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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번역하는 집사 Jun 12. 2021

영상 번역가로서의 고충은?

커다란 범주에서 보면 번역가는 글을 쓰는 직업이라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아니지만, 한 언어에서 다른 언어로 의미를 전달하는 매개체 역할을 합니다. 감독과 관객 사이에서 중간 다리 역할을 하지만, 결국 최종 소비자는 그 작품을 보는 관객이기에 때론 중간에 낀 불청객이 된 느낌이 들 때도 있습니다. 참 쉽지 않은 일이라는 걸 느끼죠.


번역은 끊임없는 피드백과 평가가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입니다. 번역이 끝났다고 해서 그 파일을 영영 보지 않는 건 아닙니다. 번역을 끝내면 감수자가 보낸 피드백을 반영해서 수정합니다. 감수를 여러 번 하는 경우도 있고, 감수자 측에서 마무리하는 경우도 있죠. 그 과정에서 더 좋은 번역이 나오기도 하고, 기존의 번역을 완전히 뒤집는 경우도 있습니다. 주관적인 이유나 스타일 차이로 하나부터 열까지 다 뜯어고쳤을 땐, 너덜너덜해진 기분이 듭니다. 감수본을 적용하면 고객 측으로 파일을 보내고 수정 사항이 생기면 또 고칩니다. 그렇게 몇 번이고 파일을 주고받으면서 계속 수정하는 경우도 있고, 아무런 피드백 없이 잠잠한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 작품이 공개된 이후엔 관객으로부터 또 평가를 받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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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의 특성상 번역가는 스트레스에 노출될 수밖에 없습니다. 매번 완성물이 평가받는 것에 단련이 될 법도 한데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는 건 좀처럼 익숙해지지 않죠. 아이러니하게도 제가 번역한 작품을 누군가 봐줬으면 싶다가도 차라리 아무도 보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이 동시에 듭니다. 세상에 쉬운 일이 어디 있겠냐마는 자신이 선택한 일이니까 배부른 소리 하지 말고 비난이건 비판이건 전부 다 감당하라는 태도는 조금 서글프죠. 만족스럽지 못한 번역이란 게 느껴지면 가장 비참한 건 번역가 자신이니까요.


혹자는 번역가가 뭔데 원작자의 의도를 그대로 따르지 않고 마음대로 의역하냐고 비난합니다. 번역가는 매 순간 의역과 직역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고, 그 중간 어딘가쯤에서 센스 있게 줄타기를 해야 합니다. 의역이든 직역이든 모든 사람의 취향과 입맛에 100% 만족한 번역이란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엔 늘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제가 선택한 단어나 어미, 표현이 모여 하나의 문장이 탄생했을 때 최대한 많은 이들에게 좋은 번역이 되길, 또 누군가의 마음에 닿을 수 있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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