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집사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번역하는 집사 Jan 21. 2022

유기견 입양 기록(1주 차): 너의 이름은 루키

거리를 떠돌던 흰둥이는 우리 가족이 되었고, "루키"라는 새 이름이 생겼습니다. 이로써 하루+루키=하루키 남매가 되었습니다. 루키를 데려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 하루와의 합사 과정을 꾸준히 올리려고 했지만, 일을 병행하며 루키를 훈련하느라 도통 시간이 나지 않아 이제야 두 번째 글을 작성합니다. 합사를 진행하면서 한 달 동안 메모장에 기록한 내용을 바탕으로 합사 과정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1일째, 8월 31일

루키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하루를 보고 으르렁거렸습니다. 중성화 수술 후 예민한 상태일 수도 있어서 일단 둘을 격리하여 지켜보기로 했습니다. 합사를 진행하는 동안 루키는 제 방에서 지내기로 했습니다. 하루는 밤에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니며 우리 가족이 자는 걸 골고루 확인하는 편인데, 당분간은 제 방 출입이 금지됐습니다.


2일째, 9월 1일

떨리는 마음으로 첫 산책에 나섰습니다. 예상대로 루키는 산책이 익숙하지 않아 이리저리 다니며 줄을 당겼고 사회화도 전혀 안 되어 있었습니다. 강아지를 보면 꼬리를 흔들지만, 가까이 다가오면 으르렁거렸습니다. 다만, 사람은 여전히 좋아해서 제가 방을 나갔다 들어올 때마다 꼬리를 흔들며 반겼습니다.


3일째, 9월 2일

계속 방석에만 있던 루키가 침대로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래도 푹신한 걸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계속 침대에 올라오고 싶었는데 낯선 환경 때문에 눈치만 보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는 모습이 귀여워서 얼굴을 쓰다듬으니까 코를 찡긋하며 으르렁거리더군요. 하루를 키울 땐 한 번도 겪어본 적 없는 일이라 새로운 상황에 저도 적잖이 당황했습니다. 길에서 자던 버릇이 있어서 그런지 잘 때도 예민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밤에 자려고 불을 끄고 휴대폰을 충전기에 올려놓았는데, 휴대폰 진동 소리에 루키가 자다가 깜짝 놀라면서 마구 짖어댔습니다. 밤에는 특히나 소리에 더 민감한 것 같습니다.


4일째, 9월 3일

이날 처음으로 베란다에 소변 실수를 했습니다. 밖에서 개 짖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는데 루키가 긴장했는지 베란다에 소변을 봤습니다. 사실 처음에 데려왔을 때 배변 패드에 소변을 봐서 배변 교육이 되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게다가 루키를 데려오고 매일 세 번씩 산책하러 나가서 당연히 하루처럼 실외 배변이겠거니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더군요. 길을 떠돌아다닐 때 소변을 참지 않았던 게 버릇이 됐나 봅니다. 아무래도 배변 교육을 다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다행히 아직까지 하루는 루키에게 텃세를 부리거나 하진 않습니다. 제 방 앞을 울타리로 막아놨는데, 루키가 궁금한지 매일 울타리 앞을 기웃거립니다.


5일째, 9월 4일

이제 루키는 방석보다 침대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산책은 여전히 힘들고, 다른 강아지와 인사는 꿈도 못 꿉니다. 루키는 큰 소리나 커다란 물건을 무서워합니다. 저랑 방에 있는데도 집 안에서 무슨 소리가 나면 경계하며 짖고요. 하루는 헛짖음이 거의 없어서 이 또한 새로운 경험이었습니다. 청소기나 먼지떨이처럼 긴 막대기를 보면 긴장하며 도망치기 바빴습니다. 아무래도 예전 주인에게 학대를 당한 것 같습니다. 산책 중에 목줄이 엉켜서 제가 손을 위로 확 올리는 행동을 했더니 루키가 자길 때리는 줄 알고 경기를 일으키는 몸짓을 하더군요. 맞아본 개한테서만 나올 수 있는 반응이랄까요. 그 행동을 보니 전 주인이 때리고 일부러 파양했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6일째, 9월 5일

산책할 때 풀을 뜯어 먹는 현상이 점차 나아지고 있습니다. 처음 산책하러 나갔을 때, 밖에 나와서 가는 내내 풀을 미친 듯이 뜯어 먹어서 깜짝 놀랐습니다. 배고파서 뜯는 건지, 아니면 재미로 그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풀을 너무 많이 먹으면 토할 수도 있어서 조심해야 하거든요. 산책 중에 소형견을 만났는데, 자기보다 작은 녀석이라 그런지 호기심을 보이며 경계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하루를 경계하고 공격적인 모습을 보여서 안전문 바깥에 친 울타리에 투명 아크릴판을 덧대었습니다.


7일째, 9월 6일

루키를 울타리 공간까지 나오게 하여 천천히 하루랑 인사를 시켰습니다. 하루가 가까이 다가가는 건 아직 싫어해서 하루를 앉히고 둘 다 얌전히 있으면 엄청나게 칭찬해 주었습니다. 루키는 왜 칭찬받는지 어리둥절한 것 같았습니다. 집에 온 지 일주일째가 되던 날, 루키가 처음으로 배를 뒤집고 누웠습니다. 그만큼 이 집이 편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었죠. 산책도 많이 나아졌습니다. 예전처럼 빠른 속도로 풀 뜯는 버릇이 많이 좋아졌습니다. 물론 아직 완벽하게 고쳐지진 않았습니다. 그래도 목줄로 제지하면 그만둡니다. '가자'라고 말하면 곧잘 따라와서 하루보다 산책이 수월했습니다. (하루는 동네 지리를 꿰고 있어서 산책하러 나오면 여러 코스를 바꿔 가면서 본인 마음대로 골라 가거든요.) 루키는 이제 제법 간식도 잘 먹습니다. 처음엔 사과 조각을 줬는데 식감이 낯설어서인지 안 먹고 뱉더군요. 이젠 제가 방에만 들어오면 간식이 없는지 제 손부터 살핍니다. 관심 없던 덴탈껌도 이젠 잘 먹고요.




루키가 집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습니다. 아직 하루와의 합사는 진행 중입니다. 울타리를 사이에 두고 잠깐씩 얼굴을 보게 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인사한 적은 없습니다. 산책 중에 스치듯이 인사하는 건 괜찮지만, 집에 오면 루키가 자기 영역이라고 생각하는지 경계심이 심해져서 집에서는 계속 따로 분리 중입니다. 루키는 제 방에서, 하루는 거실 위주로 생활하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루키의 뜻밖의 공격성에 너무 심란해서 훈련소도 알아봤지만, 일단 저랑 유대 관계부터 쌓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매일 세 번씩 산책하러 나간 덕분에 루키가 서서히 긍정적으로 변하는 모습도 봤고요. 급하게 합사를 진행하면 상황만 악화되어 돌이킬 수 없다는 얘기를 익히 들은 터라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진행하려 합니다. 빨리 루키가 우리 가족과 하루에게 마음을 열어줬으면 좋겠네요.

매거진의 이전글 유기견 입양 기록: 안녕, 흰둥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