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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May 29. 2022

유기견 입양 기록(2주 차): 작은 변화

루키를 데려오기 전부터 당분간 어느 정도 고생할 거라고 예상은 했지만, 일주일 동안 제가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더 힘들었습니다. 배변이나 산책 교육이 안 되어 있는 건 물론이거니와 가장 기본적인 훈련(ex. 앉아, 기다려 등)도 할 줄 몰랐죠. 혹시라도 루키가 밖에서 흥분하는 상황을 막으려면 최소한 몇 가지 기본 교육은 해둬야 할 것 같습니다.




8일째, 9월 7일

루키는 비 맞는 걸 싫어합니다. 이날 비가 와서 실외 배변에 실패했습니다. 하루는 어릴 때부터 밖에서 배변하는 습관이 있어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우비를 입고 나가야 하거든요. 이제 두 살이 넘으니까 슬슬 비 맞는 게 싫어졌는지 밖에 나와도 안 싸겠다고 땡깡을 부리는 날이 가끔 있지만, 아직까지는 실외 배변을 고집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산책을 두 번 다녀오면 저녁에는 집에서 싸기도 했는데, 요샌 루키 때문에 세 번 산책하느라 하루도 집에서 배변할 일이 거의 없습니다. 루키가 아직 집을 낯설어해서 노즈워크로 서서히 적응을 시키고 있습니다. 노즈워크도 안 해봤는지 처음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려워하길래 가볍게 종이에 간식을 넣고 살짝 구겨서 주었습니다. 산책 후 노즈워크를 반복했더니 주변 환경을 편안해하는 게 느껴졌습니다.


9일째, 9월 8일

루키를 입양할 때 종합 백신과 광견병 주사는 맞았고, 다른 예방 접종(코로나 장염, 기관지염, 인플루엔자)을 하러 동물병원에 다녀왔습니다. 처음엔 얌전히 기다렸는데, 주사가 아팠는지 맞고 나서 저한테 입질을 했습니다. 병원이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간식도 거부했죠. 시바견은 엄살이 심해서 늘 겪는 일이라 크게 놀라진 않았습니다. 다행히 병원에서 나오니까 다시 간식을 먹었습니다.


10일째, 9월 9일

루키는 오토바이 소음과 트럭에서 물건 내리는 소리에 민감합니다. 산책하다가 트럭을 보면 그쪽으로 절대 안 가려고 버티죠. 나쁜 버릇이 고착될까 봐 웬만해선 안아주지 않으려고 하는데, 루키가 힘들어하는 것 같아서 트럭이 지나갈 동안 잠시 안아주었습니다. 특히 밤에는 더 예민합니다. 제가 자다가 화장실만 가려고 해도 깜짝 놀라면서 벌떡 일어납니다.


11일째, 9월 10일

잠시 외출할 일이 있어서 하루와 루키만 놔두고 다녀왔습니다. 안전문과 울타리로 막혀 있지만 방문을 열어두면 서로 볼 수 있는 구조죠. 하루는 우리가 나가면 5분도 안 돼서 하울링을 하는 터라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가족이 다 외출하려고 하진 않습니다. 둘만 놔두는 게 걱정됐지만, 카메라로 살펴보니 루키가 있어서인지 하루가 울지 않더군요. 잠깐 외출했는데도 돌아오니 루키가 반겨주었습니다.


12일째, 9월 11일

산책하고 들어오면 하루랑 루키 둘 다 흥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아직 집에서는 분리하여 생활하고 있는데, 산책 후에 하루가 뛰어다니면 루키도 흥분하면서 뜁니다. 산책 후에는 서로 보이지 않게 방문을 닫아 두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안전문과 울타리 사이에 공간이 있고, 울타리엔 투명 아크릴판도 덧대어 놨지만, 하루가 가까이 오니 루키가 경계하면서 으르렁거리더군요.


13일째, 9월 12일

잔디에 배변하는 하루와 달리 루키는 사철나무 틈에 배변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길에서 떠돌아다닐 때 자기 흔적을 감추는 게 버릇이 된 것 같습니다. 산책 중에 하루랑 인사하는 시간을 조금씩 늘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젠 휴대폰 진동 소리에도 놀라지 않습니다. 루키의 변화가 서서히 느껴집니다.


14일째, 9월 13일

아침에 일어나서 루키를 예뻐해 주니 입으로 살짝 깨물면서 장난을 치더군요. 발을 만지는 건 아직 예민하지만, 입질했다가 아파하는 시늉을 하면 세게 물진 않습니다. 이제 집에 적응이 된 건지 산책 후에 30분 넘게 지치지도 않고 인형을 뜯고 놀았습니다. 처음에 집에 왔을 때 온종일 잠만 자던 개가 맞는지 의아할 정도지만, 그래도 우리 집이 많이 편해진 것 같아서 다행이네요.




어느덧 루키가 우리 집에 온 지 2주가 됐고, 하루와의 합사는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힘든 일주일이었지만, 지나고 나니 루키가 서서히 달라지는 게 느껴집니다. 매사에 경계 지수가 100이었다면 우리 가족과 지내면서 조금씩 그 경계심이 허물어지는 게 보입니다. 이젠 산책도 제법 익숙해졌고요. 서툴지만 노즈워크도 할 줄 알고, 눈치 볼 일 없이 편하게 밥 먹고, 누가 해칠까 불안에 떨며 잠들지도 않죠. 과거에 안 좋았던 기억들을 다 지울 순 없겠지만,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으로 채워주는 게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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