면 저도 모르게 흠칫 놀랍니다. 그동안 번역했던 드라마나 영화 작품을 혼자만 볼 수 있는 계정에 정리했는데, 새삼 살펴보니 좋은 작품들이 참 많습니다. 돌이켜보면 저는 작품 복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어쩔 수 없이 놓친 아쉬운 작품들도 있지만, 새 시즌마다 번역 요청이 오는 시리즈물도 하고 있고, 매년 조금씩 극장 개봉작도 번역하고 있으니 참 감사한 일이죠. 불과 몇 년 전에는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마음 저편에서 왠지 모를 초조함과 불안감이 늘 있었는데, 이젠 해탈했다고 할까요.


코로나가 터지고 작년에 작업해야 할 시리즈 드라마의 제작이 줄줄이 취소되면서 한 달 가까이 쉬게 됐습니다. 처음 겪는 불안한 시국과 더불어 일까지 줄어드니 더욱 조바심이 나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날들이 많아졌죠. 내 인생의 황금기가 생각보다 초라하진 않을까, 어쩌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막연한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또한 지나고 나니 별일 아니더군요. 사람들은 어느덧 코로나 시국에 적응했고, 취소됐던 시리즈물도 하나둘씩 제작을 재개한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음을 많이 내려놓은 게 슬럼프 극복에 도움이 됐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프리랜서에겐 일이 생명수였던 걸까요.


올해도 벌써 8월을 향해 가는데, 남은 한 해를 잘 마무리하는 게 현재 목표입니다. 이제 올해 초에 계획했던 일들을 슬슬 구체적으로 행동에 옮길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사실 올해 극장 번역작 비율을 늘리려고 영화사 쪽에 적극적으로 컨택할 예정이었으나 이런저런 이유로 질질 끌다가 결국 8월이 되고 말았습니다. 일이 몰려서 바쁘기도 했고, 최근에는 새로운 회사와 일하느라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새 업체와의 작업이라 긴장되고 설렜는데 상상 이상으로 바쁘게 지냈습니다. 하반기에는 기존 시리즈물 요청이 온다는데, 일정을 잘 조율할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10년이 지나도 가끔 불안하고 걱정스러운 마음이 들 때도 있지만, 그래도 이젠 슬럼프를 잘 극복하는 법을 알게 됐습니다. 일이 많으면 많은 대로 좋고, 적으면 적은 대로 쉴 수 있으니까요. 이대로 쭉 15년, 20년까지 계속 일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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